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1세대… 재정 어려움에 '허덕'
"고용 초점 정부 지원 방식이 문제…국민 의식 바꿔야"

# 지적장애인 설재선(28)씨는 한 수제 쿠키회사에서 ‘달걀 신공’으로 불린다. 수제 쿠키 제작의 첫단계인 반죽에 쓰일 달걀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깨고 분리해내기 때문. 벌써 9년째 이 회사에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지적장애인 이희진(24)씨는 ‘신의 손’으로 유명하다. 이씨의 손을 거쳐야만 쿠키의 제조 과정이 모두 끝난다. 쿠키 포장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한 봉지에 들어가야 할 쿠키의 중량 105~110g을 단번에 맞힐 수 있는 ‘능력자’로 꼽힌다.

◆지적장애인 37명의 '희망공장', 위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설씨와 이씨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설씨는 훈련과정을 거친뒤 어느 정도의 감독을 받아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지적 2급 장애를 갖고 있다. 이씨는 교육을 통해 숫자를 인지하고 구별해낼 수 있는 지적 3급 장애인이다.

설씨와 이씨 외에도 이 수제 쿠키회사에는 현재 35명의 지적장애인들이 작업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모두 37명의 지적 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사회와 소통하는 이 일터는 사회적 기업 '위캔'이다. 이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수경 사무국장은 "쿠키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쿠키를 만드는 곳"이라고 말한다.

지난 2001년 장애인 직업재활센터로 시작한 '위캔'은 2007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매출 12억원을 넘기며 사회적 기업 대통령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정부 재정지원 끊기면서 사회적 기업 역할 '빨간불'

'위캔'처럼 노동부가 인증해준 사회적 기업은 현재 전국에 319곳. 위캔은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사회적 기업 '1세대' 36곳 중 하나로, 소위 잘 나가는 사회적 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수경 사무국장은 "그동안 잘 나간만큼 고민도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 인증과 함께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인건비 2억원을 지원받았지만 지난해 말로 정부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인들의 '희망 공장'인 위캔은 '자립'이라는 벽 앞에서 11명의 직원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이수경 사무국장은 "수익보다는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데, 일반 기업과 스스로 경쟁해 살아남으라는 것은 무리"라며 "당장 재정 지원이 끊기면 쿠키를 팔아봤자 적자가 날 수밖에 없어,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위캔'처럼 정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1세대 사회적 기업들 역시 정부 재정지원이 끊기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고 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취재팀이 사회적 기업 1세대 36곳을 전화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4곳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떼거나 폐업했다. 취재에 응한 기업 23곳 중 12곳은 재정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으며 상당수 구조조정을 했다.

장애인을 고용해 모자를 만드는 '동천'은 사회적 일자리 지원을 받던 인력 중 절반을 해고했다. 노인 이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심생활'은 정부지원이 끊기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적립금을 까먹고 있는 신세가 됐다.

동천의 성선경 대표는 "대부분 사회적 기업은 고령자나 장애인 같이 자립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립하기란 쉽지 않다"며 "게다가 장애인이 만드는 물건이라고 하면 잘 팔리지도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질적 지원 정책 마련과 '착한 소비' 늘어야

위캔 이수경 사무국장은 "고령자,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선입견을 갖지 말고 사회적 기업이 만든 제품을 소비해 달라"며 '착한 소비'를 호소하기도 했다.

사회적 기업 지원네트워크 정선희 이사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설립과 초기 정착에 대한 지원일 뿐,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시행착오를 하면서 사업을 구상하는 진정한 의미의 창업단계의 지원은 없다"고 아쉬워 했다.

사회적 기업 지원 단체인 '함께 일하는 재단'의 장동열 팀장은 "사회적 기업이 진정한 윤리적 시장을 형성해나가기 위해서는 취약계층에 맞춰져 있는 관심의 초점을 기업의 사회적 가치창출에 대한 평가로 옮겨야 한다"며 현재 사회적 기업 인증제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재단이 함께 지원하고 있는 '청년 예비 사회적 기업(소셜벤처)'을 소개하며 "단순 일자리 창출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 추구해야 할 창조성, 사회변화, 혁신 등의 요소를 평가해 이들이 질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한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23일 밤 9시50분, 11시50분과 24일 오전 8시20분,9시50분 케이블TV 비즈니스앤 '비즈 &뉴스 브리핑‘을 통해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www.businesstv.co.kr > 영상편집 이상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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