/KGM 평택본사 전경
스토킹 범죄가 갈수록 잔혹해 지고 있다. 경찰이 조금만 방심하게되면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그동안은 연인 관계나 면식범 사이의 일탈로 치부되어 왔으나, 최근 법원은 이 범죄의 경계를 확장하며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최근 대기업 총수를 대상으로 한 스토킹 가해자(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징역형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개별사건을 넘어, 그동안 ‘집회’와 ‘시위’의 외피 뒤에 숨어 반복돼 온 악의적 괴롭힘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명확한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달 초 평택지방법원은 KG그룹 회장의 자택 주거지와 종교시설인 교회 등을 수개월간 쫓아다니며 차량을 막고 초인종을 누르는 등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더 이상 ‘정당한 시위’로 보지 않았다. 법적 권리가 없는 상태에서 사적 공간까지 침범해 지속적으로 괴롭힌 행위는 명백한 스토킹 범죄라는 판단이다. 이에 법원은 가해자들에게 징역 8개월 및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해당 스토킹 사건은 지난 2024년 초부터 시작됐다. 과거 ‘옥쇄 파업’이 있던 2009년 해직된 전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노동자 4명이 그 해 3월 말부터 KG그룹 회장(피해자)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당시 해고가 부당하니 한 명당 10억~15억원의 보상금을 달라는 주장을 해왔다. KG그룹 측은 해고 시점이 KG가 쌍용차를 인수하기 전이라 들어줄 명분도 없고 회사 경영과 무관한 금전을 제공할 경우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법원은 이미 2016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해당 정리해고가 적법했다고 확정했으므로 쌍용차를 인수한 KG그룹 측에 피고인이 배상을 요구할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부도가 난 회사를 인수한 KG그룹 측은 인수전 분쟁을 해소할 의무가 없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이들에게 복직을 제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킹 가해자들은 거액의 보상금을 무리하게 요구했다는 것이 KG모빌리티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다.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의 자택과 회사 앞은 이미 상시적인 시위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상 합법을 넘어 스토킹에 가까운 행위로 변질되고 있음에도 그동안은 제재가 미흡했다. 초점이 스토킹 보다는 노사분규로 맞춰졌기 때문이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 없이는 대기업 총수는 스토킹 범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구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메신저, 딥페이크(AI를 활용한 가짜영상) 등 비대면 스토킹 수단이 넘치면서 경찰의 접근·연락 금지 조치(100m 이내 접근금지·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는 말 그대로 ‘조치’일 뿐 현실적으론 무용지물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앞서 지난달 경기 남양주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관계성 범죄 대응 강화 논의가 뒤늦게나마 본격화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제도의 ‘실효성’ 문제다. 접근금지나 연락금지 조치는 존재하지만, 이를 반복적으로 위반해도 즉각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 실제 이번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100m 접근금지 조치를 수차례 어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은 존재하지만, 집행이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적법하게 절차가 마무리된 과거 쌍용차의 해고 문제에 대해 인수인인 KG그룹 측에 집요하게 책임을 묻고 보상을 요구하는 행위가 법적 정당성이 전혀 없음을 판결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재력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차량을 막아서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함으로써 기업 경영진도 스토킹 범죄의 철저한 보호 대상임을 확인 받았다는데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확인됐듯 피해는 특정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인근 주민들까지 불안과 공포를 겪는 등 사회적 비용이 확산되고 있다. 스토킹은 더 이상 개인 간 분쟁이 아니라 공공 안전의 문제다.
이번 판결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판결 하나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처벌의 선언’이 아니라 집행의 일관성과 시스템의 정비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 없이는, 누구든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 여성을 넘어 교사, 대기업 총수 등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제도를 더욱 치밀하게 정비하고 법의 잣대도 엄격하게 적용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