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페르&디제스티프는 쉽게 말하면 식전주, 식후주 문화이다. 식전주(Aperitifs)와 식후주(Digestifs)는 식사와 함께 마시는 증류주의 일종이다. 식전주는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식사 전에 먹는 술로 라틴어로 ‘열다’를 의미하는 동사 aperire에서 유래된 프랑스어다. 식후주는 소화를 도와주고 식사를 마무리해주는 깔끔한 술이다. 이탈리아에서는 19세기부터 식전주가 흔했으며, 유럽 전역에서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그 개념이 대중적으로 퍼졌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양식 코스요리를 주문할 때나 접할 수 있어 이 문화를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미식문화의 트렌드세터(Trendsetter), B28’
오너인 마크와 그레이스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싱가포르의 앙시앙로드에서 시가향와 재즈음악이 흘러나오고 수많은 종류의 위스키와 와인을 경험할 수 있는 하이엔드바 B28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 오면서 설렘과 동시에 한편으로 걱정도 많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외식문화는 발달했지만 미식문화는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마크는 “한국사람들은 소주나 맥주와 같은 술에 돈을 쓰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음식에 지갑을 여는 데에는 야박한 것 같다. 그래서 레스토랑 컨셉부터 입지, 메뉴, 타켓 손님, 그리고 가격대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했다.”고 말하며 레스토랑을 오픈을 앞두고 담아놨던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파인 다이닝에 대한 수요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28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THE CUT을 오픈한 이유는 트렌드를 쫓아가는 트렌드팔로어(Trend Follower)가 아닌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트렌드셋터(Trendsetter)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클래식한 미식문화인 게리동 서비스뿐만 아니라 각 요리 순서에 맞게 술을 매치해서 먹는 아페르&디제스티브 문화를 가지고 왔다. 한국 사람들은 변화에 민감하고 트렌드를 앞서가려고 하는 적극성이 있기 때문에 미식문화에도 분명히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천사의 머릿결, 엔젤헤어파스타’
엔젤헤어파스타는 차가운 파스타로 나른해진 입맛을 돋우고 재료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B28의 대표 요리다. 좋은 재료를 쓰기 때문에 재료만 준비되면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천사의 머릿결 같이 얇고 긴 카펠리니면을 2분간 삶고 얼음물에 식힌다. 그리고 송로버섯 기름(화이트 트러플 오일)과 다진 차이브, 송로소금, 불린 다시마, 표고버섯 부용을 믹싱볼에 넣어 면과 함께 버무린 후 바다의 다이아몬드 오시에트라 (Oscietra) 캐비어로 마무리한다. 캐비어는 철갑상어 알로 알을 품고 있는 철갑상어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크게 벨루가, 오세트라, 세브루가로 나눠진다. 오세트라는 중간크기의 상어로 갈색이며 너트류의 맛을 지니고 있어 깊은 맛을 느끼기에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