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열 발전 설비로 이동 중인 코크스. 섭씨 1200도가 넘는 코크스의 열기는 불에 타지 않는 기체로 옮겨져 발전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를 만들어낸다. /포항=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첨단 환경기술
고온 가스로 물 데우고 수증기 만들어 터빈 돌려
전체 전력의 80% 생산
버려지던 1200도 熱도 수증기 만드는 에너지로
이 과정에서 수소도 추출

석탄과 철광석이 용광로에 들어가면 뜨거운 쇳물이 쏟아진다. 이내 공장에는 열기와 연기가 가득 찬다. 산업화의 상징물인 제철소의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와 열기는 허투루 버려지지 않고 한데 모여 전기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된다.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인 수소도 여기서 나온다. 제철소가 '첨단 환경기술'의 산실(産室)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달궈진 석탄으로 전기 만들어

지난 7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코크스 건조 냉각(CDQ, Coke Dry Qenching)'라인. 경고음이 울리면서 철길을 따라 용광로 형태의 원통에 섭씨 1200도로 달궈진 코크스가 실려온다. 시뻘건 불길이 이는 코크스는 지상 30m 높이로 끌어올려져, 기자가 서있는 바로 옆의 대형 고로(高爐)로 쏟아졌다. 열기와 석탄 가루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고로 옆에는 보일러와 터빈이 차례로 연결돼 있다. 코크스의 열기로 물을 데워 수증기를 만들면, 수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열은 대부분 코크스(cokes)와 철광석 소결, 그리고 용광로에서 발생한다.

철광석에서 순수한 철을 뽑아내는 과정은 간단한 화학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철광석은 철(Fe)과 산소(O)가 결합된 산화철(FeO) 상태다. 이것을 밀폐된 공간에서 석탄과 함께 태우면 석탄 속의 탄소(C)가 산화철에서 산소를 떼어낸다. 덕분에 용광로에서는 산소가 제거된 순수한 쇳물(Fe)이 흘러나온다. 이를 위해 석탄을 태워 순수한 탄소상태, 즉 숯으로 만든다. 바로 코크스다. 철광석도 한 번 굽는 소결과정을 거쳐 용광로에 넣는다.

포스코 환경에너지실장인 이경훈 상무는 "제철소는 에너지를 잡아먹는 공룡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어느 공장보다 에너지 재활용률이 높다"고 말했다.

포스코에서는 제철소에서 배출되는 고온의 가스로 물을 데워 수증기를 만든다. 수증기는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지난해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는 사용 전력의 76%를 자체 조달했다. 이 중 용광로 등에서 나오는 가스를 이용한 발전이 80%를 차지한다. 중국에서는 제철소 가스를 재활용하지 못해 따로 석탄을 때서 전기를 생산한다. 인도에서는 가스를 그냥 태워버린다.
◆철광석 태운 열기도 재활용

이경훈 상무는 "포스코의 제철소 가스는 99% 이상 재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를 더 뽑아낼 여지가 거의 없는 셈. 덕분에 최근에는 코크스의 열기를 이용한 발전(發電)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엔 석탄을 태워 코크스를 만든 다음 물을 뿌려 식혔다. 워낙 온도가 높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섭씨 1200도가 넘는 열이 폐열(廢熱)로 그냥 버려진 것이다. 코크스 냉각 건조라인에서는 이 폐열을 불에 타지 않는 질소 같은 기체에 옮겨 수증기를 만드는 에너지로 재사용한다. 포스코 제철소에서 자체 생산하는 전력의 10% 정도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포스코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과 철광석 소결과정에서 나오는 폐열도 재활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코크스와 달리 철광석 소결 폐열은 높아야 섭씨 900도밖에 되지 않아 질소 같은 기체로 열을 옮기기가 어렵다. RIST 이산화탄소연구단 전희동 단장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라며 "3년쯤 더 연구하면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RIST에서는 시험용 설비를 만들어놓고 상용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코크스 폐열 재활용 설비와 마찬가지로 달궈진 철광석을 위에서 쏟아부으면 밀폐 용기 안에서 불에 타지 않는 기체가 열을 빼앗아 그 힘으로 수증기를 만드는 원리다.

◆에너지도 얻고 석탄도 줄이고

제철소 가스는 차세대 에너지원도 만들어낼 수 있다. 용광로 등에서 나오는 가스에는 메탄(CH4)처럼 수소가 들어있는 물질이 많다. RIST에서는 2005년부터 촉매로 탄소와 수소 결합을 깨뜨려 수소를 분리하는 연구를 벌이고 있다. 현재는 실험실과 상용화 중간단계인 시험용 설비가 만들어진 상태.

수소는 산소와 만나 전기를 만들고 부산물로 물만 배출하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현재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뽑아내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를 얻을 수 있지만 막대한 전기가 필요해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제철소에서 버려지는 가스에서 수소를 뽑아낼 수 있다면, 오염도 줄이고 에너지도 얻는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 일이 된다.

RIST의 한 공장 건물로 들어가자 파이프와 고압가스통이 연결된 대형 설비가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각종 기체를 배합해 제철소에서 나오는 가스를 인위적으로 만든다. 이것을 파이프에 주입하면 설비 위쪽으로 푸른 불길이 일어난다. 수소가 타는 것이다. 현재 시간당 5㎥의 수소가 생산되고 있다.

전희동 단장은 "제철소에서 나오는 가스의 2~3%만 써도 상업화가 가능한 시간당 20만㎥의 수소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 전 단계로 내년에 시간당 1000㎥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제철소 가스에는 촉매기능을 떨어뜨리는 황이나 타르 같은 불순물이 많다는 데 있다. 수소 추출 전에 불순물 제거 공정이 많이 필요한 이유다. RIST는 이런 전(前)처리 공정을 개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생활쓰레기와 폐플라스틱을 태운 가스도 제철소 가스에 혼합해 사용하는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수소는 제철소에서 석탄을 대신해 산화철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다. 이경훈 상무는 "제철소 가스에서 분리한 수소로 석탄을 대체하면 석탄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동시에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석탄(C)은 철광석에서 산소(O)를 빼앗아 이산화탄소(CO2)가 된다. 석탄 대신 수소(H)를 이용하면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H2O)이 나오므로 온실가스 배출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넘어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