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기자, 김유경의 푸드인사이드]  39년간 한식의 길만 걸어온 국제한식조리학교 이재옥 교수

(김유경 기자 = digitaljh@chosun.com) 39년간 한식만을 고수해온 이재옥 교수는 기본이 없는 요리를 싫어한다. 특히 퓨전이라고 하는 국적없는 요리를 싫어한다. ‘눈을 감고 먹으면 한식, 눈을 뜨면 서양식’인 요리를 만드는 것이 한식이 세계로 뻗어나갈 방향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올해 국제한식조리학교의 한식담당교수로 임명된 이재옥 교수는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육수를 우려내는 법부터 쑥 국수, 된장찌개, 맥적, 황태해장국 등 총 5가지의 요리를 재학생들에게 보여주었고, Chef’s talk라는 시간을 가지며 한식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현직 조리장 중 국빈 만찬 부문에서 최다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로서 한식의 세계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무도인이 셰프가 되기까지
 
양가양가양가. 어릴적 이재옥 교수는 성적표가 온통 양가로 가득 차 있는 '양갓집 아드님'이었다고 한다. 공부보다는 합기도를 좋아해 운동만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꿈만 같던 합기도 사범까지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과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합기도는 당연히 할 수 없게 되어 그나마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었던 음식점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절박하게 요리를 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방에만 있었고,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게다가 도장에서 쌓은 강한 집중력 덕분인지 남들보다 요리를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요리에만 몰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공이 쌓였고, 실력을 인정받아 일반 레스토랑부터 경주 현대호텔,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특급호텔의 한식조리장으로 스카우트가 되었다. 제주 하얏트 리젠시에도 있었는데 당시에 최연소 조리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형문화재 38호인 고 황혜성 선생의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수자 과정을 수료하며 지금까지 39년간 한식의 길만 걸어왔다. 덕분에 한식전문가라고 불리고 있지만 한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지금도 주방에서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고 있다.
“G20정상회담의 꽃, 영부인 오찬 총괄 한식 조리장”

2010년G20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정상회담의 꽃이라고 불리는 영부인 한식 오찬행사를 총괄했다. 당시에 쉐라톤 워커힐 한식당 ‘온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한식은 워커힐’이라고 말한 덕분에 총괄 조리장으로 추천 받았다. 오찬 장소는 삼청동에 위치한 한국가구박물관. 한국전통의 미를 보여줄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전 세계의 최정상의 영부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정답은 궁중요리였다. 우리 전통의 궁중요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음식이 많고, 태조 이래 약500년 동안 조선왕조와 함께 한 궁중요리로 우리의 맛과 역사 그리고 문화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G20 회원국 배우자이고, 각 나라의 문화와 식성까지 배려해야해서 메뉴를 선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3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그 기간 동안 시연한 요리가 9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15명의 심사위원을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리장으로서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게다가 심사위원이 아닌 영부인들을 위한 요리인데 심사위원의 입맛에 9번이나 거절당한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영부인에게 평가를 받고 싶다고 제안하였고 청와대에서 김윤옥 여사 앞에서 요리를 시연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혁신적인 도전을 했다. 모든 음식을 방짜유기(놋쇠그릇)에 올렸다. 청와대에서는 도자기그릇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방짜유기는 향균,멸균 효과가 뛰어나 한식이 ‘건강 음식’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만족. 청와대 관저에서 ‘이것이 진정한 한식이다.’라는 호평을 들었고 이 때 마치 대통령이 된 기분이었다. 음식은 구절판, 잣죽, 잡채, 삼색전, 너비아니, 채식주의자를 위한 콩밀고기구이, 궁중신선로 등 아홉 가지의 요리를 준비했는데 ‘화합, 조화, 성장’의 의미를 담아내 요리로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눈을 감고 먹으면 한식, 눈을 뜨고 먹으면 서양식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한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한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입맛에 맞추다 보니 국적 없는 요리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식은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것은 물론 재료의 사용범위도 넓어 한식 자체만으로 세계적인 음식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사찰음식, 지역향토음식들은 변형 없이 그 자체로 세계화를 시키고, 외국인의 입맛을 맞추고 싶다면 그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면 된다. 구절판, 신선로와 같은 거창한 요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튀각. 튀각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는 음식이고, 바삭하고 건강한 맛에 외국인들이 모두 좋아한다.

또, 음식을 내놓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서양식의 코스요리처럼 말이다. 한식이라고 하면 자고로 상다리가 부러질만한 ‘한상차림’이 정석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의 임금님들은 차가운 요리에서 뜨거운 요리 순서로 ‘코스요리’를 드셨다. 음식마다 먹어야 하는 순서가 있고,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타이밍이 있는 건데 한 상에 수 십 가지의 요리를 늘어놓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손이 가지 않는다. ‘눈을 감고 먹으면 한식, 눈을 뜨고 먹으면 서양식.’ 이 것이 바로 한식의 본래의 모습을 지키면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