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중산층 증세'… 직장인들 왜 화났나]

-충격 줄일 시간 1년 반
허송세월월급서 적게 떼다 막판에 몰아서 청구해 충격 가중

-진짜 富者들은 놔두고 월급쟁이만
전문직·자산가들은 소득 누락해도 '증세 사각지대'

중견기업 부장 김성진(52·가명)씨는 지난해 연봉으로 7500만원을 받았다. 적지 않은 연봉이지만 김씨는 스스로 고소득층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데다 양가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서 마이너스 통장을 쓴다"며 "노후 대비가 거의 돼 있지 않아 곧 다가올 정년이 두렵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최근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하면서 크게 당황했다. 작년보다 98만원의 세금을 더 부담하면서 2월에 세금을 돌려받는 게 아니라 토해내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회사 사정이 썩 좋지 않아 연봉이 동결됐는데 세금을 98만원 더 내라니 황당하다"며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더니 복지 없는 증세를 하는 것 같아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연말정산 개편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된 사람들이 정부를 성토하면서 연말정산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후속 대책이 나오는 촌극이 빚어졌다.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사실은 2013년 정부가 세법 개정을 하면서 이미 예고했던 사항이다. 그런데도 혼란이 빚어지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납세자와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①정부가 거짓말을 했다

올해 연말정산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납세자들은 정부로부터 증세와 관련해 두 번의 얘기를 들었다. 첫째는 2012년 대선 당시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는 공약이다.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냐는 반론이 나올 때마다 현 정권은 가능하다고 얘기해왔다.

둘째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할 때 연봉 1억원이 안 되는 사람들은 연말정산 환급분 감소액이 평균 100만원을 밑돌 것이라고 정부는 말했다. 하지만 올해 연말정산을 해보니 해당 소득 계층에서 세 부담이 수백만원씩 증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연봉 6000만원을 받는 미혼 직장인 한광철(38)씨는 "2013년 당시 정부가 내 연봉 수준이면 3만원 정도 늘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연말정산을 해보니 50만원 더 내라고 한다"며 "정부 발표와 실제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②대비 시간 1년 반 그냥 흘려보낸 정부

사실 정부는 이번 연말정산 이전에 납세자들의 쇼크를 줄일 수 있는 시간이 1년 반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납세자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증세의 부담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2013년 8월 세법 개정안 발표 이후 정부는 납세자들의 충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가령 간이세액표를 사전에 조정해 매월 원천징수시 떼는 세금을 조금씩 늘려 이번 연말정산시 납세자가 받는 충격을 줄일 수도 있었으나, 그동안 전혀 대비를 하지 않다가 이번에 납세자들이 아우성을 치자 뒤늦게 검토해보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봉 7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고정욱(42)씨는 "내가 좀 더 내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취지엔 공감한다"며 "하지만 갑작스레 부담이 급증한 결과를 받아들고 보니 화부터 났다"고 했다.

많은 직장인은 "2013년 당시 정부의 발표가 지금의 현실을 의미하는지 몰랐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직장인 김철성(37)씨는 "세금은 너무 복잡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충분한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부담이 조금 늘어나는 것으로 여겼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③자영업자·고액 자산가는 놔두고…"왜 월급쟁이 세금만 늘리나"

월급쟁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소득은 낱낱이 드러나는 '유리지갑'인데, 고소득 전문직이나 부동산 자산가 같은 진짜 부자들은 증세(增稅) 사각지대에 있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실제로 고소득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소득을 대폭 줄이고 세금을 덜 내는 게 현실이다. 국세청이 2013년 한 해 동안 세무조사한 고소득 자영업자 711명을 분석한 결과 100만원을 벌면 47만원은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누락하는 비율은 2011년 37.5%, 2012년 39.4% 등으로 해마다 높아졌다. 반면 월급쟁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마지막 '1원'까지 모두 노출돼 과세 대상에 오른다.

월급쟁이들은 이런 상황에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남녀 8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한 달 평균 515만원의 수입이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후로 515만원의 월급을 받으려면 세전 연봉이 8500만원은 돼야 한다"며 "국민은 연봉 8500만원을 중산층의 평균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봉 5500만원이 넘는 월급쟁이를 '고소득층'으로 분류했지만, 월급쟁이가 스스로 느끼는 고소득층의 기준과는 상당히 큰 격차가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