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자금력 지닌 원저우 상인에 투자상담회
중국인 투자 풍향계..대한국 투자자금 유치 물꼬 튼다
투자냐, 투기냐..한국경제 체질 개선에 달려

겉모습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중국의 라오바이싱(老百姓, 서민)이었다. 대부분 짧은 머리에 허름한 옷차림. 손목 시계와 조그만 손가방외에는 몸을 치장하는 액세서리도 없었다. 양복에 넥타이, 서류가방을 어깨에 맨 한국인들과는 외양에서부터 확연히 구분이 됐다.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중국인들, 하지만 원저우(溫州)라면 얘기가 다르다.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했던가. 원저우에서 돈자랑하다간 큰 코 다친다. 크든 작든, 대부분은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는 `라오반`(老板, 사장)들이다. 억척스럽게 벌어 안입고 안쓰고 모은 돈으로 상하이의 호화 별장이나 아파트를 싹쓸이하는 큰손이 바로 이들이다.

16일 오후 중국 원저우 상인들을 상대로 열린 한중투자상담회

◇`중국의 유대인`..원저우 상인, 그들은 누구?

16일 오후 중국 저장성(折江省) 남동부 원저우시의 샹그릴라 호텔. 최고급 호텔에 걸맞지 않은 소박한(?) 차림의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현지 상공인과 기업인들, `장사의 달인` 또는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원저우 상인들이 `한·중 투자 상담회장(사진)을 가득 메웠다.

이날 행사는 중국의 대표적 거상이자, 막대한 부를 축적한 원저우 상인들의 자금을 한국 투자로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된 이벤트.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 설명, 주식과 부동산 등 투자대상 소개가 중심이었다. 상하이 총영사관과 코트라(KOTRA), 민관 전문가 모임인 `중국투자포럼'이 원저우시를 상대로 양국간 투자유치 모임을 열자고 제안해 성사됐다.

원저우 상인들의 명성은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개발 또는 풍족이란 단어와는 원래부터 거리가 멀었던 지역.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산넘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이 많았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이들에게는 타고난 이재(理財) 본능이 있었다. 먹고 살 게 없어도 농기구 다루는 법보다 주판을 먼저 배운다는 이들이다. 그만큼 셈에 밝고, 유명한 수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원저우 시정부의 천아이전(陳愛珍) 외판 주임은 "시장이 있는 곳에 원저우인이 모이고, 원저우인이 가는 곳에 시장이 생긴다"고 했다. 약 60만명이 해외로 진출해 이문이 남는 장사라면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도 팔을 걷어붙였다. 돈냄새를 맡는데도 탁월했다. 리스크가 크거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면 동향인들끼리 의기투합했다.

한편으로 부동산 싹쓸이 등 시장기능까지 왜곡시키는 이들의 투자는 투기로 지탄받기도 했다. 최근 중국언론이 대형화, 집중화되고 있는 이들의 투자행태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시장과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 때문이다.

◇ 막대한 자금력.."투자냐, 투기냐" 그것이 문제

이들이 축적한 부(富)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른다. 일각에서는 세계 화교자본의 40%가 원저우 상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김정기 상하이총영사가 시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전한 바로는 원저우 상인들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1000억달러에 달한다.

돈이 많아도, 절대 부자티를 내지 않는 건 중국에서 회자되는 원저우 상인의 특징중 하나. `낮에는 라오반, 밤에는 땅바닥에서 잔다'는 말이 이들의 생활방식을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외관과 체면보다는 실용과 실리를 훨씬 중시한다.

상담회에서도 원저우 상인들의 심리가 투명됐다. 한국 거시경제에 대한 소개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약간 시큰둥한 듯 했다. 하지만 강연이 한국 증시상황과 중국기업의 상장(IPO) 열기, 부동산 투자 수익률 등으로 넘어가자 눈에 생기가 돌았다. 강연에 귀기울이면서 자료에 나온 수치를 확인하거나, 주요 내용을 메모하는 풍경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원저우 상인들이 한국 주식과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 전문가들과 개별 상담을 하고 있다
개별 투자상담에서도 원저우 상인들은 한국 주식과 부동산 등 개별 투자건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증권사나 부동산 컨설팅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최근 열기가 고조된 중국기업의 한국 상장(IPO) 전망, 서울 도심·강남의 주택과 오피스 빌딩 등에 대해 문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 주최측은 이번 행사의 의미를 `원저우라는 데에` 뒀다. 원저우 상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중국 일반인들에게 투자의 풍향계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갈수록 파워가 커지고 있는 중국 경제와 중국 자본. 이번 투자상담회를 계기로 원저우 상인들과의 네트워크를 확대, 이곳을 교두보로 차이나 머니(China Money)의 한국투자 물꼬를 트겠다는 생각이다.

상하이 총영사관의 김종철 상무관은 "앞으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투자유치 성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했다. 투자포럼을 이끌고 있는 최정식 지평지성 수석대표는 "원저우를 넘지 못하면 중국 대륙을 넘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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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우 = 이데일리 조용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