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유통 피해액 年7000억원 국내시장은 성장 한계점 달해
해외 배급 네트워크 구축하고 '할리우드 이너서클' 진입해야

영화를 예술로 보느냐, 산업으로 보느냐는 오래된 논란이다. 최근엔 영화의 산업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영화가 산업화되면 영화시장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예술성을 펼칠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점에서다.

영화 산업화의 정점에는 월트디즈니, 워너브러더스 등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이 있다. 이런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은 수직적·수평적 계열화를 통해 전 세계 영화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자국시장에서 제작비를 확보하고 해외시장에서 이익을 챙기는, 규모 경제의 이점을 철저히 활용하고 있다.



■관객 1000만명 시대…한국영화 르네상스 마감하나?

국내 현실은 어떠한가? 오락거리가 없던 1960년대에는 1인당 극장관람 횟수가 연간 5회를 넘을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의 출현으로 장기 침체기를 겪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영화시장 개방 압력과 자유로운 영화제작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내부 경쟁력이 쌓이기 시작했고, 1999년 '쉬리'의 성공으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쉬리'의 성공은 한국영화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켰다. 한국영화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과 함께, 우수한 인력과 풍부한 자본이 영화계에 투입되고, 우리 정서에 맞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좋은 작품이 제작되면서, 많은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 이로 인해 영화사와 투자사가 이익을 내고 다시 인력과 자본을 불러들임으로써 양질의 작품 제작과 관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2004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 1000만명을 넘겼다. 세계 영화시장의 부진 속에서도 한국영화는 1000만 시대에 돌입했다.

그러다가 다시 위기에 몰리게 된다. 2006년 '왕의 남자' '괴물' 등 최고의 히트작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는 깊은 수렁에 빠진다.

투자 부문에서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흥행 부진으로 투자금 회수가 불확실해진 데다, 영화 제작과 자금 투입 및 이에 대한 정산 체계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외면하게 됐다. 실제로 영상투자조합의 투자규모는 2005년 672억원에서 2007년에는 331억원으로 급감했다.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에는 불법다운로드도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온라인 불법유통은 2001년 이후 연평균 27% 증가했고 피해 규모는 7374억원(2006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불법유통 시장규모(5711억원)가 합법적인 시장의 3분의 1에 달한다. 가령 영화 '해운대'의 불법 다운로드에 따른 피해규모는 영화상영관 매출 150억원, 부가판권시장 56억5000만원, 해외시장 판매매출 120억원 등 약 32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해운대 제작비가 13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불법 다운로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법 다운로드는 비디오와 DVD 등 부가판권 시장을 고사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화 전체 수익에서 부가판권시장이 차지하는 비중(2008년 기준 21.6%)이 미국(71.3%), 프랑스(59.9%), 일본(61.6%)에 비해 훨씬 낮다. 게다가 온라인 불법유통의 확산으로, 최근 5년간 비디오시장은 5분의 1, DVD 시장은 4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구조적인 문제에도 원인이 있다. 극장 부문에서 성장의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1인당 연간 극장관람 횟수는 2006년 3.13회, 2007년 3.22회, 2008년에는 3.04회를 기록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약 4.5회를 기록하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3회 이상의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시장은 사실상 포화점에 이르렀다. 한국영화만 따져봤을 때, 2006년을 정점(1인당 연간 관람횟수 2회)으로 2007년 1.61회, 2008년에는 1.28회로 가파른 추락세다. 앞으로 한국영화는 총 관람객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은 채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점유율 경쟁에 따라 위기와 호황이 반복될 전망이다.



■글로벌화·사업규모 확대 등으로 성장기반 마련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무엇일까. 돌파구의 하나가 국제화다.

해외 진출의 기본 전제는 한국영화의 경쟁력이다. 다행히도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착실히 다져왔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작품도 많아졌고,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엽기적인 그녀' '장화, 홍련' 등 한국영화를 해외에서 리메이크하는 작품이 늘어나는가 하면,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수많은 외국인 관람객과 영화 종사자들이 몰리고 있다. 이병헌, 김윤진 등 영화배우나 감독의 해외진출도 눈에 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한국영화의 사례, '글로벌 쉬리'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시장에서 선순환 구조에 접어들면 해외 진출이 순항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수행할 기업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세계 5대 미디어 기업의 사업 규모는 국내 최대 미디어 그룹에 비해 매출액은 24배, 영업이익은 64배(2007년 기준)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미국의 3.7%에 불과하다.

국내 영화사의 해외 네트워크도 거의 전무하다. 글로벌 영화시장에 발을 들이려면 할리우드, 그것도 이너서클에 진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없고, 한국영화의 해외배급 네트워크를 확보한 제작사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는 활발하게 진출하지만 영화산업의 본류인 미국시장에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영화산업의 진정한 국제화를 위해서는 해외 배급네트워크 구축, 수출시장의 다변화, 해외메이저와 경쟁 가능한 대형 영화기업의 존재가 필수다. 대형 영화기업은 OSMU(One-Source Multi-Use: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용도에 활용하는 것)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즉 음악, 게임 등의 사업군을 동시에 가진 복합기업을 지향해야 한다. 해외 비즈니스가 가능한 우수 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불법 다운로드의 피해를 막기 위해 영화저작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사후단속이 아닌 사전방지 차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사법권을 보유한 상시 단속기구를 구성하거나, 불법복제를 조장하는 사이트를 신속히 폐쇄해야 한다.

투자자금의 유입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금의 집행·정산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영화의 완성과 배급을 확약하는 완성보증제, 영화 콘텐츠 제작사와 개별 프로젝트(영화)의 자금이 완전히 분리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영화에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