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채용서 배제되는 '고졸'
일부 공공기관들 학교장 추천서 요구하고 성적 상위권으로 제한
"대졸이상 고학력자들 하향지원 막고 우수인재 뽑기위해 불가피"

대졸 취업난이 계속되자 대학을 중퇴하고 고졸 학력으로 취업을 결심한 A씨는 올해 한 공공기관의 '고졸자 제한경쟁 채용시험'에 응시해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잠시였다. A씨를 채용하기로 한 공공기관은 그가 대학에 진학한 기록이 있어 '순수한 고졸자'가 아니라며 임용 포기를 종용했다. 대학 중퇴자도 엄연한 고졸자가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취득한 B씨는 공공기관 고졸 채용에 도전했다. 그러나 B씨가 지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공공기관에서는 고졸자 채용에 '학교장 추천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

학력 차별 없는 채용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공공기관이 고졸자 채용을 확대하도록 하고 있지만, '순수한 고졸'만을 채용하려는 일부 기관들 때문에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2013년 공공기관 채용 계획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채용 규모는 1만5372명이고, 그중 고졸자 채용 규모는 2512명이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고졸자 채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졸자는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 이하인 자를 포괄한다. 또 지원 대상을 성적 상위자 등으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모든 고졸자가 고졸 채용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일부 기관은 전문대학 이상을 다녔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고졸 채용 응시자들은 "고교 졸업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뜻에 맞지 않아 포기하고 고졸 채용을 준비하는 이들을 제외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한다.

고등학교 성적 상위권자만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한 공공기관도 있다. 부산항만공사, 광주도시공사 등 일부 기관은 지원 자격을 '고교 평균 석차 비율이 상위 10% 이내인 자'로 못박았다. 응시자들은 "성적 상위자들이 모두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응시자의 성적을 제한하고 채용하겠다는 것은 다수의 고졸자에게 응시 기회 자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정고시 출신에 대한 차별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고졸 채용에서 학교장추천서를 요구하고 있어 검정고시 출신의 진입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들은 "학교장추천서 등의 제한을 두는 것은 대졸 이상 학력자가 고졸 채용에 '하향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응시자가 대학을 졸업했어도 지원서에 졸업한 사실을 기재하지 않으면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공공기관들은 고졸 채용 응시자들의 학력 검증을 위해 한국장학재단에 학자금을 신청한 기록이 없음을 증명받아 제출케 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을 신청하지 않고 대학을 다닌 대다수의 대졸자들은 학력 확인이 불가능한 셈이다. 성적 제한을 둔 기관의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성적이 우수한 인재가 필요해 성적 제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졸 채용을 준비 중인 대학 중퇴자 김모(21)씨는 "최근 경제난·취업난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생산직 등 고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크게 늘고 있다"며 "이들도 고교를 갓 졸업한 응시자들과 다를 바 없이 취업난을 겪고 있는데, 응시를 어렵도록 한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