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30% 폭등에 시달리는 음식점
단골마저 떨어질까 값 못올리고 '끙끙'
암보험 담보 대출받아 밀린 관리비 내
적금도 해약…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어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곡물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터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밀가루값, 가스비, 배달비, 인건비 등 각종 원재료값은 급등한 반면 심각한 내수 부진으로 매출은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한달 평균 음식점은 900개, 수퍼마켓은 400곳이 문을 닫는 등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5평 반(약 18㎡) 남짓한 분식집을 9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지영(64·여)씨는 "지금이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3일 오후 1시15분쯤. 작년 이맘때 같으면 손님들이 줄서서 대기하고 있을 점심시간인데 이씨 가게의 12개 테이블 중 8개가 텅 비어 있었다. 이날 점심에 판 칼국수(얼큰칼국수·4000원)는 25그릇, 라면(2500원) 15그릇, 김밥(2000원) 10줄 등이다. 작년 같으면 칼국수 50그릇, 라면 30그릇, 김밥 20줄 이상은 팔았었다.

이씨는 "무섭게 오르는 재료값이라도 벌려면 하루에 적어도 160그릇씩은 팔아야 하는데, 지난달엔 140그릇씩 밖에 못 팔았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두 자녀 대학공부에 결혼까지, 누구보다 당차게 생계를 꾸려온 이씨지만 "지금은 겁이 난다"고 했다.
◆판매가격은 그대로, 재료값은 40% 올라

"장사는 안되는데 왜 또 올려?"

지난달 말 배달업체 직원으로부터 수제비용 밀가루 반죽(10㎏) 영수증을 받은 이씨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작년 6월 2만원 하던 반죽값을 올 들어 2만5000원으로 올리더니 조만간 3만원으로 또 올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40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에 들어가는 밀가루 재료값은 작년 6월 약 600원에서 1000원으로 67% 올랐다. 단무지는 대략 50원에서 60원, 도시가스는 80원에서 120원으로 올랐다. 여기에 일당 5만원 하던 인건비도 5만5000원으로 올랐다. 그래서 40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 파는 데 들어가는 원가를 계산해보니 작년 6월 2900원 수준에서 3800원으로 30%가량 뛰었다. 이씨는 "그나마 칼국수가 마진이 제일 많이 남는 편"이라며 "오징어덮밥 등 밥 종류 등까지 모두 합하면 적자"라고 했다.

또 라면 1상자(30개)값이 1만3500원에서 1만7500원으로, 식용유(18ℓ)는 2만6000원에서 3만6000원, 쌀 1포대(20㎏)는 3만4000원에서 4만20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김밥 2000원, 라면 2500원, 칼국수 4000원으로 적힌 메뉴판은 작년 그대로다. 이씨는 "싸도 안 먹는데 가격까지 올리면 단골 손님마저 떨어져 나갈까봐 음식값은 아예 올릴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급등하는 재료값을 충당하려고 유통업체에서 배달받던 야채도 토요일 오후마다 직접 가락시장을 돌며 사오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켜놓는 간판 등도 아침 11시 반에 켜고 1시간 일찍 끄고 있다.

◆손님까지 줄어 6개월째 적자

아무리 아껴봐도 지난달 관리비와 가스비·식재료비 등이 총 1800여만원이었는데, 들어온 돈은 1600여만원에 그쳤다. 6개월째 적자다.

이씨는 "더도 덜도 말고 밀린 관리비만 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년간 붓던 적금 해약에 카드 대출 등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넉 달치나 밀린 관리비를 내라는 독촉 전화에 지난달엔 암보험을 담보로 750만원을 대출받았다. 아직 두 달치 체납된 관리비 570만원이 남아있다며 5~6월 영수증을 보여줬다. 매달 80만원씩 내는 아파트 월세도 두 달째 밀렸다. 중풍에 시력까지 잃은 친정아버지(86)까지 모시고 있어 매달 15만원씩 나가는 약값도 버거울 정도다.

작년에는 그래도 적어도 200만원 가량은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아파트 월세도 내고 부모님 약값도 냈다. 하지만 올해는 물가는 치솟고 장사까지 시원찮다.

"지하상가의 단골 상인들도 작년엔 점심, 저녁을 시켜먹더니 요즘엔 장사가 안되니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요. 예전에는 손님 두 명 오면 수제비 두 그릇에 김밥 한 줄 놓고 먹었는데, 지금은 두 사람이 한 그릇만 시켜서 같이 먹는 경우도 많아요."

이날 오후 4시쯤 식당 한쪽 테이블에선 중년 남성이 김치찌개를 시켜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이씨는 "여기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하는 사장인데 일부러 느즈막히 점심을 먹고, 저녁은 아예 굶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