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껏 전세계적 영향 미친 불황은1930년대 일어난 대공황이 유일…
과거 위기서 뭔가 단서 찾아낼뿐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몰라

경제학자 중에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측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따라서 그들이 이번 금융위기가 얼마나 빨리 끝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와 그로 인한 대공황 발생 당시 경제적 지식 수준은 지금처럼 취약했었다. 당시에도 대공황을 미리 예측한 경제학자는 없었다. 1920년대에 일부 경제 전문가들이 주식시장에 형성된 거품을 경고하기도 했지만, 이후 10년간 미국 경제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한 대공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공황이 끝날 무렵인 1938년 8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기자인 랄프 블래그덴(Blagden)은 미국의 교수, 은행 전문가, 노조위원장, 경영자협회와 정당 대표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들에 대한 질문은 모두 같았다. "대공황의 원인은 무엇인가요?"였다. 그러나 이들의 답변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너무 달랐다. 누구도 자본주의 최대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이 지적한 대공황의 원인은 정부와 노동, 산업, 국제정치와 정책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정부의 잘못된 시장 개입, 잘못된 통화정책, 고임금, 독점, 과잉 재고, 유럽의 재(再)무장, 노동 분쟁, 신용 확대 등이 포함됐다.

오늘날 경제이론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묻는다고 해도 대답은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대답들이 추가될 것이다.

전례 없는 부동산 버블이나 전 세계적인 저축 과잉, 국제무역 불균형,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제받지 않는 장외시장, 신용평가회사들의 실수, 부풀려진 부동산 자산 평가, 거래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에 대한 불감증 등 말이다.

이런 답변들은 대부분 혹은 부분적으로라도 옳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위기는 실제로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어진 것이고, 좋지 않은 일들이 한꺼번에 발생하면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엔 금융시스템을 한계 수준 너머로 몰고 갔다.

지난 1월 20만명 이상이 사망한 아이티 지진과 같은 사태를 예측하는 문제도 비슷하다.

예측을 위해 지진의 원인들을 규명한다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원인을 규명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긴 리스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위기의 원인을 꼽아보자면 끝이 없다. 다각도로 피드백을 받는 복잡한 경제체제하에서 악순환을 촉발하는 사건은, 아마존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연쇄적으로 작용해 어느 먼 곳에 어마어마한 태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겉보기엔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수학의 혼돈이론(chaos theory)은 멀면서도 사소하게 느껴지는 촉발현상이 왜 큰 변화를 일으키는지, 매우 규칙적인 행성들의 움직임도 아주 먼 미래로 확대하면 왜 예측할 수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기상 예보관들도 먼 미래를 내다볼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정확한 수학 모델은 갖고 있다. 거대한 병렬회로 컴퓨터들은 물과 열 역학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방정식으로부터 몇 가지 결과를 추산해내도록 짜여 있다. 아주 먼 시점까지 추정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과학자들은 날씨가 형성되는 구조는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거시경제학의 문제는 오늘날의 금융위기를 설명하는 원인의 유형들을 체계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거시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수학적 모델들은 겉보기에 기상 예측 모델과 비슷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모델의 정합성은 결코 견고한 불변의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의 원인과 관련해서 최근에 나온 책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카르멘 라인하트(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Rogoff) 교수가 쓴 〈이번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이다. 이 책은 역사 이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 사실상의 모든 금융위기를 통해 인류가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집약해 놓았다. 이 책은 거의 철저하게 비이론적이다. 단순히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위기의 패턴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800년이라는 긴 금융 역사 속에서 이번처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광범위한 불황은 단 한 차례, 즉 1930년대 대공황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의 연구를 통해 이번 금융위기 이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다른 과거의 위기들을 살펴보면서 뭔가 단서를 잡는 일뿐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앞으로 경제 회복세가 탄탄할지, 아니면 실망스러울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