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가 지난주 국내 첫 선을 보였다. ‘설국열차’는 제작비 450억 원 투입 및 크리스 에반스·에드 해리스·존 허트·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배우 캐스팅으로 더욱 기대를 모았다. 게다가 ‘봉준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으로 파급력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무서운 흥행속도로 개봉 5일째 32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봉 감독은 이미 영화 ‘괴물’ 연출 전부터 ‘설국열차’를 기획하는 단계였고 10년 가까이 이 영화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승승장구 흥행 질주로 1000만 관객 탑승을 내다보고 있지만 과연 해외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2013 세 번째 할리우드 진출, 새로운 세계의 문 열까

2013년 영화계는 벌써 두 번의 쓴 맛을 봤다. 지난 2월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가 할리우드에 상륙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할리우드 영화 시장 판로로 자신 있게 들어섰지만 결국 다른 세계의 문을 열지 못했다.

‘라스트 스탠드’는 제작비 480억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출연으로 시선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300개 점유 및 관객 수 6만에 불과해 국내 흥행에 실패했다. 게다가 와이드 스크린 방식으로 전미 2800개 관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9위에 랭크되며 해외 시장 흥행에도 참패했다.

‘스토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작비 131억 투자 대비 국내 35만 관객을 불러들이는데 그쳤다. 할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지만 국내외 모두 흥행 도장은 찍지 못했다. 롤아웃 방식으로 미국 5개 도시에 개봉 후 관객반응에 따라 스크린을 늘려가며 박스오피스 순위 상승을 보이는 듯 했지만 ‘라스트 스탠드’와 마찬가지로 흥행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해외 개봉 전 호평이 주를 이뤘던 작품들이지만 국내외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성과 없는 진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나왔다.
앞서 제작 된 두 편 영화처럼 ‘설국열차’도 세계 동시 개봉을 목전에 두고 있다.

현재 누적 관객 수와 비례할 정도로 해외에서 보내는 관심이 아주 뜨겁다. 과연 이전의 흥행 참패를 역전시키고 2013년 할리우드 영화 진출의 빙하기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녹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내 흥행 돌풍...해외는 스크린 확보가 관건

국내 개봉 하루 만에 41만 관객을 불러들이더니 2일 100만, 3일 250만, 5일까지 320만 관객을 끌어 모은 ‘설국열차’. 이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괴물’과 비슷한 최단기간 흥행기록이다. 이러한 쾌속 질주를 그대로 이어나가 조만간 1000만 승객을 태운 만원 열차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또한 국내 열차운행처럼 해외운행에도 긍정적인 성과를 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애초에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작한 것과 달리 벌써 166개국에 판매되며 해외시장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해외시장의 성공을 미리 점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평과 기사만으로 해외시장진출의 흥행 여부를 가늠할 수도 보장받을 수도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뜨거운 맛을 본 사례가 있기에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올해 북미·영국·호주 등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아마도 스크린 수의 확보가 흥행의 관건일 것이다. 판권만으로 제작비 반의 수익을 올렸다는 호의적인 기사들을 보면 어느 정도 스크린 확보를 해놓고 해외에서도 자신감이 있게 성공할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흥행작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1300여개의 스크린 독점으로 쓴 소리를 들으면서도 695만 관객의 발을 잡았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스크린 수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그러나 국내와 달리 해외 스크린 확보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전에 두 개의 문은 열지 못했다. 감독도 배우도 제작비도 굳게 잠긴 흥행의 자물쇠를 열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문을 두드리고 열쇠를 찾아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현명한 스크린 확보로 전 세계를 순회하는 설국열차가 멈추지 않고 달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국내영화역사의 한 획을 그을 날을 기다려본다.

대중성 vs 흥행성 무엇이 정답인가

식을 줄 모르고 관객을 탑승시키는 ‘설국열차’. 누적 관객 수가 늘어남에도 유독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폐쇄적 장소의 한정된 공간적 제약을 깨고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고 활용함으로써 마치 외국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각 개인에 대한 속사정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며 다양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때문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커터스(크리스 에반스)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다보니 한국배우(송강호·고아성)의 비중이 매우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 안에서 그들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지만 외국 영화에 한국 배우가 출연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또한 배우 하나하나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관객을 몰입시키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 스토리 묘사는 아쉬운 부분이다.

반전과 약간의 코믹요소도 숨어있지만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로 이끌어가기에 한국식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만하다. 현재의 한국 정서와는 약간 어긋나는 진행 방향으로 대중성과 상업적인 면은 부족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 또한 15세 이상 관람 선이 적절한 것인가 의문스럽다. 성인이 봐도 충분히 잔인함이 느껴지는 장면이 꽤 등장하고 폭력의 농도가 다소 짙어 걱정스럽다.

물론 봉준호 감독·할리우드 배우·막대한 제작비 등으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것은 불(不)보다는 호(好)가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번 ‘설국열차’를 통해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능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봉준호 감독이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하게 성장하는 과정과 할리우드 개봉 한국영화 ‘설국열차’가 국내만큼의 흥행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