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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좋은 한글과컴퓨터, 영업外 상황으로 위기
작은 시장규모가 큰 원인… 포털의 독점·불법복제도
관련업체 성장 가로막아

올 1월 국내 대표적 소프트웨어 업체인 한글과컴퓨터 소속 한 임직원이 서울동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셋톱박스 전문업체인 셀런이 회사를 인수하고 나서 회사 자금을 빼내 셀런과 계열사를 위해 사용하고 있으니 김영익 한컴 대표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내부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한컴과 셀런을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검찰은 이달 10일 한컴 김영익 대표와 김 대표의 형인 셀런 김영민 대표, 한컴 재경팀장·셀런 경영기획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한글과컴퓨터는'현금'확보용?

검찰은 이들의 배임 횡령 금액이 385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작년 사상 최대인 151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한컴으로선 휘청거릴 만한 규모다. 검찰 관계자는 "셀런이 한컴 명의로 대출을 받아 셀런의 계열사 주식을 사게 한 뒤 그 돈으로 한컴에서 빌린돈을 갚는 등 다양한 형태의 배임 횡령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익 대표는 "회사에 손해를 입힌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것도 없다.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확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한컴 사태의 원인은 한컴을 인수한 업체들이 한컴을 언제든지 돈을 꺼낼 수 있는 지갑처럼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컴은 2008년에도 한컴의 전직 대표가 배임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컴은 1990년 창립 후 8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사실 한컴은 아무것도 안 해도 돈을 버는 회사다. 국내 최대 '큰손'인 정부가 매년 물건을 대량 구매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정부와 교육기관은 한컴의 사무용 소프트웨어인 오피스를 226억원어치 샀다. 지난해 한컴의 오피스 판매액은 364억원이다. 오피스는 자재나 부품이 필요 없는 지식상품이기 때문에 추가 생산비용이 사실상 '제로(0)'다. 오너가 배임이나 횡령을 하지 않으면, 일부러 망하려고 해도 망하기 힘든 구조다.

사실 올해 한컴은 사상 최대의 호기(好機)를 맞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MS오피스로 만든 문서를 다른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으로도 읽고 쓸 수 있도록 표준양식(오피스 오픈XLM)을 만들어 공개했기 때문이다. 과거 MS오피스로 만든 파일을 한컴 오피스로 읽으면 문자나 기호·표가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컴이 올해 발표한 '오피스 2010'으로는 MS오피스로 만든 파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반면 MS오피스로는 한컴 오피스로 만든 파일을 읽고 쓸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나 즐길 수는 없다. 한컴도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컴도 장기적으로는 표준을 공개한다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수년 내로 한글 오피스로 만든 파일을 MS오피스로 열어 작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경영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1% 시장' '거대포털' '불법복제'가 SW산업 걸림돌

한컴은 'IT(정보기술) 강국'이라는 한국에 왜 대형 소프트웨어(SW) 업체가 나타날 수 없는지 보여준다. 한컴의 한계는 그대로 한국 SW 산업의 한계인 탓이다.

▲ 백강녕 기자

일단 한컴의 최대 고민은 시장의 규모이다. 예를 들어 MS 전체 매출에서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선이다. 다른 모든 외국계 거대 SW기업도 전체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1%. 말하자면 한국은 '1% 시장'이다. 한컴은 지난해 경상연구비로 66억원을 썼다. 반면 MS는 매년 연구개발비로 약 9조원을 투자한다. 한컴과 MS가 경쟁한다는 자체가 놀라울 정도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의 거대포털이다. 한컴은 2006년 당시 검색 시장 점유율이 75%에 달했던 NHN과 함께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웹오피스를 공동개발해 공동으로 서비스했다. 그러나 수익배분과 개발전략에 대한 이견으로 2008년 말 사업을 접었다. NHN은 이후 독자 웹오피스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네이버·다음 등 거대포털이 인터넷 시장을 과점(寡占)하고 있다. SW업체들이 인터넷 사업에 독자적으로 진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또 개발사들은 포털과 사업을 할 때 수익배분에도 불만이다. 한 중견 SW업체 사장은 "포털과 같이 일하면 재주는 개발사가 부리고 돈은 포털이 번다"고 말했다.

▲ 김진 기자

정품SW를 사지 않는 문화도 업체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은 불법복제품 사용자가 많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는 "작년 불법으로 인터넷에 떠 있는 한글오피스 파일을 6만7455건 찾았다"며 "이로 인한 한컴의 손해액은 1140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팔리는 SW는 게임 정도다. 게임 쪽에서 돈을 쓸 때도 인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과 한국에서 여러 게임을 서비스하는 넥슨측은 "같은 숫자의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일본 매출이 한국보다 3~5배 높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SW업체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못하고 대기업 하도급이나 정부 조달 물량에 매달린다. 한국에서 SW 사업을 하려면 글로벌 거대 SW업체, 거대포털, 불법복제와 싸워 이겨야 한다. 한컴은 여기에다 경영자의 배임·횡령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