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이동찬 명예회장(왼쪽), 이웅열 회장.

[코오롱 勞使 10년 갈등 타결]

李 명예회장 타계 후 실마리… 회사 "대화 재개" 뜻 전달
해고자 대표, 투쟁 중단하고 李 명예회장 49재 참석

"평소 고(故) 이동찬 명예회장님을 존경해 왔는데 오늘에야 와서 인사를 올리게 됐습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성북구에 있는 불교 사찰 길상사(吉祥寺). 지난달 8일 타계한 고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49재가 열린 자리에서 최일배 정리해고자 대표가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악수와 포옹을 하며 서로를 반겼다. 2004년 당시 영업 악화로 151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 공장 소속 근로자였던 최 대표는 다른 77명의 동료와 함께 정리해고 대상자로 꼽혀 회사를 떠났다.

이 회장은 이날 "당시엔 어쩔수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고, 최 대표는 "이젠 이해한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제3의 기관에 기부 형태로 기금을 내고, 이 기관은 최씨를 포함한 78명의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을 비롯한 노사 갈등 개선을 위해 기금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코오롱과 정리해고자들의 갈등은 지금까지 10년간 끌어온 코오롱그룹 역사상 최악(最惡)의 노사 대결 사례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정리해고에 반발한 직원들은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경기도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

이어 구미 공장 내 고압 송전 철탑에서 고공 농성, 성북동 이웅열 회장 자택 불법 침입·점거, 코오롱스포츠 불매 운동, 최일배 정리해고자 대표의 단식 투쟁 등으로 시위는 계속됐다.

코오롱 관계자는 "대법원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당시 정리해고는 경영 환경상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회사 승소 판결이 났지만 정리해고자들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고 말했다.

극단으로 치닫던 양측 갈등은 지난달 이동찬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본사 앞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시위하던 정리해고자들은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은 음악 소리를 낮추며 조의(弔意)를 표했다.

정리해고자 측은 대화를 요청했고, 이후 상(喪)을 치른 이웅열 회장이 정리해고자 측에 "대화를 재개 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며 대화가 시작됐다.

코오롱 관계자는 "평소 고 이 명예회장은 노사가 둘이 아니라는 '노사불이(勞使不二)' 정신을 강조했는데 이 회장이 이를 유지(遺志)로 받들어 대화를 결심했다"며 "앞으로 고인이 강조한 '기업의 핵심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중시하지 않고는 기업의 어떤 첨단 지식도 무가치한 것'이란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