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기자, 김유경의 푸드인사이드] 맛있는 그림을 그리는 푸드 아티스트, 이찬오 셰프
(김유경 기자 = digitaljh@chosun.com) 미식(美食). 컬리너리 아트(Culinary Art). 게스트로노미(Gastronomy). 맛있는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양의 외식용어들이 국내에서도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예전에는 맛과 재료만 좋아도 괜찮은 음식이라고 하였지만 이제는 보기에도 좋아야 감동한다. 예술성도 있어야 하는 것. 말 그대로 아름다운 음식, 미식을 추구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청계산이 보이는 서판교의 타운하우스로 가면 로네펠트 티 하우스 부티크 레스토랑이 있다. 잔디가 깔려 있는1층에는 이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참나무 향이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니 이찬오 셰프가 주방에서 맛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수영 선수에서 미슐랭3스타의 셰프가 되기까지
주방에서 RUFFINO CHIANTI와인을 가지고 나오는 이찬오 셰프는 체격이 매우 좋았다. 와인을 한 잔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고등학교에서는 수영선수를 하고, 대학교에서는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했다고 한다. 요리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호주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접시 닦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이다.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워오다가 셰프랑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덕분에 여러 가지 요리 책을 접할 수 있었고 그 중에서 호주 찰리트로터 셰프의 Seafood란 책을 보고 요리에 매료되었다. 평소에 미술을 좋아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는데 그 책은 탐스러운 재료와 다채로운 요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가 짐작이 되지 않을 만큼 이력이 화려했다. 이찬오 셰프는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도 있었지만, 머릿 속에 그린 꿈을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호주에 있을 땐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불어가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프랑스로 갈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요리로 열심히 번 돈의 대부분을 책을 사는데 써서 문화생활은 많은 못했지만 이론과 실기를 1년만에 독파했다. 기본적인 체력뿐만 아니라 열정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의 이찬오 셰프를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호주에서 꿈을 그리고, 프랑스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네덜란드에서 날개를 펼치다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이찬오 셰프의 요리 인생에서는 이 세 나라를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나라마다 미식문화가 달라 다채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호주사람들은 미식에 굉장히 탐미적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새로운 요리를 도전해 볼 수 있었고, 서로 레시피도 공유해서 다양한 장르를 익힐 수 있었다. 자유분방하고 기회가 많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싶어 호주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분위기는 굉장히 달랐다. ‘넌 아직 내 레시피를 배울 실력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엄격했고, 자기 레시피에 대한 애착감도 대단해 레시피를 배우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한 번 가르쳐주면 제대로 알려주기는 했지만 더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책을 통해 익혔는데 이 때 요리의 A to Z를 모두 익혔다.
프랑스 미슐랭 3스타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하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낌이 왔을 때 네덜란드로 떠났다. 호주에서 같이 일했던 셰프가 네덜란드에 레스토랑을 오픈했으니 총괄셰프로 와달라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대로 플레이트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여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불고기 양념에 넣는 배즙으로 스테이크를 재우기도 하고, 한국적인 스파이스를 더하는 등 지금까지 내가 쌓은 요리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였기 때문에 히딩크 효과와 맞물려 내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헤이그 탑 20 레스토랑에 들 수도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꿈은 이루어진다’처럼 이찬오 셰프는 네덜란드에서 꿈을 이뤘다.
봄채소를 곁들인 오골계 스테이크
이찬오 셰프의 시그니쳐 메뉴로 봄채소를 곁들인 오골계 스테이크를 만들어 봤다. 오골계는 닭 품종의 하나로 살,가죽,뼈가 모두 어두운 자색이며 일반적인 닭보다 지방층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몸매가 미끈하다. 수영선수 출신의 이찬오 셰프를 닮았다.
먼저 오골계를 해체하고 다릿살에 소금을 뿌린 뒤 올리브유에 굽는다. 핵심은 냄비나 팬을 위에 올려서 눌러서 굽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게 익는다. 오골계가 익는 동안 마늘, 더덕, 컬리플라워, 버섯, 달래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올리브유에 굽는다. 컬리플라워는 단단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넣고, 달래는 푸른 색깔을 살리기 위해 가장 나중에 넣는다. 오골계가 익으면 근육을 잘라내 부드럽고 매끈한 부위만 남겨둔다. 포르치니 크림을 유화페인팅 하듯이 플레이트에 발라준다. 그 위에 구운 야채를 올리고 세발나물로 신선함을 더한 뒤, 오골계를 올리고 홍삼 소스로 마무리한다.
오골계의 식감은 담백하고 바삭하다. 어두운 자색의 오골계를 구운 야채들과 함께 하얀색 포르치니 크림에 찍으면 한 폭의 맛있는 그림이 입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