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초중고 학내 성범죄 2년 새 최대 10배 증가
학내 성범죄 대응엔 ‘사전 예방’이 더욱 중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부모는 모릅니다. 상상도 못해봤고,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부모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텐데, 아이는 어떨지 더 걱정입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아동상담센터에서 만난 성폭력 피해 아동의 아버지 최 모씨의 말이다.  최 씨는 4주 전부터 딸 아이와 함께 이 상담센터에서 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다. 한 달 전쯤 아이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최 씨는 학교와 상담센터의 협조를 통해 아이가 6학년 상급생에게 3차례에 걸쳐 성추행당한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가해자를 대상으로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가해 아동과 부모가 가해 사실을 부정해 진행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 학교 이미지 때문에 은폐… 드러난 피해사례 전체의 10%뿐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학교가 울타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학교 안전망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월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8살 여학생을 수차례 성폭행했던 혐의로 이 학교 경비 직원 김모 씨가 구속 기소됐고, 지난 8월에는 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남성이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정신지체 2급 여학생(12)을 학교 본관 부근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학교 내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라 나오면서 초중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중고 학내 성범죄가 지난 2년 간 최대 1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 적발 내역을 보면 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2년간 평균 1건이던 것이 올해 9월 기준 10건으로 증가했고 중학교는 2년간 평균 2.5건이던 것이 올해 13건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드러나는 피해보다 숨겨져 있는 피해가 더욱 큰 것이 문제다. 여성가족부 권익기획과 박동혁 사무관은 “성폭력이 발생해도 학교나 학원 같은 곳에서는 이미지 때문에 은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난해 60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보고된 피해사례는 실제 전체 피해의 10% 정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선진국과 비교해 성범죄자에 대한 우리나라의 처벌법은 엄격한 편이다. 최근 개정된 성폭력특별법은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범죄의 경우 7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형량을 강화했고, 20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했다. 하지만 성범죄 공개를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성범죄 사건이 신고부터 기소, 유죄 판결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선진국 수준 ‘처벌’, 성범죄 방지엔 ‘사전 예방’이 더 중요
 
성범죄자에 대한 신고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 만으로는 아동 성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사전 예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폭력상담소인 경기해바라기아동센터 차승희 부소장은 “정부의 정책과 방침이 피해아동 구제라는 사후 대책에 집중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제는 가해 자체를 막기 위한 성교육과 신고문화 확산 등의 사전 예방에도 힘을 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성범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성폭력 예방 교육 시간을 학교 내에서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현재 학교 차원의 성교육 프로그램은 1년에 10시간이 의무, 나머지는 개별 학교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마저도 재량 시간으로 배정돼 있어 제대로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공조 체제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실제 아동 성범죄 피해 사례가 발생하면 중앙정부 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며 “중앙정부의 관리와 교육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자발적인 예산 운영과 정책 집행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법의 사각 지대에 있는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미성년자의 재범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분석에 따르면 2009년 발생한 소년 강간범 1589명 가운데 재범인 경우는 28.1%에 달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10세 이상 14세 미만은 ‘촉법소년(형법상 형사책임무능력자로서 소년법에 의해 보호처분 받음)’으로 분류해 형사처벌이 불가하고, 또 14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담과 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이 없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차 부소장은 “최근에는 청소년 가해자 비율이 성인 못지않게 증가하고 있는데 현재 보호관찰소에서 이뤄지는 40시간 수강 명령 정도로는 교정 효과가 거의 없다”며 “재범을 막기 위해서는 청소년 가해자의 상담과 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앤TV 강시진 기자 [ksaone@chosun.com]
 
(이 기사의 내용은 4일 오전 10시 20분, 5일 오전 12시 20분, 6일 밤 10시 20분에 'TV로 보는 맛있는 공부'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www.businesstv.co.kr/영상 촬영/편집 서무원PD, 김진수PD, 용민우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