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끝나고… 월스트리트 '혹독한 가을'
발길 끊긴 보석상엔 "내 물건 좀 팔아달라" 전화만
제트기·요트 등 헐값으로 시장에… 그래도 안팔려
"美 수퍼부자들 쇼크"… 홍콩 경매시장도 찬바람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월스트리트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호화 파티로 흥청대던 화려한 시절은 가고, 월스트리트의 고액 연봉자들은 이제 지갑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시장엔 요트와 개인 제트비행기 매물이 쌓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얇아진 지갑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각) 포천지 선정 400대 부자 명단에 단골로 들었던 개인사업가 루이스 곤다(Gonda)도 제트기 2대를 1억800만달러에 매물로 내놓았다고 전했다. 곤다는 보유 중인 AIG 주식이 폭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이후 시장에 리스용 또는 매물로 나온 개인 제트비행기는 31% 늘었고, 올 들어서는 가격도 9%나 떨어졌다.

주말이면 허드슨 강에 요트를 띄웠던 월스트리트의 갑부들도 요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요트 중개인인 조나선 베켓은 "지난 8년간은 요트를 팔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나 최근엔 매물이 상당히 나오고 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고급 주택 가격도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고가 주택 매물이 나와도 팔리지 않으면서 가격이 내려가거나 임대로 돌려지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 바버라 코코란은 "한 달에 1만1500달러의 렌트비를 받겠다고 고급 빌라를 내놓았는데, 결국 8000달러까지 내려가서 계약이 체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도 희망가와 매수가격 간의 괴리가 커서 주택시장은 앞으로 6~18개월간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고급 와인·샴페인도 타격

지난달 20일 뉴욕 소더비 와인경매의 수입은 작년보다 10% 줄었다. 주로 병당 700~1000달러를 넘는 고급 캘리포니아산 와인들이 타격을 입었다. 고급 샴페인 소비도 줄고 있다.

단골 손님들이 붐볐던 미국 뉴욕 맨해튼 보석상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값비싼 보석을 고르던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대신 보석판매대행사엔 고가의 귀금속을 팔아달라는 전화가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보석상인 '해리 윈스턴'의 로널드 윈스턴 명예회장은 "미국의 수퍼부자들이 쇼크를 받았다"며 "비싼 다이아몬드를 사려고 몰려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날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월스트리트의 일부 갑부들은 술에 의존하고 있다. 뉴욕의 스트립바인 '릭스 캬바레'엔 저녁 10시 무렵이면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를 맨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몰려든다. 뉴욕타임스는 과거처럼 무희들에게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쇼핑할 수 있는 1만 달러짜리 크레디트라인을 열어주거나 12만5000달러짜리 귀걸이를 선물하지는 않지만, 스트립바는 여전히 브로커와 은행가, 외국 비즈니스맨들로 붐빈다고 전했다.



◆홍콩 미술품 경매시장 썰렁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술품 경매시장으로도 번졌다.

지난달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홍콩에서 처음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예상을 크게 밑도는 경매 실적이 나왔다. 세계 최대 경매회사인 영국의 소더비가 지난 4~5일 홍콩에서 가진 '2008 홍콩 가을 이브닝 세일'에서 낙찰 건수는 절반 이하로, 낙찰액 총액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세기 중국 예술품' 경매장에서는 110개 작품 중 39개(35.4%)만 낙찰되고 71개는 예상 가격에 훨씬 미달해 창고로 들어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금융위기의 찬바람이 미술품 애호가들의 열정을 식혔다"고 했고, 홍콩 빈과(�果)일보는 "경매 막판에는 수백 개 좌석 중 20개만 찰 정도로 부자들이 증발해버렸다"고 보도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홍콩에서 맥도널드와 도미노피자 등 패스트푸드의 매출은 최근 40% 가량 급증했다. 또 'buy one get one'(하나 사면 하나는 공짜) 제품들도 매출이 25%나 늘었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보도했다.

홍콩에서 음식점 및 가정용 주방기구를 판매하는 '실버스타'의 김운영(金雲泳·53) 사장은 "외식을 자제하고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이 늘면서 가정용 주방기구가 잘 팔린다"면서 "올 여름부터 레스토랑용 주방기구는 10% 감소하고, 가정용 주방기구는 10% 가량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