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천년 왕의 터, 이제야 국민 품으로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2.03.11 17:02 / 수정 2022.03.11 18:17

디지틀조선일보 정상혁 방송본부장

청와대 터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려 문종 22년,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 첫 궁궐이 이 자리에 들어섰다. 수도 개경(개성)의 땅 기운이 약해 왕업이 길지 못하다고 해서 남경(서울)에도 국왕이 정사를 볼 수 있는 이궁(離宮)을 세운 것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면서 이 터가 비좁게 느껴졌는지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경복궁을 세웠다. 그 후 청와대 터는 왕이 논공행상을 행하는 회맹(會盟) 장소로 또는 국왕 친위부대 열병(閱兵)장소로 활용됐다. 1948년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 왕의 터는 대통령의 터로 바뀌었고, 윤보선 전 대통령 재임시 청와대라는 이름을 갖게됐다. 


고려, 조선, 대한민국 약 10세기에 걸쳐 국왕과 대통령이 사용해 온 청와대 터가 이제 국민들 품으로 돌아간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10일 여의도 당사에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집무실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방이 담장으로 막힌 청와대 대신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대통령 집무를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협조를 구한 것이다. 당선인 측 인사는 “윤 당선인은 청와대에 하루도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청와대 이전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집권 2년만에 이 공약을 파기했다. 2019년 1월4일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의 대체 부지를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며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이전 불가 결론이 대통령을 왕처럼 모시고 싶어했던 가신(家臣)들 의지였는지 아니면 가신들 의지를 마지못한 척 받아들인 대통령 의지였는지 알 수는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5년간 청와대라는 구중궁궐 속에서 반대 진영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지지세력만 챙기는 팬덤정치를 고수했다. 그 결과 지난 9일 치룬 20대 대선에서 좌파 세력의 염원이던 ‘집권 100년’은 물건너 갔다. 오히려 5년 만에 보수에게 권력을 내주면서 ‘정권 10년 주기론’ 마저 못 지킨 실패한 정부가 됐다. 


대통령이 왕조시대 궁궐 축소판인 청와대를 벗어나 광장에 나와 국민들과 소통할 때 건국 이래 이어져 온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와도 단절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과 조만간 꾸려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어떤 이유 여하 막론하고 ‘청와대 이전’ 공약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집무실 변경이라는 단순 기능적 의미를 넘어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이며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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