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온 국민이 가난에 허덕이던 1960년대, 정부는 ‘아이 적게 낳기 운동’에 전력을 쏟았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키우자”는 구호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외쳤고 3·3·35 운동도 벌였다.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낳고, 35세까지만 낳자는 뜻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구호들이 50년이 지난 우리 시대의 젊은 부부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이 낳으면 살기 어려운 요즘 현실. 적게 낳아 잘 키워 보려는 2012년 대한민국의 부부들이다. ◆본능적 욕구만 알았던 그 시절…출산율 ‘6명’의 시대
1960년대 우리나라의 공식 출산율은 ‘6명’이 넘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출산율이었는데, 전문가들은 당시 국민의 의식 수준과 사회적 환경이 높은 출산율로 연결된 것이라고 말한다. 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 이삼식 연구실장은 “당시 사람들은 피임이라는 것을 잘 몰랐고, 문맹도 많은 상태였다”면서 “먹고 자는 등 본능적 욕구만 있다 보니 아이도 생긴 대로 그대로 낳았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부모의 교육 수준도 낮았고, 또 자식에 대한 교육열의도 낮았다.

당시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에 사활을 걸었다. 보건소나 ‘가족계획 지도원’에서는 무료로 불임시술을 해주기까지 했다. 인구를 기반으로 한 노동력은 경제발전의 필수 요소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혼잡비용’이 발생한다. 복지와 위생에 지나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경제 성장은 발목 잡힌다.

1970년대에 들어 조금 더 사람들의 ‘지성’에 호소하는 문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며 남아선호 사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되자”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피임’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자발적 피임을 호소한 것이다. 2명 이하 자녀를 둔 남성이 불임시술을 하면, 공공주택 분양 우선권을 주기도 했다.

◆출산율은 떨어졌다. 정부는 그래도 불안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출산 정책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1983년 출산율은 2.1명 이하로 떨어졌는데, 이 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이다. 2명의 부부가 2.1명의 아이를 낳으면 현 수준의 인구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 전 세계적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하락했고, 정부의 적극적 산아제한 정책이 맞물리면서 거둔 성과다. 하지만 정부는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출산율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욱 강력히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다.

출산율은 점점 더 떨어졌다. 정부는 1989년 피임사업을 중단하고 사실상 산아제한 정책을 중단했다. 1990년대 초반, 출산율은 1.5명 내외에서 고착화하는듯 했다. 정부는 1996년 인구정책을 ‘산아제한’에서 ‘자질향상’으로 변경했다. “있는 사람들을 잘 키워보자”는 이야기다.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꿍없는 우리세대”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젊은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현격히 적어지자 국가에서 남녀 성비(性比)를 맞춰보겠다며 내놓은 구호였다.

◆“제발, 아이 좀 낳아주세요”…4년 뒤,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1997년, 우리나라 인구사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우리나라를 강타했고, 1.5명 내외에서 머물던 출산율은 극적으로 하락했다. 급기야 2005년, 출산율은 1.08명까지 떨어진다. 보건복지부 저출산정책과 조충헌 사무관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혼 연령이 높아졌다는 게 저출산의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해 40세까지 출산했지만, 지금은 20대 후반에서 30대가 돼서야 첫 아이를 낳는다. 가임기간 자체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결혼 연령이 높아진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지적된다. 경제 위기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졌고, 또 주택가격이 불과 수년 사이에 2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정부는 “아이가 미래입니다”를 부르짖으며 출산장려 정책에 나섰다.

2005년을 저점으로 출산율은 약간 높아졌다. 2010년 합계출산율은 1.23명. 통계청은 출산율이 2045년 1.42명까지 상승한다고 가정한다면, 2030년부터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출산율이 예상만큼 올라가지 못할 경우 2020년부터 전체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생산 가능 인구는 201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4년 뒤부터 우리는 노동력 부족현상을 걱정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이 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연구실장은 “정책은 제대로 정착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프랑스의 경우 1970년대에 시작한 출산장려 정책이 안정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다만, 정책제안이 점진적이기보다는 혁신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천천히 정책을 풀다 보면 국민들이 만성화돼 소용없어진다”면서 “혁신안을 내놓아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의지를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