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6500원짜리 ‘부드러운 순살족발’을 집어들었다. 제품 겉표지에 그려진 대로라면 두 명이 나눠 먹을 만한 양이 나와야 한다. 막상 포장을 뜯어보니 속이 허전하다. 내용물이란 겨우 고기 12조각이다. 김밥 포장을 뜯는 순간에도 ‘배신감’을 느꼈다. 제품명에 ‘볼륨이 up!’이라고 돼 있지만 막상 늘어난 것은 김밥 속의 밥 양인 듯싶었다. 포장지에 그려진 것에 비해 굉장히 적은 ‘참치 김치’ 양에 실망했다. 한 대형마트에서 파는 ‘햄&치즈 또띠아’를 뜯는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 포장 양쪽으로 꽉 차 보이던 또띠아는 띠로 둘려 있던 가운데가 비어 있는 상태였다. 먹을 수 있는 또띠아 양은 포장지의 반 정도 길이. 가격은 3180원이었다.

요즘 유행어 중 하나는 ‘창렬식품’이다. ‘창렬하다’고도 쓰이는 이 단어의 시작은 가수 김창렬씨 이름을 브랜드에 쓴 편의점 즉석식품에서 시작했다. ‘김창렬의 포장마차’라는 이름으로 나온 순대볶음, 곱창구이는 5000~6000원이란 높은 가격대였다. 그럼에도 7~10조각의 순대, 곱창만이 들어 있었다. 네티즌들이 이를 조롱하기 위해 ‘창렬하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제조 업계의 과대포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 섞인 말이다.

지난해 말부터는 국산 과자의 과대포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불거졌다. 우리나라 과자 업체들의 과자 제품은 포장 양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하다. 대표적인 제품이 고급 과자를 표방하고 나선 오리온제과의 ‘마켓오’ 시리즈. 4개들이 과자가 3000원인데 그 양이 포장 상자에 비해 매우 적다. 같은 회사의 ‘예감’ 감자칩 제품은 포장만 따지고 보면 길이 17㎝이다. 내용물을 쌓아 놓고 보면 7.5㎝밖에 되지 않는다.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자 제과업체들은 서둘러 “내용물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질소 충전재로 포장한다. 그래서 포장에 비해 내용물이 적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같은 가격이나 더 싼 가격의 외국산 과자들의 포장 상태를 비교하며 국산 제품이 ‘과대 포장’이라고 맞섰다. 지난 1월 소비자단체 컨슈머리서치가 국산 과자 20종의 포장 비율을 조사한 결과, 포장 상자 부피에서 과자가 차지한 비율은 16.8%에 그쳤다. 조사 대상 과자 중 17종은 과자 상자의 50% 이상이 빈 공간이었다.

“질소를 사니 과자가 딸려 왔다”는 소비자의 조롱이 이어지면서 국내 제과업체의 실적이 크게 떨어졌다. 롯데제과의 지난해 순이익은 2012년에 비해 39.0%, 오리온제과는 23.3%, 크라운제과는 7.8% 하락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상반기 과자 제품의 매출을 보면 국산 과자의 매출은 9.8% 줄어든 반면, 수입 과자 매출은 11.9% 늘었다.

최근 들어서는 소비자들의 비판이 과자뿐 아니라 즉석식품으로 확산됐다. SNS,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창렬식품’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제보가 더욱 이어졌다. 가장 많은 비판은 내용물이 겉에 표기된 내용, 그림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식품의 허위 과장 광고로 인한 피해 사례는 지난해 800건을 넘었고, 올 상반기만 689건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3% 증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창렬식품’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등장한다. 밥의 4분의 1 위에만 고기가 덮여 있는 편의점 판매 ‘일본식 소고기 덮밥 규동’, 속이 텅 비어 있는 제과점 ‘슈 케이크’, 망고가 접시의 반도 덮이지 않은 패스트푸드 ‘망고빙수’의 실물 사진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제품명과 판매처가 회원들 간에 공유됐다.

예를 들어 아워홈의 ‘손수갈비탕’에 들어 있는 갈비는 실제 표기량의 75%도 안 되는 65.8g이라는 고발이 올라왔다. 같은 업체 ‘화끈 닭근위구이’는 상표명과는 달리 닭고기(38.6%) 함유량보다 콩성분(탈지대두단백)이 훨씬 많았다. 소비자들은 닭고기인 줄 알고 먹었는데 콩고기였다고 비판했다. 아워홈 홍보팀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갈비탕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비싼 갈비를 제공하려다 보니 표기된 양보다 적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가격과 맛에 대한 소비자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닭근위 제품에 대해서도 “가격적인 차원에서 콩고기를 넣은 것이 아니다”면서 “좋은 식감을 만들기 위해 콩고기를 넣은 것인데 표기법상 ‘콩고기’라고 쓸 수 없어 대두단백이라는 표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 공정상 생길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한 업체도 있었다. 김밥 속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세븐일레븐 측은 주간조선에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푸드 제품은 수작업으로 속 내용물을 채운다”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내용물을 적게 넣을 수도 있고 치우쳐 넣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븐일레븐 측은 “소비자들이 간혹 불만을 제기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제조 공정에 사람을 더 투입하고 공정 시간을 늘리는 등 문제점을 보완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창렬식품’ 논란의 원조 격인 국산 과자 과대포장 문제에 대해 오리온제과 측은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포장과 디자인은 제품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매개체”라며 “포장을 의도적으로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제조업체들이 입을 모아 공정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품 포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와 제조사들의 의도가 달라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석 연세대 교수(패키지학)는 “제조사들은 제품 포장을 제품 보호나 유지 등이 아닌 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풍부한 양의 내용물이 들어간 것처럼 꾸미거나 표기한 것 모두 실제 내용물과는 무관하게 소비자들의 기대를 높여 제품을 팔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반복되는 과대포장 문제는 결국 ‘창렬식품’이라는 소비자들의 조롱 섞인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심리학과 교수는 “처음에는 소비자가 과장된 제품 그림과 표기에 속아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실망이 쌓이고 나면 제품 자체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자가 대형마트에서 ‘햄&치즈 또띠아’를 집어들자 옆에서 물건을 고르던 한 50대 여성이 “사지 말라”며 훈수를 뒀다. 전업주부라는 그는 “대형마트 제품이라도 이제 포장만 보고는 못 믿겠다. 차라리 직접 만들어 먹겠다”며 불신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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