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급좌 깜빡이 켠 시진핑, 한국에겐 기회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2.12.09 15:42

디지틀조선일보 정상혁 방송본부장

지난 10월 중국 북경시 조양구 주택단지에 ‘공급수매합작사(供銷社, 이하 공소사)’가 문을 열었다. 공소사는 정부 주도하에 농산물과 생필품을 공급하는 공영 슈퍼마켓이다. 정부가 다량으로 직구하기 때문에 물건 값은 민영 마트에 비해 20~30% 저렴하다. 상점 곳곳에 붙어있는 ‘공산당을 따라 공산당과 함께 간다’, ‘공급을 보장합니다’ 등의 선전 문구들이 계획경제 시대를 방불케 한다.


공소사는 1950년 안정된 배급을 위한 유통 통제 수단으로 생겨났다. 중국 노년층은 과거 배급표를 들고 공소사에 줄서서 식료품을 받던 궁핍의 시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존재감을 상실해 온 이 구시대 상업조직이 시진핑 지도부의 농촌진흥 운동과 더불어 부활하고 있다. 2015년부터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보이더니 2018년 1만 개, 2019년엔 3만2000개로 급증했다. 매출도 2021년 6조2600위안에 달해 글로벌 인터넷쇼핑몰 알리바바 그룹 매출의 8할에 육박했다.


공소사 이외에도 최근 부활 중인 계획경제 시대 유산이 또 있다. 바로 ‘국영식당’이다. 지난 7월부터 후난, 후베이, 산동 등에 등장했고 10월에는 중앙정부가 나서서 “전국 주요도시 주택가에 총 35개를 설치해 2년간 시범 운영한다”고 공표했다. 계획경제 시대 국영식당은 공동구매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단체 식사로 조성된 연대감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부활하고 있는 국영식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닥 곱지 않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문닫은 민영식당 자리를 맛없고 서비스 나쁜 국영식당이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후난성 시사평론가 리앙은 미국 매체 RFA(라디오프리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국영식당은 모택동 시대 식당의 현대판”이라며 “제20차 당대회 이후 서방 경제와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선언한 시진핑 정권 ‘시노믹스(시진핑+이코노믹스·Xinomics)’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공소사와 국영식당의 부활은 시진핑 지도부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 부문은 팽창, 민영 부문은 축소)’ 행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권력이 국민생활을 간섭·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골수 전체주의자다. 문화대혁명 당시 16살이었던 그는 산시성 시골로 추방돼 토굴에서 힘겹게 7년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조차 ‘국가적 재난’으로 낙인 찍은 문혁시절을 “기층계급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며 긍정 평가하는 인물이다. 시 주석은 민간부문은 공공부문을 위해 희생돼도 괜찮다고 여긴다. 2020년 7월 중국 당국은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보험사와 증권사 등 총 9개 금융사의 경영권을 접수했다. 하루 아침에 주인이 민간에서 정부로 바뀐 것이다. 알리바바그룹, 텐센트, 디지추싱 같은 빅테크 기업들에게도 독점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민간기업 옥죄기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를 이길 수 없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영국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장의 자발적 질서가 공산주의나 파시스트 정권의 전체주의 질서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1991년 소련의 중앙계획경제가 붕괴하고 서방의 자유시장경제가 번성하면서 하이에크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됐다. 그나마 중국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 덕에 계획경제의 늪에서 벗어나 중진국 진입에 성공했다. 최근 계획경제의 유산들을 부활시키고 있는 시진핑 정권의 행보가 생뚱맞게 느껴지는 이유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시장통제에 재미 들린 당지도부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경제 질서를 바꾸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퓰리처상 수상 언론인 브렛 스티븐스는 지난 10월19일 뉴욕타임즈에 ‘땡큐, 시진핑’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그는 칼럼에서 “시 주석의 경제개혁은 비효율적 국영기업 체제로의 퇴행이나 마찬가지며 그가 의도하지 않게 자유 세계와 비자유 세계의 경쟁에서 자유세계에 유리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여년 전 중국에 진출해 그들의 후진성을 목격한 한국 사업가들이 농반진반 하던 얘기가 있다. “지금처럼 중국이 뒤처져 있어야 여기서 먹고 살지, 잘나가면 짐싸서 돌아가야 한다.” 그 후 우리 사업가들의 우려는 현실이 돼 중국은 잘나갔고 많은 한국 기업들이 철수했다. 그러나 최근 시진핑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계획경제 행보는 중국이 또다시 뒤처진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그때 우리도 대륙을 향해 ‘땡큐, 시진핑’을 외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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