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연예계로 돌아가지 않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치던 한 여배우가 ‘텐프로’에서 목격되었다. 데뷔 후 비교적 단시간에 주인공을 꿰차며 전도유망했던 A씨가 왜 텐프로에 다니게 된 것일까? 기자는 어렵게 그녀를 만났다.
※ ‘텐프로’는 업소, 마담 혹은 부장 등이 접대부들의 봉사료 중 10%만 챙긴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과 우리나라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 중 상위 10%를 뜻한다는 주장이 있다.
언니, 한 번만 봐주세요
A씨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무명 기간이 짧았다. 또래들이 단역이나 조연을 맡았을 때 그녀는 드라마 주인공을 맡았고,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듯 보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순간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송계는 흐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트렌드가 빨리 변하고, 대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스타에 열광하기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까마득하게 잊히고 있었다. 더군다나, 방송계에서 그녀의 입지는 아직까지는 톱스타가 아닌 ‘뜨고 있는 신인 배우’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A씨가 텐프로에 다닌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취재 결과 A씨는 유흥업소에 다니는 접대부들을 대상으로 운행하는 정액제 콜띠기(정액제 콜택시)를 타고 연예인들이 많이 다닌다는 미용실에 매일같이 들러 머리를 매만진 후 업소로 향했다. A씨의 업소 출입은 그녀가 자주 다니는 미용실뿐 아니라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단, 안타깝게도 그녀 자신만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운도 없는 편이었다. 방송 또는 영화 관계자들과 손님과 업소 아가씨라는 얄궂은 운명으로 마주치기도 했다. 그녀와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가 충격을 금치 못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의외로 침착하고 태연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업소 아가씨들 중에서도 도드라지는 예쁜 외모를 가졌기에, 단골이 많고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도 그만큼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A씨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녀는 순순히 자신의 과거를 인정했다. 어쩌면 모든 걸 다 포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자의 질문에,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언니, 한 번만 모른척 해주세요. 한 번만.” 하고 애처롭게 말했다.
그녀는 대체 왜, 남들이 가지 못해 안달이 난 스타의 길을 접고 텐프로에 다니게 된 것일까?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 A씨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예계 활동으로 얻은 건 마음의 상처뿐
그녀와 만나기로 한 강남의 한 카페. 먼저 도착한 기자가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한 남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전화를 안 받아. 안 왔나 봐! 네가 전화해봐.”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A씨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가서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로 2통, A씨의 번호로 2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에게 다가가 혹시 A씨와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았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자신이 A씨의 남자친구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로 A씨를 만나려 하느냐며 기자에게 명함을 요구했다.
“여자친구가 일을 하지 않은 지 2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고 있고요. 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입니까?”
기자는 알고 있는 사실들과 그것들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들을 그에게 이야기한 후 A씨와 동석을 요구했다. 그제야 그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서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1분여 뒤 A씨가 카페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 앞에 나타난 A씨는 TV 브라운관보다, 영화 스크린에서 보던 모습보다 더 어여뻤고 어려 보였다. 그녀와의 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그녀가 눈이 빨갛게 충혈될 정도로 눈물을 쏟은 뒤였다. 남자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자리를 떴다.
“더 이상 연예계 활동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요.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얻게 된 건 마음의 상처뿐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혹시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성상납 또는 인격적으로 모욕적인 일을 겪었거나 노예 계약 같은 일들로 힘들었느냐”라는 질문에는 “그건 전혀 아니다”라고 했다.
빵집·카페 아르바이트,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다
“연기자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소속사에 통보한 뒤 한동안은 칩거생활을 했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저에게는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어요. 소속사도 이러한 저의 성격을 알기에 제 의견을 존중해주었어요. 방송 관련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저는 제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독한 마음을 먹고 어떻게든 연기자로 살아남으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그녀가 내린 결론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집 안에서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생계는 이어가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빵집,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간혹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기도 힘들었고, 심지어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저를 향한 수군거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연기자 생활을 했다는 것이 제 일생에서는 축복이 아니라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 즈음이었고요.”
무엇보다 그녀를 가슴 아프게 만든 건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한때 집안의 자랑거리였던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매일 눈물바람이었다. 그녀는 당당하고 멋진 딸이 되고 싶었다. 형편이 그리 썩 좋지 않은 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업소의 룸에 들어가 얼굴마담처럼 술 시중만 들면 배우생활을 했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주변의 유혹에 넘어갔다. 더군다나 다른 접대부들처럼 2차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VVIP들만 상대한다고 하니,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가능성도 적을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텐프로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어도 되나? 불안했다
“처음에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남자들 옆에 앉아서 술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기도 했고, 혹여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런 감정에 무뎌져갔어요.”
그녀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라고, 단지 돈을 좀 벌기 위해서 잠시 외도를 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합리화했다. 그녀의 청순한 외모는 그곳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점차 단골이 늘어났다. 그녀는 하루 평균 10여 개의 룸에 들어갔다. 수입은 상상했던 것보다 많았다. 처음에는 ‘이렇게 쉽게 돈을 벌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전적인 보상이 그런 죄책감을 잊게 해주었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돈이 생기고 난 뒤 그녀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부모님께 돈을 부치는 일이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일을 하셨어요. 나이 드신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평생 고생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돈으로 맛있는 것도 좀 사드시고 해외여행도 가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그녀의 부모는 그렇게 많은 수입이 어디서 생겼느냐고 묻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구체적인 집안 사정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급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가정형편을 우회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외도(?)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방송 관계자들이 조금씩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제가 생각을 고쳐먹는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A씨는 몇 번이고 기자에게 꼭 기사를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로서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항변을 하다가,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보도된 후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이 연관 검색어로 올라갈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보다는 부모님이 받을 충격을 더 걱정했다. 그리고 다시는 텐프로에 나가지 않겠다고 거듭 말했다. 그건 기자와의 약속이었고,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강남의 한 카페에서 A씨와 헤어졌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전직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다짐은 현실적인 문제로 다시 흔들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다만 다시는 그녀를 텐프로에서 보았다는 목격담이 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문화강국 대한민국 연예계의 어둡고 씁쓸한 뒷면
“수많은 연예인들은 가난하다”
A씨를 만나고 난 뒤, 기자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스타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한류 스타들이 존재하고, 또 많은 꿈나무들이 한류 스타를 꿈꾸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연예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연예인으로 데뷔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정작 데뷔를 했다 하더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보다 더 어렵다. 한때 ‘스타’라 불렸던 연예인이 사기에 휘말리거나 도박에 빠져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연예인은 데뷔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얻은 인기를 유지하기는 그보다 더 어렵다.
A씨도 마찬가지다. 또래 친구들보다 데뷔가 빨랐고, 그래서 스타의 자리에 쉽게 입성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연예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중도에 스타의 길을 접고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 연기자로 데뷔했지만 수입은 많지 않았다. 연예인을 포기했을 때는 지독한 생활고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전직 연예인들은 자신의 유명세나 이름을 빌려 동업이나 사업을 하자는 주변 제안이 많고, 심지어 A씨처럼 텐프로나 유흥업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 중 80%가 3년 이내 출연작이 없으며, 75%가 연봉이 1천만 원 미만이라는 발표가 있다. 물론 퇴직금, 연금,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금액이다. 또한 국세청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연예인 2만 1천817명은 한 해 동안 1인당 평균 2천499만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에 비해 12.3%나 줄어든 금액이다. 반면 직장인의 평균 연봉은 2천530만 원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연예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므로 이 통계에는 연소득 1천만 원 미만인 연예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대다수의 연예인들이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적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현실은 2013년 싸이가 미국 빌보드차트 2위에 오르고, 카라가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김기덕 감독이 올해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화강국 대한민국 연예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있는 길고 긴 그림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