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성과 내는 조직은'빨리' '제대로' 움직이며훨씬 '효율적'으로 실행해

#사례 1: 생활용품 분야의 글로벌 리더 P&G

P&G는 타이드·아이보리·페브리즈 등 생활용품 분야의 40여개 수퍼브랜드와 300종이 넘는 상품으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글로벌 장수 기업이다. 이 회사는 경영 성과도 우수하지만, '매트릭스 조직'을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P&G는 수많은 상품과 전 세계에 걸친 방대한 사업 조직을 관리해야하는 동시에 각 로컬시장의 특성을 실시간 반영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대안으로'상품 대 지역' 차원으로 이루어진 매트릭스 조직을 구축,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사례 2: 널리 알려진 글로벌 자동차 회사

A사는 몇해 전 글로벌 구매 조직을 매트릭스 형태로 개편했다. '지역 대 부품' 차원으로 구성된 매트릭스 조직을 통해 글로벌 전략의 일관된 실행과 로컬 시장에서의 유연한 대응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의사 결정 프로세스는 더 복잡해졌고, 부서별 보고 라인에 혼란이 생겼다. 지역 및 차종별 실적에 대한 책임 소재 논란도 발생했다.

위 사례의 두 기업은 매트릭스 조직이라는 동일한 조직 구조를 도입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상반된 결과가 발생했을까? 매트릭스 조직의 이 같은 문제는 대부분 기업 경영자들이 항상 부딪히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잘 되는 조직과 안 되는 조직의 차이

요즘과 같은 경기 침체기가 오면 많은 기업은 효율성과 실적을 높이기 위해 종종 조직 구조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어떤 조직 구조로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하나로만 정해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는 지역 중심의 조직, '캔 스프'로 유명한 캠벨은 상품 중심의 조직, P&G는 매트릭스 조직을 각각 채택하고 있다.

조직 성과 개선을 위해 미국 기업들이 매년 투자하는 금액만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반면, 실제 '고성과(高成果) 조직'은 얼마 되지 않는다. 베인&컴퍼니가 최근 전 세계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기업 중 23% 정도만이 탁월한 성과 달성에 필요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성과를 창출하는 훌륭한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을 가르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해답은 '의사 결정 중심의 조직'을 구축했는가에 달려 있다.

고성과 조직은 저(低)성과 조직에 비해 의사 결정을 '제대로' 하고, '빨리' 하며 '훨씬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조직이다. 고성과 조직은 저성과 조직에 비해 이 세 가지 요소에서 모두 두 배가량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세 요소 간에 승수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즉, 빨리 의사 결정하는 조직은 제대로 의사 결정할 확률이 4배 이상 높고, 제대로 의사 결정을 하는 조직, 즉 의사 결정의 품질(quality)이 높은 조직은 실행을 8배 이상 효율적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고성과 조직은 저성과 조직에 비해 매출 성장률은 50%, 수익성은 2배, 주주수익률은 70% 높은 성과를 보고 있다.

이는 그 직원의 높은 충성도로도 이어진다. 직원들이 친구·친지에게 자기 회사를 추천할 의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고성과 조직은 평균 48%를 보인 반면, 저성과 조직은 -27%를 나타냈다. 직원이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자기 회사를 추천하는 회사와 반대로 직원이 험담을 늘어놓으며 입사를 만류하기까지 하는 회사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의사 결정 중심'의 조직 구조를 갖추느냐 여부가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임직원의 충성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의사결정 렌즈'로 조직을 들여다보라

'창업한 지 20년 만에 매출 76억달러로 세계 2위 컴퓨터 제조업체로 성장', '창업주이자 CEO인 켄 올슨(Ken Olsen), 포천지에 의해 미국의 가장 성공한 기업가로 선정'.

이는 1980년대 중반, 세계 2위의 컴퓨터 업체로 부상했던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의 전성기 시절 평가였다. 그러나 그 뒤 이 회사는 급격하게 몰락해 1998년 컴팩에 인수되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

원래 DEC는 높은 기술력의 '중형 컴퓨터' 제품을 개발해 '기업 고객'들 사이에 탄탄한 명성을 쌓아온 회사였다. 기술 벤처로 출발한 DEC는 엔지니어가 제품 개발 과정의 결정을 주도하던 설립 초기의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엔지니어가 의사 결정을 주도하는 방식은 시장에서 '성능 좋은 중형 컴퓨터'를 요구하는 시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소비자 요구가 개인용 컴퓨터(PC)로 넘어가면서 달라진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엔지니어들은 성능이 뛰어난 중형 컴퓨터 기술이 있는데도,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PC를 개발해야 한다는 상품 기획 부서의 요구에 자존심이 상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결국 시장의 외면을 불렀다. DEC의 몰락은 단순한 전략의 실패라기보다는, 그러한 판단과 의사 결정을 하도록 만든 조직의 문제였다.

경기 침체와 같은 위기 환경이 닥치면 많은 외부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경영자들은 내부적인 문제에 관심을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시기야말로 기업의 리더들이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때이다.

조직 강화를 위해 경영자들이 던져야 하는 질문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즉,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내려야 하는 중대한 결정들은 무엇인가? 그러한 결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가? 조직원의 역할과 프로세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현재 우리 조직의 가장 역량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능력과 시각이 필요한가? 우리 조직 문화의 어떤 측면이 의사 결정의 효과성을 높이고 있으며, 반대로 버려야 하는 문화 요소는 무엇이 있는가 등이 그것이다.

조직에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의사 결정 렌즈'를 껴 보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수적인 경영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와코비아(Wachovia) 은행은 회사 정책을 고(高) 리스크 전략으로 크게 전환하면서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리스크 위원회'는 단 한 번도 잠재 리스크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리스크가 높은 회사에 투자하는 중요한 과정에서 정작 리스크 관리 기능은 의사 결정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반면 JP모건은 리스크 관리 요소를 모두 정교하게 구축해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명확히 인식해 전사적 대응에 성공한 사례다. 리스크위원회는 CEO의 경영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역할을 원칙대로 충실하게 수행했고, 이를 통해 경영진이 간과하는 부분을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대부분 리스크 관리 조직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조직을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차이가 생존과 몰락을 갈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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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이 아닌, '의사결정'에 필요한 역할을 명확히 정하라

기업의 조직 구조가 어떻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역할이 모호하지 않고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른다면 조직 내의 '스트레스 수준'은 계속해서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의사 결정 사안 자체가 잘 정의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결정을 누가 내릴지 역할 소재가 분명히 지정되어 있지 않거나 여러 사람에게 분산돼 책임이 불분명한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자동차 회사의 경우, 신차의 기본 사양과 기본 색상 조합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사 결정 중 하나다.

자동차 회사 B는 평소 이에 대한 의사 결정이 매우 더디게 이뤄졌고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마케팅 부서와 제품 개발 부서의 담당자들이 서로 본인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부서라고 응답했고, 더 심각한 것은 이에 대해 전사 차원에서 해당 의사 결정 부서가 어디인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를 컨설팅하면서 의사 결정 사항별 역할에 대한 진단을 했고, 이에 따라 조직별 역할을 새로 정의하고 배분했다.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기업들은 '중요한 의사 결정 사안에 대해 누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면서, 현재 의사 결정상 각 부서, 담당자의 역할을 파악하고 그 개선책을 모색해 보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가 있다.

최근 많은 국내 기업들은 조직 구조 개선방안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수 십년 동안 기업을 성장시킨 기존 사업을 대체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발굴해 추진할 수 있는 인재와 조직을 확보하는 것이 커다란 숙제로 떠오른 것이다.

진정한 '고성과' 조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필요한 핵심 의사 결정 사항이 무엇인가 파악하고, 의사 결정이 '제대로 빨리' 내려지고, 실행될 수 있도록 전체 조직을 정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지택 부사장은

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의 서울사무소에서 대기업을 대상으로 성장전략·신사업·조직혁신·기업변화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저서로 〈세일즈는 과학이다〉, 역서로 〈멈추지 않는 기업〉, 〈1등 기업의 법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