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기자, 김유경의 푸드인사이드] 요리에 철학을 담고 새로운 옷을 입히는 류니끄 류태환 셰프

(김유경 기자 = digitaljh@chosun.com) 앤디워홀의 <세 개의 코카콜라 병 1962>,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세 딸, 세계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삼형제와 세자매. 숫자 3은 역사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완성’을 뜻하는 원초적 완성수로 성스럽게 여겨져 왔다. 올림픽에서도 영광의 의미로 세 종류의 메달을 수여하고, 국회에서 의사봉도 세 번 두드리지 않는가? 하지만 이는 주방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특히 류태환 셰프의 주방에서 말이다. 숫자 3이 류태환 셰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알아보기 위해 ‘류(Ryu)’셰프의 ‘유니크(Unique)’함이 묻어있는 가로수길 류니끄를 찾았다.

‘3가지 철학을 품다. 정직, 성실, 노력’

류태환 셰프는 요리사는 이론과 실전, 그리고 정신과 물질에 대한 개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이라 함은 요리사로서의 철학과 자세, ‘물질’은 요리로 손님을 끊임없이 오게 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인 감각을 말한다. 특히, ‘정직•성실•노력’은 해양학자이자 요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류 셰프가 지켜오고 있는 3대 철학이라고 한다.

도쿄, 시드니, 런던에서 요리학교 및 월드클래스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는데 도쿄에서는 장인을 뜻하는 쇼쿠닌(しょくにん)으로부터 꾸준함과 성실함을 배우고, 시드니에서는 새로운 것을 포용하고 창조하는 노력, 그리고 런던에서는 영국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이해하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정직함을 배웠다고 한다.

류 셰프는 이 세 가지 철학과 외국에서 습득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토리에 맞추어 일식과 프렌치를 접목시킨 신메뉴를 개발해오고 있다.  작년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헌정’, 올해 초는 ‘Romantic’ 이라는 주제로 코스메뉴를 선보였고 올해 하반기에는 ‘Last chance’라는 주제로 메뉴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충분한 에너지와 열정,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렬함이 있기 때문에 하루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찬스이기 때문이다. 

 ‘3개 나라를 맛보다. 일본, 호주, 그리고 영국'
 
류태환 셰프는 고향 부산을 떠나 일본 도쿄, 호주 시드니, 영국 런던에서 요리를 배우고 현지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쌓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유학을 한 곳이 모두 해안가와 가깝고, 심지어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생선 요리를 좋아하고, 유니크 함을 추구하는 류 셰프의 의도적인 계획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쇄국정책과 전쟁, 그리고 새마을 운동과 같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미식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고종 황제 때부터 문호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지만 역사가 짧아 폭넓은 요리를 배우기 위해선 외국으로 나가야 했다.

류 셰프의 첫번째 유학국가인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요리유신'이라고 표현할 만큼 일찍부터 식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1200년동안 지켜온 육식금지의 율법이 해금되면서 스키야키와 와규와 같은 고기요리가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이제는 일식은 세계 미식가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우리나라보다 200년 앞선 문호개방의 결과이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미식 문화에는 '장인정신', '성실함', 그리고 '국민성'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요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신적인 부분을 체득했고, 사시미부터 고기요리, 튀김요리, 디저트까지 다양한 조리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국가 호주에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력을 배웠다고 한다. 역사가 짧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다문화국가이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있었고, 늘 신선한 시도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에스닉(ethnic)적인 요소를 존중해 동남아의 피시소스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드니와 골드코스트 주변에는 크기도 크고, 호주에만 있는 특이한 재료들을 널려있어 재료를 익히는데 체력적으로도 많은 단련이 필요했다.

세 번째 국가 영국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힘든 곳이었다. 자기 나라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이 강하고, 날씨도 우중충해서 유쾌하게 요리를 배우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보다 동양인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아 'Yellow monkey'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방에서 허드렛일도 많이 했다. 그러나 미슐랭 쓰리스타 고든 램지와 팻덕에서 경험을 쌓으며 그 나라 요리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고 그 만큼 많이 배웠다.
세 나라가 모두 해안지대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나라마다 서로 다른 미식문화와 조리법 덕분에 남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창작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류태환 셰프만의 내공이 쌓였다고 본다.

'3가지 재료로 입맛을 사로잡다. 삼합’
 
국제한식조리학교(CCIK)의 주최로 2014 갈라위크 메인 요리로 류태환 셰프는 삼합을 내놓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가 아니다. 창작 요리를 선보이는 류태환 셰프가 삼합에서 영감을 받아 가오리 날갯살, 삼겹살, 알배추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냈다.

삼합을 함께 만들어보기 위해 주방에 들어갔는데 500도가 넘는 뜨거운 버너와 수비드 머신을 발견했다. 수비드 공법 (Sous vide)은 프랑스어로 우리말로는 ‘진공저온조리법’으로 완전 밀폐와 가열이 가능한 위생 백에 재료와 부가적인 시즈닝 등을 넣은 상태로 진공포장을 하고 일반적인 조리온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조리하여 맛과 향, 수분, 질감, 영양소를 보존하며 조리하는 조리법이다.

류 셰프는 이 수비드 기법을 이용해 삼겹살과 가오리 날갯살의 맛을 제대로 표현하였다. 진공조리한 돼지 삼겹살은 겉면을 바싹 굽고, 야들야들한 가오리 날갯살도 진공조리한 뒤 돌돌말아 삼겹살 위에 올린다. 그리고 가니쉬로 고기즙에 볶은 알배추을 바닥에 깔고, 삶은 브로콜리, 껍질을 벗긴 달콤한 방울토마토 두 알로 데코레이션 한다. 그리고 그 옆에 그린칠리살사와 포크주로 삼합의 맛을 완성시켜주는데 류니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맛의 소스이다.

그린칠리살사는 된장 미소와 고추장을 반반씩 섞고 허브, 코리앤더, 파슬리와 같은 여러가지 스파이스를 넣어 쌈장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삶은 돼지껍데기를 튀긴 치차론을 가운데 세워 완성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며 다른 옷을 입히는 류태환 셰프의 요리를 보면 누구나 ‘요리는 과학이다’라는 표현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