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기자 = digitaljh@chosun.com) 대한민국이 세계 3대 요리대회 중 하나인 보퀴즈도르 본선에 진출했다. 보퀴즈도르(Bocuse d'or) 는 룩셈부르크 요리월드컵, 독일 요리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대회로 꼽히는 권위 있는 대회다. 수많은 스타셰프들의 스승이자 요리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폴 보퀴즈(Paul Bocuse)의 이름을 딴 이 대회는 각 나라의 조리법을 이용해 최고의 맛을 선보이는 국가 자존심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달 26일~27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에서 참가 10개국 중 대한민국이 5위로 선정돼 본선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유럽, 라틴아메리카 예선전을 통해 본선에 진출한 24개국은 2015년 1월 프랑스 리옹에 모여 지상최대 미식의 향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번 대한민국의 본선진출은 2008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며 국가대표팀 김동석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예술적인 테크닉뿐만 아니라 팀의 조직력도 높게 평가 받아 본선 진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었다.”고 말했다.

1. 본선 진출 소감은?
6년 만의 본선진출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우리 팀원들과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우선 표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은 나를 비롯한 코치, 선수, 코미 4명만이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고 젊은 팀으로 구성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후배의 힘이 모아져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년 본선을 위해 또 엄청난 산을 올라야 하지만 전 세계에서 뽑힌 24개국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영광스럽다.

2. 요리의 어떤 요소가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
보퀴즈도르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두 출중한 실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모든 참가자가 엄청난 시간과 재정을 쏟아 훈련하기 때문에 그 실력은 더 견고해졌다. 따라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회 당일에 훈련한 것을 제한시간 내에 잘 소화해 내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실수 없이 5시간 35분을 잘 마무리하고 한국 식재료와 프랑스 조리법을 적절히 조합해냈다. 특히, 생선요리부문에서 한가지의 가니쉬(곁들임음식)를 무조건 자국의 조리법 혹은 재료를 쓰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장내아나운서나 모든 심사위원들이 김치를 썼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구절판을 모티브로 준비했고 홍초를 사용해 생선 소스를 만들었다. 너무 과하지 않게 그들의 음식에 녹아 들어갈 수 있는 맛과 향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점수를 잘 받았다고 생각된다. 

3. 현장의 분위기는?
지난번 아시아태평양 지역예선보다 기물 준비가 잘됐고 12명의 ASCL 학생 서포터즈의 참여로 조직적인 모습, 그리고 경기시간 동안 선수들의 주방운용 시스템 또한 많은 칭찬을 받았다. 한국팀 경기는 둘째 날이었고 홈팀인 중국팀 바로 다음 차례였다. 중국의 강한 응원이 부담되긴 했지만 차분하게 경기를 치렀다. 경기가 끝나고 난 후에는 각 나라의 선수단들이 친구처럼 서로 격려하며 시상식을 진행했다. 한국은 5위로 진출하게 되었지만 시상식 당시에 가장 기뻐했다. 심지어 1등인 일본보다 더 기뻐했는데 6년만의 본선진출임을 알기에 모든 나라들이 함께 축하를 해줬다.  

4. 다른 팀은 어땠나? 특히 일본의 경우 314점으로 압도적인 점수로 1위를 차지했다.
이미 다른 팀들은 경기 전부터 전쟁을 방불케 준비했다. 우선 큰 기업들의 후원과 외국인 지도자편성, 그리고 선수들에 대한 관리부터 시스템적인 차이가 났다. 특히 일본의 경우 314점이라는 점수의 결과는 당연하다. 지난 본선 때 일본팀을 3등으로 이끈 프랑스 MOF를 코치로 기용해 메뉴구성부터 모든 훈련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역시 보퀴즈도르 수상자 출신의 벨기에 셰프가 코치했다. 사전에 그 소식을 듣고 걱정했지만 대회 당일 음식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리허설도 25회나 했다고 들었지만 함께 나온 코미셰프가 훈련이 부족해보여 경기진행 자체가 삐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경기를 직접 눈으로 본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나라가 완벽히 준비해왔다.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스리랑카 그리고 이번에는 참가하지 않은 태국 등 그 어떤 나라도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5. 리허설 현장과 대회장의 물리적인 환경이 달랐다. 대회장에서 에피소드가 있었는가?
대회장 조건은 이 전에 비해 개선돼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만, 지난 경기와 다르게 가열기구가 인덕션 레인지로 변경됐는데 사전공지가 없었다. 한국팀이 가져간 기물 중 후라이팬은 인덕션가열용이 아니라 가져간 15장을 모두 못 쓰게 됐는데 다행히 싱가포르 선수가 팬을 빌려줘 문제 없이 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별다른 부족한 점은 없었다. 보퀴즈도르는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별도의 진행팀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설픈 실수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6. 내년 1월에 프랑스 리옹에서 본선 경기가 있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리옹 본선은 각 대륙 예선 통과국과 와일드 카드를 거머쥔 총 24개국이 참가한다. 아시아태평양예선에서는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호주, 대한민국이 출전한다. 경기 운영방식은 예선과 비슷하지만 한 종목당 10인분이 아니고 12인분으로 늘어나고, 대회 환경도 훨씬 더 어려워질 예정이다. 게다가 300kg이 넘는 짐을 가지고 한국에서 파리, 파리에서 리옹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이동부터 만만치 않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많은 기물들을 프랑스까지 옮길 수 있는 항공사의 협조뿐만 아니라 앞으로 6개월 동안 훈련하는데 드는 식자재 비용, 특수재료, 기물과 현지 체류비용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감독으로서 나는 선수들이 이런 걱정 없이 마음껏 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거에 내가 선수였을 때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하고 싶은 연습도 못하고 출전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의 두번째본선 진출. 본선진출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지만 리옹에 가서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 한국의 미식수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고 싶다. 이건 나의 자존심이자 팀의 자존심이다.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도전할 선수들에게 많은 정보와 경험을 전달하고 대한민국의 좋은 이미지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 이번 경기에서 많은 심사위원들은 한식의 잠재력을 보았다. 이제는 김치만 먹는 나라가 아니다. 이번 생선요리에서 구절판과 홍초로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처럼 한국의 식자재와 조리법을 활용해 리옹에서 더 멋지게 선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