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板(판)이 흔들리니 錢(전)이 요동쳤다
안전자산 선호현상 확산
각국 주식 매도 '쓰나미'… 글로벌 펀드 시장서 81달러 빠져나가

지난 19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神戶)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약 6300명이 사망하고 1400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따른 충격으로 당시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은 일주일 동안 7% 넘게 하락했다. 이후 6월 29일 바닥까지 떨어진 닛케이평균이 지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는 7개월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다. 일본 경찰은 이달 11일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미야기현(宮城縣)에서만 1만5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전체 사망자 수가 4만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핵(核) 공포까지 확산되면서 재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3·11 대지진 피해 규모가 16조~25조엔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2005년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규모의 네 배에 달하는 것이다. 그것도 앞으로 예상되는 전력부족에 따른 생산차질 등은 다 제외한 수치다.

이번 지진은 땅의 껍질을 의미하는 지각(地殼)을 덮는 판이 이동하면서 발생했다. 금융 시장에도 지각이란 게 존재한다면 일본 대지진은 국제 금융 시장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참사에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확산되면서 각종 해외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은 급락했다. 해외주식형펀드에 투자됐던 자금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원자재 간에도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 지도가 바뀌고 있다.

◆日 대지진…글로벌펀드엔 '쓰나미' vs 국내펀드엔 '봄바람'

중동 일부 국가에서 시작된 긴장감이 중동 지역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날아든 일본의 대지진 소식은 글로벌펀드 시장 전반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다. 이달 들어 10일부터 16일까지 글로벌 펀드 시장에서는 80억9300만달러의 돈이 빠져나갔다.

쓰나미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선진시장에도 도달했다. 선진시장에서는 올 들어 주간 최대 규모인 58억8600만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미국펀드에서는 39억900만달러가 유출됐고 유럽펀드에서도 17억3200만달러가 이탈했다. 일본펀드만이 저가 매수를 노리는 '스마트 머니'에 힘입어 8600만달러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 위험으로 인해 순유출이 지속되던 신흥시장 역시 자금 이탈이 계속되며 같은 기간 22억700만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이 사라졌다. 투자자들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펀드에서 9억7100만달러, 글로벌이머징마켓(GEM)펀드에서 7억6900만달러를 거둬들였다.

김형조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은 "중동의 정치적 리스크에다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과 방사선 유출 우려가 전 세계 증시의 주식 매도 쓰나미로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자금 유출 규모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던 신흥시장에서도 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펀드가 죽을 쑤는 동안 국내주식형펀드에는 6주 연속 자금이 몰렸다. 18일 기준으로 1주일 동안 국내주식형펀드에는 7708억원 규모의 돈이 들어왔다. 기간을 1개월로 늘려 잡으면 순유입액은 1조7742억원에 달한다. 코스피지수가 하락하면서 발동한 저가 매수 심리와 위기가 기회라는 투자심리가 겹치면서 국내주식형펀드에 호재로 작용했다.

최효종 하나대투증권 웰스케어센터 센터장은 "최근 대외적인 리스크에 따른 1분기 주가 조정은 국내 주식형펀드의 저가 매수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라며 "일본펀드를 환매하고 해외주식형으로 갈아탈 경우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국내주식형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곡물 '지고' 에너지·산업재 '뜬다'

지난 16일 기준으로 한 주 동안 에너지섹터펀드에서는 4년 만의 최대 규모인 6억5700만달러의 순유출이 발생했다. 일본의 경기침체 가능성과 함께 정제시설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원유 수입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투자자들의 이탈로 이어졌다. IT섹터펀드에서도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인해 4억16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일본의 대지진이 일으킨 파고가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그 영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쏠려 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만큼 원자재 수요 둔화는 불가피하지만 원자재의 종류에 따라 피해 규모와 기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글로벌 곡물 가격의 하락을 예상하면서도 원유와 산업재에 대한 수요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승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전 세계 곡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주요 곡물 수입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의 소비심리 위축은 글로벌 곡물가격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러나 피해 복구 과정에서 원유와 산업재에 대한 수요는 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승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도 "국내 주식 시장에서도 지난달과 비교해 에너지섹터의 투자 매력이 더욱 높아졌고 기타, IT섹터의 투자 조건도 개선됐다"면서 "섹터별로는 에너지, 기타, 소재, 통신이, 업종별로는 정유, 지주회사, 철강, 디스플레이, 인터넷, 통신장비, 유선통신, 기계업종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