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구스·몽클레르 외에도 伊·캐나다 수입 패딩 쏟아져
高價 논란·狂風 비난에도 며칠 새 수억대 판매 흔한 일
한국소비자 '패딩사랑' 유별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최근 이탈리아 패딩 브랜드인 '에르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한겨울용 패딩 매장이 문을 연 것. 지난 12일 오전 11시쯤 63㎡(19평)짜리 매장을 찾아가 보니 여성 고객 20여명이 한데 모여 옷을 고르고 있었다. 점원들은 채 비닐도 뜯지 않은 제품을 창고에서 꺼내 상품이 팔려나간 빈자리에 진열하느라 바빴다.

서울 반포에서 왔다는 문모(여·31)씨는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에르노' 점퍼를 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개장 첫날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재작년에 258만원짜리 이탈리아 '몽클레르' 코트, 작년에는 프랑스에서 80여만원에 프랑스 '피레넥스' 패딩 점퍼를 샀다고 했다. 점퍼 한 벌에 120만~240만원으로 어마어마한 가격인데도 매장 안은 '옷 무더기'를 쌓아놓은 시장 좌판처럼 북새통을 빚고 있었다. 현대백화점은 12일부터 사흘간 이 브랜드만 2억6600만원어치를 팔았다고 밝혔다.

◇올해도 불고 있는 '프리미엄 패딩' 열풍

올해도 '고가(高價) 패딩 점퍼'가 작년의 광풍(狂風)을 이어갈 태세다. 청소년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등골 브레이커(아이들에게 옷을 사주느라 부모의 등골이 휜다는 뜻)'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노스페이스', 해외 직접 구매, 병행 수입 관련 이슈를 던져준 캐나다 '캐나다구스', 이탈리아 '몽클레르'를 넘어 올해 유통업계에서는 사활을 걸고 새로운 브랜드의 패딩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한겨울 패딩이 팔리는 시기도 앞당겨졌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 판매하는 몽클레르는 올해에는 8월 말부터 겨울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올해 새로 나온 남성 '자코브' 모델 검은색(227만원)과 여성 '제네브리에' 모델 검은색(257만원)은 현재 물량이 10%도 남지 않은 상태로, 가장 많이 찾는 사이즈인 남성 L과 여성 S 사이즈는 이미 완판됐다.

신세계백화점은 고가 패딩의 9~12월 매출을 분석한 결과 9월 비중이 2012년 14%에서 지난해 21%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자 일찌감치 패딩 판매에 나섰다. 롯데백화점도 알래스카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는 '210 항공 구조대'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은 '파라점퍼스', 날씬해보이는 디자인이 특징인 캐나다 '맥케이지' 같은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해 지난해보다 한 달 앞선 8월 말부터 패딩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9월 초부터 8일 동안 몽클레르 패딩을 4억원어치 팔았고, 캐나다 'CMFR'은 2주 동안 1억5000만원어치를 팔았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8월 말부터 캐나다 '노비스' 판매를 개시해 매출 1억3000만원을 올렸다. 갤러리아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보름에서 한 달 빠르게 패딩을 판매하기 시작하고 물량도 15% 정도 늘렸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파산 위기에 몰렸던 패딩 업체 몽클레르그룹은 한·중·일 아시아 지역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에서 화려하게 데뷔하는 성과를 냈다. 몽클레르는 올해 상반기에도 아시아 매출(896억6000만원)이 작년보다 38% 늘어났다.

◇"한국의 유별난 소비 현상" 지적도

전 세계적으로 패딩 소재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수백만원짜리 패딩 인기는 국내에서 유별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보온성과 패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훌륭한 디자인도 인기 비결이지만, '명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마케팅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남성 패션 전문지 에스콰이어의 이현범 패션 디렉터는 "최근 100만원을 훌쩍 넘는 일부 브랜드 중에는 해외 소비자 가격과 비교했을 때 보통 20~30% 정도 가격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며 "'청담 패딩' '프리미엄 패딩' 같은 용어를 쓰자 소비자들이 패딩을 마치 '샤넬'이나 '루이뷔통'처럼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