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기기 관리책임 제조업체에 떠넘겨
입출금 사고 발생해도 ‘모르쇠’ 빈축

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백모씨는 지난 11일 저녁 현금을 입금하기 위해 농협 녹번 지점을 찾았다. 백씨는 365일 자동화코너 내에 설치된 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해 현금 71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한참 동안 '처리 중'이라는 메시지만 뜰 뿐 입금이 완료되지 않아 비상전화로 사고 신고를 했다.

현장을 찾은 자동화기기 관리업체 직원은 “은행 영업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내일 아침 은행직원이 ATM기를 열어봐야 고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만 할 뿐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백씨는 “인터넷뱅킹으로 확인한 결과, 입금내역이 아예 기록되지 않아 밤새 애를 태웠다”면서 “다음날 오전 11시가 넘도록 입금처리가 되지 않았다. 지점에 전화를 걸어 사고접수를 다시 하려 했지만 20분 넘게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어렵게 직원과 통화한 끝에 오전 11시 40분쯤 71만원이 입금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점 직원 “업체가 관리…오작동 종종 발생”

백씨는 지점 직원에게 “자동화기기 오작동 때문에 일어난 사고냐”고 물었다. 직원은 사과는 커녕 태연하게 대답했다. “지폐 상태가 좋지 않거나 고객의 무리한 사용 탓에 돈이 기기 내부로 넘어가지 않거나, 입금처리가 안 돼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점의 또 다른 직원은 한술 더 떠 “관리업체 직원이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입출금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본사와 기기 관리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아무튼 입금처리가 됐으니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자동화기기 관리업체 관계자는 “고객이 입출금 사고 신고를 하면 관리업체의 종합상황실에서 은행과 연결된 전산망을 통해 사고 내용을 은행 측에 실시간으로 알린다”며 “은행이 해당 지점에 사실 확인을 지시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업 시작 후 2시간 넘게 걸렸다는 건 사실상 은행이 고객 불편을 수수방관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은행 자동화기기 유지보수는 기기 제조업체나 관리업체 등이 맡고 있는데 대부분의 은행들이 은행 영업시간에 한해서만 유지보수 계약을 맺고 있어, 입출금 오류 등 자동화기기 사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 자동화기기 사고 빈번

농협의 자동화기기의 오작동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한 단위 농협의 현금인출기(CD)에서 현금이 과다 인출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객이 1만원을 인출하려 했는데 5만원이 지급된 사고였다.

농협 관계자는 “CD기에는 ATM기와 달리 출금할 때 지폐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검증센서가 없다”며 “일일이 지폐를 확인하고 현금통에 투입해야 하는데, 직원이 1만원권 현금통에 5만원권을 잘못 넣어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ATM기 고장에 따른 고객 민원 건수도 농협이 가장 많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TM기 1000대당 고장 민원(06~07년 상반기)은 농협이 39.6건으로 1위, 10.2건인 외환은행이 2위, 9.7건인 우리은행이 3위였다.

◆”상시적 결함 점검, 노후기기 교체해야”

전문가들은 자동화기기 오작동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 위해, 은행 스스로 기기 결함을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노후기기 교체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자동화기기 제조업체 대표는 “은행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창구 거래보다 ATM기 이용을 유도하면서 5만 여대가 넘는 자동화기기가 운영되고 있지만, 잦은 고장으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노후기기 교체와 자동화기기 운영과 관련된 통신장비 점검, 카드 투입구의 먼지 제거 등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출금액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지폐를 셀 수 있는 계수기를 자동화기기 주변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소비자 역시 지폐 상태 등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보안담당자는 “입출금 오류 등 사고가 발생해도 증인이 없거나 특별한 증거가 없으면 은행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입출금 시간이 너무 길어지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거래내역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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