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 기자 = digitaljh@chosun.com) 평창동의 봄은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만큼이나 평화롭게 다가왔다. 크고 작은 갤러리들과 언덕길을 올라가니 서울옥션 사옥의 테라스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안중근 의사의 유작이 경매에 올라 미술 애호가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대가 크면 아쉬움도 크다고 했던가.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유찰돼 안타까움을 남겼다.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해 고려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음정우 경매사는 2008년 4월 서울옥션에 입사해 현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안 중근 유작의 경매를 진행했던 그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아쉬웠던 작품이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순수미술학도로 작가를 꿈꿨으나…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순수미술을 공부한 그는 처음부터 경매사라는 직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입학 당시 미술교육과였지만 학부제로 변경되면서 조소를 전공하게 됐다. 여느 순수미술학도들처럼 작가의 꿈을 안고 가나아트센터 등 여러 곳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지만 줄줄이 낙방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회사 입사를 준비하던 중 서울옥션에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4남매 모두 미술과 음악을 전공해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서울옥션에서 경매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강력한 추천과 바람으로 박혜경 경매사 주도하에 열리는 회사 자체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경매사가 됐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행해야하는 경매사는 소위 '깡'이 있어야 한다.  나서는 것을 즐기며 긴장을 최소화활 수 있는 성격이 경매사의 적성에 맞다. 물론 데뷔 초에는 위축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이 떨었다. 손짓 하나에 큰 돈이 오가는 경매장에서 떨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입사 당시 그를 교육했던 박혜경 경매사로부터 자신감을 얻었다. 여성 최초였던 박혜경 경매사는 박 수근 작품 ‘빨래터’의 위작 논란(진품 판정)에도 불구하고 작품 다수를 최고가로 진행했다. 작은 키에 뿜어져 나오는 힘이 강한 그녀는 “경매사라는 자리는 현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미술품에 대하 잘 알아야 하고 또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하며 단상 아래 어떤 일이 벌어져도 깡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조언으로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하사품이 가장 인상깊어…

작년 6월 고종황제가 재위 당시 독일인 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하사한 작품을 경매진행하게 됐다. 일본, 청,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했지만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 등 당시 정세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했던 고종에게 독일은 원조 등 갖은 도움을 줬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고종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볼터에게 바다를 건너가는 신성 그림을 하사했고 91살인 볼터의 외손녀, 바바라로 부터 한국에 돌려주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3억 원에 출품했고 6억6천만 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과 관련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독일인 중개인으로부터 볼터의 외손녀 바바라가 국립기관에서 보관하길 바라며 국내 미술시장에서 판매를 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1,2차 세계대전동안 숱한 위기 속에서도 그 작품을 보존했다는 것에 감사드리며 경매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널리 알린다면 당신의 일련의 과정들이 재평가 받을 것이라고 직접 편지를 전했다. 거절할 줄 알았던 바바라의 뜻밖의 화답이 왔고 경매를 진행해 예상가보다 훨씬 웃도는 가격에 낙찰돼 더욱 의미가 깊었다.

현재 미술시장은 어떠한가?

거품까지 가세해 엄청난 호황기를 누렸던 2007년에 비해 시장규모는 작아졌지만 거품이 빠지고 안정적인 시기가 찾아왔다. 영국, 미국에 이어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미술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홍콩의 아트바젤, 북경 프리포트 구역, 상해 자유무역지대 등 해외 미술시장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화전쟁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미술 흐름 파악이 가능한데 한국은 미진하게나마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주변국가의 유리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초보 응찰자들을 위한 팁이 있다면?

세 가지로 요악하자면 첫 번째 자기 안목이 필요하다.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과 안목을 가지고 미래가치를 평가할 줄 알아야한다. 하지만 이 안목은 한 번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간 시간을 두고 분석해야 한다. 두 번째는 작품 구입액이 본인 수입(연봉)의 5~10%는 넘지 않아야 한다. 경매의 특성상 현장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자칫 능력 밖의 낙찰금액이거나 과도하게 많이 낙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픈경매보다 온라인 경매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미술시장에 대한 분석과 데이터가 풍부해야 한다. 작가와 작품을 비교해보고 가격체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매사의 가장 큰 매력은 생동감 넘치는 경매현장 가장 중심에서 지휘하는 것이 아닐까. 두 시간 남짓한 현장에서 자신의 손바닥, 손짓 하나에 작품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는 음정우 경매사의 앞으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