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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확정, 기재부 예산실에 무슨 일이?
칼 안 맞으려는 부처 공무원들버티기, 매달리기… 물귀신 작전
깎아내려는 예산실 공무원들"정책 우선순위 있는데… 스토킹 그만"

5일 오후. 폭우가 쏟아지는 일요일인데도 과천 기획재정부 건물 4층은 일하러 나온 직원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예산실 직원들. 9월 말 확정되는 내년도 정부예산안 일정을 앞두고 부처별 예산 심의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7월부터 9월까지는 새벽 한두 시 퇴근이 예사입니다. 예산실은 출근보다 퇴근을 먼저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예요." 복지예산과 박재형 서기관의 말이다.

월요일인 6일 오후. 예산심의실이 있는 4층은 엘리베이터부터 복도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중앙정부의 각 부처는 물론 국책연구원 등 정부기관에서 재정·예산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 '예산 따내기' 특명을 받은 만큼 자신들이 제출한 예산액이 삭감되지 않고 무사히 심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마지막 절차까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예산실 측에서는 "심의 중이니 정숙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눈길은 자꾸 심의실 안으로 쏠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윤희갑 경영전략팀장은 "심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일단 결과가 궁금하니까 밖에서라도 기다려보는 거죠. 그만큼 간절하고요"라며 웃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버티기, 매달리기

바야흐로 '예산 전쟁'의 계절. 해마다 이맘때면 기획재정부 예산실 안팎에선 진풍경이 펼쳐진다. 한푼이라도 더 예산을 타내려 읍소하는 각 부처 공무원들과 한푼이라도 아껴 최대 효율을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는 예산실 공무원들의 뜨거운 줄다리기! 각 부처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편성안에 기재부 예산실이 '칼자루'를 휘두르는 시간이니 그야말로 피가 튀긴다.

'을' 입장에 서 있는 부처 공무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갑 중의 갑'일 수밖에 없는 예산실 담당 실무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각종 전략을 구사한다. 10년 전만 해도 밥 사기, 술 사기, 심지어 룸살롱 접대 같은 '로비'가 성행했다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오해를 받지 않으려는 예산실이 미리 차단막을 쳐놓은 탓. 공무원들 사이에는 "기재부가 전략적으로 술 싫어하는 사무관들을 예산 일선에 앉힌다", "관련 업무를 새로 익혀야 하는 신참들을 배치한다", "대인관계에 가장 까칠한 직원들을 앞세운다"는 식의 소문이 나돌 정도다.

하여 원시적인 방법부터 동원된다. 1차 전략이 낯 익히기, 버티기. 자기 부서의 예산을 심의하는 사무관, 주무관에게 수시로 전화해 목소리 익히기, 달려가 낯 익히기, 만나줄 때까지 버티기 작전을 펼친다. 실제로 예산철이면 서울 광화문 청사 공무원들은 일과를 대강 마친 뒤 오후에는 기획재정부가 있는 과천 청사까지 다시 '출근'하는 게 예사다. 각 부처의 예산편성안이 만들어지는 7월부터 기재부 심의가 끝나는 9월 말까지 예산실 복도는 오후 서너 시만 되면 각 부처 공무원들로 만원이다. 예산실에서는 '면담예약제'도 실시해보고 대기실도 설치해 편의를 돕지만 넘쳐나는 방문객들을 수용하기엔 벅찬 상황이다.

그래도 간다. "오후 4시쯤 가서 밤 11시가 될 때까지 기다려본 적도 있어요. 처음엔 콧방귀도 안 뀌는 예산실 사무관을 나중에는 '내가 졌어. 좋아! 과장님이니까 해준다' 소리가 나올 때까지 미친 척하고 달려들어야 하지요." '예산 베테랑'으로 통하는 과장급 실무자의 전언이다.

'체험 삶의 현장'도 불사…'고시 인맥'을 찾아라!

'체험, 삶의 현장'식 작전도 있다.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담당관실의 김인철 주무관 얘기가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기능대학 같은 현장에 함께 가서 직업훈련생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받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상담사들, 청년실업자들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절절히 들어보게도 하고요. 몇날 며칠 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단 현장방문 전략은 일찌감치 구사해야 한다. "부처별 예산 한도가 확정되는 4월 이후부터 6월 중순까지가 적정 타임이죠. 예산실 직원들이 비교적 한가한 때이니까요. 7월로 들어서면 어림없습니다. 늦었다고 봐야죠."

'인맥 파워'는 여전히 유효하다. 각 부처 실무 국장들의 능력은 그들이 지닌 네트워크를 통해 평가받을 정도. 한 과장급 여성은 "아무래도 고시 출신 국장들이 윗선에서 움직여주면 유리하다"면서 "부서 간부들의 고시 인맥이 작동돼 하다못해 전화라도 한 통 넣어주면 면담 분위기가 한결 화기애애해진다"고 귀띔했다.

예산실도 괴로워… "제발 숲을 봐주세요"

힘들기는 '갑'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토커'에 가까운 부처 실무자들의 전화공략, 면담공략, 인맥공략에 예산실 담당자들은 혀를 내두른다. "내가 맡은 부서의 정책도 공부해야 하고, 예산안의 적정성도 검토해야 하는데다,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까지 맞춰서 넘겨주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데 그저 만나달라고만 우기니 죽을 맛이죠." "솔직히 날아다녀도 시원치 않을 만큼 바쁜 타임인데, 제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그것도 장황하게 설명하시니 짜증이 나요. 밤 11시나 돼야 내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있으니까요." 연구개발예산과의 황경임 사무관은 "자료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와 핵심만 짧게 프레젠테이션해주시는 분이 제일 반갑다"며 웃었다.

상황이 이러니 예산실에 마주앉은 양쪽 공무원들 표정이 밝기란 힘들다. 공무원 생활 십수 년째인 과장급 공무원은 "연배 어린 사무관들에게 타박을 받다 보면 내 신세가 애처로울 때도 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예산실 강영규 예산협력과 팀장은 "부서 내 워크숍 때마다 친절교육을 시키지만 예산심의가 막바지로 치닫는 이맘때가 되면 피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