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경기 양평·강원 문막 르포

똑같은 강물 흘러도 수도권 마을에만 규제 집중
주민 숫자 반 토막난 양평, 대부분 농지·축사뿐
문막, 30년 새 인구 3배… 강원도 新산업 거점으로

이달 1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역전(驛前) 삼거리는 장날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썰렁했다. 음식점과 다방, 정육점과 부동산 업소 몇 곳이 문을 열었고 좌판은 서너 개에 불과했다. 60~70대 노인 몇 명이 오갈 뿐 젊은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양동읍 토박이 최현용(60)씨는 "동네 모습이 30년 전 그대로"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말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돼 마을 주변에 인터체인지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지역 발전과는 아무 상관 없을 것"이라며 "수정법(수도권정비계획법) 족쇄가 채워진 마을에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수정법 족쇄 찬 마을에 누가 투자하나"

역 근처를 벗어난 마을은 대부분 농지와 축사였다. 공장 등 산업 시설이 전무한 낙후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1980년대 초반 8000명에 육박하던 양동면 주민은 지금 4700여명으로 반 토막 났다. 이 마을의 노경석(57) 쌍학1리 이장은 "내가 20대였을 때와 지금, 마을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쑥쑥 커가는 옆 동네 문막읍을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고 말했다. 석곡2리 박성배(52) 이장은 "양평군에 묶여 있어서는 발전이 불가능하니 아예 강원도 쪽에 붙여 잘살아보자는 주민들도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차로 10분쯤 거리에 있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상황은 정반대다. 2005년 조성된 동화첨단의료기기 산업단지는 현재 강원도 신(新)산업 거점 지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차례로 방문했다. 바로 옆 농공단지에는 '생산팀 직원 상시 모집'이라고 적힌 구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단지 건너편에는 아파트 단지도 보였다. 김장섭 문막읍장은 "최근 젊은 층 유입이 부쩍 늘고 있으며 인근 대형 관광·스포츠 복합단지인 오크밸리에는 연중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도계(道界)를 마주하고 있는 두 마을에는 규제가 각각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두 지역을 흐르는 강물이 똑같이 남한강으로 유입되지만 1982년 이른바 '수정법'이 제정된 후 경기도에 포함된 양동면에만 한강 수질(水質) 보전을 위한 각종 규제가 집중된 탓이다.

홍천강으로 지류(支流)가 유입되는 인근 단월면 사정도 비슷했다. 강 건너 강원도 홍천군 쪽에는 대명 비발디파크를 중심으로 대형 레저타운이 들어서 관광객이 북적인다. 하지만 이런 시설 건립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단월면은 인적(人跡)이 끊겨 적막하기만 하다. 단월면을 지나는 석산천·산음천·명성천이 강원도 홍천강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데, 경기도에 속한 단월면에만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바로 옆 강원도 홍천은 여름철 물놀이 피서객, 겨울철 스키 관광객이 일년 내내 몰리는데 우리는 보다시피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공장 21개인 경기 장호원 vs 98개인 충북 감곡면

남한강 유역에 나란히 자리 잡은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과 충북 음성군 감곡면. 청미천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은 거리로는 지척이지만 환경은 딴판이다. 장호원은 수정법에 따라 자연보전권역이면서 상수원보호구역까지 겹쳐 공장 신·증설이나 건물 신·증축에 제한을 받는다. 이로 인해 2만명이 넘던 인구가 수년 만에 1만6000명으로 줄었다. 충청권인 감곡면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롭다. 장호원에는 공장이 21개뿐이지만, 감곡면에는 98개가 입주해 네 배가 넘는다.

섬 사이 거리가 800m 떨어진 북한강의 남이섬과 자라섬도 마찬가지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수십대 몰려 발 디딜 틈 없는 강원 춘천시 남이섬은 호텔과 음식점, 각종 문화 체험장을 갖춘 '한류(韓流) 관광 명소'가 됐다. 그러나 행정구역상 경기 가평군에 속하는 자라섬은 '수정법'에 따라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매점 하나 손쉽게 들어설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바로 인접해 있으면서 행정구역에 따라 규제를 집중적으로 적용받는 수도권 도시에는 경기 광주, 가평과 양평, 남양주 등이 있다. 이 지역들은 인근 강원 춘천과 화천, 충북 음성과 충주, 제천, 단양, 강원 원주 등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오직 하나 '수도권'이란 이유로 각종 규제에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