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로 개발된 소형 원자로 ‘SMART’ 모형 앞에서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김긍구 부장. 이 모형은 실제 크기의 6분의 1 정도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100% 우리 기술만으로 원자로를 만들 수 있을까.”

“보다 안전하고 콤팩트한 원자로는 없을까.”

1994년 초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연구실에 모인 5명의 과학자는 소형 원자로 개발을 위한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들은 우선 소형 원자로 개발에 필요한 요소기술을 조사키로 했다. 요소기술 조사는 원자로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수집하는 사전 연구단계를 말한다. 국내 소형 원자로 개발 프로젝트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추세는 대형화였다. 전기출력 1000㎿ 이상의 대형 원전이 고리, 영광, 월성 등지에서 추진되던 시기다. 해외도 국내와 사정이 비슷했다. 세계적 원전 기업들은 소형 원자로 개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 박사들은 소형 원자로가 미래 원전 시장에서 각광받게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들의 연구는 3년 뒤 정부가 한국형 소형 원자로인 ‘SMART(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개발팀을 발족하게 된 단초가 됐다.

1997년부터 15년간 정부와 한국전력(KEPCO) 컨소시엄은 이 프로젝트에 총 3000억원을 투자했고 연인원 1500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달라붙어 개발에 매달린 결과 지난해 7월 표준설계인가(SDA)를 획득하며 세계 최초로 소형 원자로 개발에 성공했다.

SMART 원자로의 최대 전기출력은 100㎿. 해수담수화용으로 건설하면 원자로 1기로 인구 10만명 규모의 도시에 전기(9만㎾)와 물(하루 4만t)을 동시에 공급받을 수 있는 규모다.

1994년 당시 일반 연구원이던 김긍구(54) 박사는 19년이 지난 지금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부장’이 됐다.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 내 프로젝트 매니저(PM)가 김 부장의 주요 직책이다. 그는 SMART 개발 초기 단계부터 지금까지 현장을 지킨 유일한 과학자다. 그동안 본부장급 책임자의 얼굴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고 수백 명의 연구원이 이 부서를 거쳐갔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현 상업화 단계까지 전 과정을 경험한 그는 SMART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지난 10월 22일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형 원자로가 그리 대단한 겁니까.”

기자가 질문하자, 김 부장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소형 원자로 모형을 손에 쥐고 설명을 시작했다. 추가 질문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고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SMART는 일체형 원자로다. 외관상으로도 기존 대형 원전과 확연히 구별된다. 일체형의 장점은 분리형보다 안전하다는 점이다. 기존 대형 원전은 가압기, 펌프, 증기발생기, 노심 및 핵연료 탱크가 분리돼 있고 지름 1m 크기의 파이프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 파이프에 균열이 생겨 파손될 경우 순식간에 고온고압의 방사능 오염물질이 배출된다. 그러나 SMART는 하나의 베슬(용기) 안에 모든 장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

SMART 원자로를 개발하려면 모든 원전 장비를 최적화해 집어넣을 수 있는 초대형 철재 용기 제조기술이 필요하다. 만약 초대형 용기를 만들 수 있는 두산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이 국내에 없었다면 SMART 개발은 초기 단계에서 중단됐을지 모른다. SMART 원자로는 현재 기술로 최대 가로 6m, 세로 6.5m 크기까지 만들 수 있다. 소형 원자로의 외형이 되는 이 용기는 철 덩어리를 틀에 넣고 두드려 펴는 단조방식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높이 6.5m 이상의 크기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단조를 하고 난 용기의 평균 철판 두께는 30㎝ 이상이다. 이 정도는 돼야 원자로 내 150기압 이상의 고압을 견딜 수 있다.

◇ 아파트 2층 건물 높이에 두께 30㎝ 넘는 철판으로 만든 초대형 캡슐 모양

SMART 원자로의 최대 전기출력은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대형 원전(1000㎿)의 10분의 1(100㎿) 수준이다.

“우리가 만든 SMART 원자로의 용기 크기는 5.5m다. 내부 장비를 채우고 나면 무게가 1000t 이상이다. 아파트 2층 건물 높이에 두께가 30㎝가 넘는 철판으로 만든 초대형 캡슐 모양의 쇳덩이다. 100㎿를 생산하기에 최적화된 모델이다. 어차피 소형 원자로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더 클 필요는 없다. 인도네시아의 큰 섬이나 중동의 중소도시는 SMART 원자로 하나로 전력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김 부장 등 초기 연구진은 해외 수출용으로 소형 원자로 개발을 시작했다. 국내는 전력수요 밀도가 높고 송전망이 잘 갖춰져 있어서 소형보다 대형 원전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미국, 중동, 동남아 등 다른 국가들은 국토면적이 넓거나 큰 섬이 많아 대형 원전보다 소형 원전을 여러 개 만드는 게 경제적이다.

“우리가 소형 원자로 개발에 주력하게 된 건 이유가 있다. 화력, 수력, 원자력 등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발전소는 총 12만7000여개다. 이 가운데 96.5%가 소형 발전소다. 소형은 전기출력 300㎿ 이하의 발전소를 말하는데, 교체 대상인 발전소가 전 세계에 널려 있다. 국내는 총 500여 발전소가 있지만 소형은 주로 화력에 의존하고 원전은 모두 대형이다. 기술력만 확보한다면 해외에서 소형 원자로가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2% 기술력이 부족한 원전 수출국’으로 평가받았다. 2009년 UAE 원전 수주 당시에도 일부 원천기술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SMART 원자로에 사용되는 원천기술은 100% 국내 기술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원전강국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SMART에는 국내 기술로 만든 증기발생기가 들어간다. 나선형 튜브를 넣은 증기발생기는 우리가 직접 개발했다. 직경 15㎜, 길이 37m짜리 나선형 튜브가 총 3000개나 들어간다. 기존 대형 원전의 증기발생기보다 콤팩트하고 스팀 발생능력이 뛰어나다. 스팀은 보통 320도 정도의 고온인데, 물이 포함돼 있으면 포함증기라고 한다. 물기가 있는 걸로 터빈을 돌리면 금세 망가진다. 그래서 대형 원전은 증기발생기 상단부에 수분을 분리하는 장치를 설계해 몸집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SMART는 나선형 튜브를 이용해 별도 습분장치 없이도 물기가 없는 수퍼스팀을 만들 수 있다. 증기발생기를 크게 만들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3000개의 튜브는 특별 센서를 이용해 균열을 감지할 수 있다. 기존 대형 원전은 증기발생기를 교체할 경우 1년 이상이 소요된다. 증기발생기는 20m 높이의 초대형 용기다. 이에 반해 SMART는 한 달 만에 교체가 가능하다.”

SMART에 들어가는 냉각제 펌프도 국내 기술로 고안한 장비다. 원전 원자로 펌프는 작년에 기술개발이 완료됐다고 한다. “기존 대형 원전에 사용되는 펌프는 오염수가 새어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150기압 이상의 고압을 모터와 축 사이로 쏴줘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SMART용 펌프는 고압 출력장치가 없어도 된다. 특히 SMART에 들어가는 증기발생기와 펌프는 국내 중소기업에 의뢰해 제작했다. 수출용 원자로의 부가가치를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과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SMART 원자로는 천재지변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셧다운’ 이후에도 우라늄의 잔열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 후 방사능 유출 사태로 이어진 건 쓰나미 피해로 전기공급이 중단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전기 공급 중단으로 냉각수 유입이 차단됐고 원자로에서 발생한 잔열 때문에 수소폭발이 발생했다는 게 김 부장의 설명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천재지변에 대비하기 위해 16개 이상의 예비 발전소를 두고 있었는데 물에 잠기는 바람에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원자로에 있는 우라늄은 셧다운이 되더라도 7% 이상의 잔열을 유지하고 최소 1% 이상의 열을 계속 발산한다. 냉각수 유입이 중단되면서 우라늄의 열기로 인해 원료 용기가 녹고 거기서 대량의 수소가 발생한다. 이게 외부의 산소와 결합하면 수소폭발이 일어난다. 후쿠시마 원전의 우라늄은 아직도 용기 바닥에 남아 열을 발산하고 있을 거다. 반면 SMART는 전기가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중력을 이용해 냉각수가 순환되도록 만들어 안전하다. 피동잔열제거방식을 도입, 전기 펌프가 없어도 최소 20일간 냉각수 공급이 가능하다.”

SMART 개발팀이 성공하기까지 공식적으로 작성한 서류만 대형 책자 형태로 30권(1만쪽)이 넘는다고 한다. 자료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로 준비한 비공식 자료를 합치면 이보다 최소 4배 이상의 서류가 개발 단계에서 작성됐다. 개발 도중 정부 방침에 따라 사업 방향이 바뀐 적도 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정권이 바뀌면 다른 얘기가 나오고 사업 방향이 오락가락한 적도 있다. 그래도 소형 원자로를 고수한 끝에 오늘의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간 투자 컨소시엄 구성 때도 한전의 참여 여부를 놓고 한동안 시간이 지연되는 등 막판 투자 유치에 비상이 걸린 적도 있다.”

SMART 원자로는 미국 등 원전 선진국보다 5년 이상 앞선 기술로 평가받는다. 올 초 미국의 원자력 연구를 총괄하는 INL(Idaho National Laboratory) 고위 인사가 찾아와 미국에 SMART 원자로를 건설하자고 제안했을 정도로 탐내는 기술이다. 미국은 현재 정부와 민간이 1조원가량을 투자해 소형 원자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 원자로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해외 소형 원전 시장에서 건설 계약을 추진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 세계 최초로 개발한 지 1년5개월 지났는데 아직 해외 수출 실적 없는 이유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말레이시아 정부와 SMART 원자로 건설을 염두에 둔 공동 타당성 조사를 곧 시작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대형 원전을 지을 수 없는 나라가 많다. 단순히 후진국이라서가 아니라 대형 원전이 필요한 수준의 전력수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 생산은 수요에 맞춰서 이뤄져야 한다. 아니면 예산만 낭비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소형 원자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 SMART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 명단.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소형 원자로는 전력 생산뿐 아니라 대형 선박의 엔진을 구동하는 발전기로도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박의 대형화 추세 속에서 가스나 오일을 이용한 디젤엔진의 경우 연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소형 원자로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는 쇄빙선에 소형 원자로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지역난방이나 해수담수화, 해저광물채취용 원자로, 수소발생용 원자로 등 산업 분야에서도 SMART와 같은 소형 원자로의 활용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하재주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장은 “소형 원자로의 활용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 조선업계에서 특히 관심이 많다. 심지어 미국은 소형 원자로를 개발해 대형 원전과 경쟁구도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SMART는 우수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대형 원전에 비해 SMART는 건설비용이 5분의 1(약 1조원)에 불과하지만 전기출력량이 10분의 1 이하여서 생산성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1㎾h당 신형 원전의 전력생산단가는 약 55원 정도인 반면 SMART는 100원이 든다. 그러나 동급의 화력발전소에 비하면 SMART의 전력생산단가가 저렴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석탄원료를 사용하는 국내 화력발전소의 전력생산단가는 70원 정도이고, LNG는 150원, 석유는 200원 수준이다.

“SMART 건설비가 과다 책정돼 있다. 현재 소형 원자로 건설비용을 1조원대로 추정하는데, 우리가 조사해본 결과 건설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대형 용기의 경우 한전에서 조사할 때 두산중공업이 1기당 1000억원을 제시했는데 같은 내용을 현대중공업에 제시해 보니까 400억원이면 제조가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SMART를 직접 건설하고 나서 전력생산단가를 다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초로 소형 원자로 기술을 개발한 지 1년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해외 수출 실적은 없는 상태다. 컨소시엄의 최대주주인 한국전력이 대형 원전 수주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에 소형 원자로 수출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국내 기술의 상업화를 주도하는 산업부는 미래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의 성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SMART는 부처 간 칸막이에 가려 기술개발을 해놓고도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않은 대표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재주 소장의 말이다.

“열심히 기술을 개발해서 세계 최초로 소형 원자로를 만들었지만 정작 이를 상업화하기 위해 나서는 곳이 없다. 한전은 UAE원전 수출 이후 후속 수출에 매달리느라 SMART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다. 미래부도 상업화를 이끌 능력이 없어 보인다. 산업부가 나서주면 좋은데 그쪽은 미래부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어쩔 수 없이 연구원들이 해외에 나가 기술력을 홍보하고 있다. 일부 관심을 보이는 국가도 있는데 구체적 사업 얘기를 나눌 우리 측 대화 상대가 없어서 난감한 적이 있었다. 해결책이 필요하다.”

하 소장은 국내외 어느 곳에서든 SMART를 시범적으로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전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력수요를 감당하려면 원자력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소형 원자로를 짓고 시험가동을 하면 해외로 판로를 열기가 쉬워진다. 한전이 소형 원자로에도 신경을 써주거나 아니면 포스코 등 컨소시엄에 포함된 다른 회사가 상업화를 주도하게끔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 정부가 꼬인 실타래를 풀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10월 28일 발매된 주간조선 2279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