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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비 줄여 명품 구매… 백화점 매출 '큰손'으로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자기 삶의 만족 중시해"

사업가 이종우(35)씨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백화점 카드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이틀이 멀다 하고 현대백화점 본점을 찾는다. 시계, 수입정장 등 명품브랜드의 '신상품'을 둘러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 그는 "요즘엔 '유흥비 지출'을 '0'으로 줄이는 대신 명품브랜드의 시계, 벨트, 신발, 정장 등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며 "개인적인 만족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공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1000만원에 가까운 고급 시계나 한벌에 300만원 하는 정장 재킷을 사는 데 주저없이 지갑을 연다.

최근 이씨와 같은 '30대 남성'이 해외 명품브랜드의 핵심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30대 남성은 명품브랜드 제품 중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소품, 액세서리 쇼핑에 나서며 '작은 사치'를 즐겼다. 하지만 최근 가격이 높은 의류, 시계 등의 소비를 늘리며 해외명품부문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30대 남성, 명품 브랜드 큰손 부상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서 남성들의 해외명품 구매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07년만 하더라도 해외명품 부문의 남성 매출 비중은 20% 후반대에 머물렀지만 현재 40%대로 뛰었다. 3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성장을 견인한 것은 30대 남성 소비자들. 주요 백화점에서 해외명품 브랜드를 사는 남성 소비자 중 30대 남성 비중은 절반 수준까지 뛰어 올랐다. 올해 신세계백화점의 해외명품부문 30대 남성 구매비중은 44.6%로 2005년에 비해 6.8% 늘었다. 이에 반해 40대 남성의 구매비중은 2005년에 비해 0.7% 늘어나는 데 그쳤고, 50대는 오히려 6.1% 줄었다.

30대 남성들이 명품 소비에 나서면서 아르마니, 페라가모, 휴고보스, 제냐 등의 수입남성 부문은 각 백화점에서 올 들어 높은 매출 신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이들 브랜드들은 지난 9월부터 월 평균 5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매장 관계자는 "전체 남성정장 부문 매출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데 비하면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일명 '오바마 가방'이라 불리며 인기를 끈 가방 전문 브랜드 투미는 30대 남성 매출이 올 들어 두 배 이상 늘고, 루이비통, 펜디 등 명품브랜드의 남성 가방이나 지갑 등 액세서리 매출도 늘었다. 펜디의 이효완 이사는 "일부 남성 서류가방이나 남성용 지갑은 신상품이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품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태그호이어, 브라티틀링 등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들은 주요 백화점에서 올 11월 들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성장했다.

◆30대 남성, "가장 소중한 나"

최근 해외 명품 브랜드의 30대 남성들 구매 비중이 높아지는 주요 이유는 명품을 사는 '소비자 계층의 다양화'. 신세계 김봉수 마케팅 상무는 "원래 명품의 주요 소비자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일반 샐러리맨이나 신입사원, 면접을 준비하는 예비 직장인들도 명품 쇼핑에 나서며 구매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정지영 마케팅 부장은 "특히 1970년 전후에 태어난 지금 30대들은 경제발전과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소비문화의 혜택'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 비해 패션, 쇼핑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과거 30대 남성이 결혼 준비,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랐다면 최근엔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현재 자신에 대한 투자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

전문가들은 또 하나의 이유로 남성들 사이에서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을 꼽는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하익성 과장은 "최근 '몸짱', '얼짱'을 넘어 '꽃미남', '품절남' 열풍이 불며 사회생활을 하는 데 남성의 외모도 여성의 외모만큼 중요하게 인식된다"며 "이에 따라 자신을 '꾸미기' 위해 지갑을 여는 30대 남성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30대 남성의 명품 선호현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세계 김봉수 상무는 "백화점들은 요즘 30대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수입 브랜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