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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심원권의 일기'에서 찾아본 개방의 지혜
64년간 쌀·땔감·소값 기록 서민들 삶 생생하게 드러나
관료들 부패·쇄국정책 지속 사회 불안 불러 亡國으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됐지만 민심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미국산 쇠고기 개방 문제와 물가 급등 때문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도 다가오고 있다. 한미FTA라는 거대한 개방의 물결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100년 전 우리는 개항과 폭등하는 물가 앞에 똑같은 혼란을 겪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무기력했고 40여 년을 비틀거린 뒤 나라를 잃었다. 열쇠는 역사 속에 있는 것일까. 먼지 나는 고서(古書)에서 해법의 지혜를 찾아본다.
◆쌀값에 미친 양반, 기록을 남기다=물가(物價) 기록에 미쳐 있던 울산의 농부 심원권(沈遠權·1850~1933) 일기(日記)가 첫 번째 단서다.
심광주 토지박물관 학예실장은 "심원권은 보름마다 시장에 나가 쌀값과 땔감값, 소값을 꼼꼼히 기록했다"며 "그는 물가에 편집증 환자처럼 매달렸다"고 말했다.
1892년 11월 30일, 그는 "모든 재화의 가격이 높아지고, 곡물가격이 높아지니 이를 일컬어 '흉세(凶歲)'라 할 수 있다"라고 한탄한다. 죽기 전 그의 고백도 "평생 쌀값을 관찰했지만 도대체 그 이치를 알 수가 없다"였다.
하지만 그의 집요한 노력은 후대 연구가들에게 축복이 됐다. 개항 이후 급속한 대외개방과 물가폭등이 우리 역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망국(亡國) 전까지 물가폭등이 서민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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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지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심원권 일기 원본./토지박물관 제공
물가안정의 기반은 1000만 석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환곡(還穀)이었다. 인구가 우리의 30배인 중국의 당시 비축미가 4000만 석이었다. 철저한 시장경제 체제인 중국과 달리 우리는 풍년에 증대한 소득의 90%를 국가가 거둬가고, 흉년에 손해의 25%를 보조해주는 사회 안전판을 만들었다. 세율도 풍흉(豊凶)에 따라 철저히 탄력적으로 적용했다.
그러나 그의 일기가 시작되는 1870년대, 한 되에 2~4전(錢)으로 시작한 쌀값은 1900년대에는 최고 16전까지 급등한다. 이 시기 닭·소·개의 값도 비슷한 비율로 뛴다. 도덕 문란으로 관리들의 환곡 빼돌리기가 만연해 물가 안전판이 사라진 것이다.
전성호 교수(세종국가경영연구소)는 "결국 관료의 도덕이 무너지고, 물가 잡기에 실패하면서 나라가 망했다"고 말했다.
◆적극적 개방이 필수=심원권 일기는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 준다. 바로 조선의 동쪽 끝 울산과 중국 양쯔강 유역, 일본 오사카 지역 쌀값이 함께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전 교수는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연구한 중국 자료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의 오사카 지역 쌀값을 비교해보니 변동 추이가 일치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조선의 시골과 중국의 쌀값이 연동될 정도로 국경을 넘나드는 장사꾼들의 무역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쇄국정책으로 개방의 시기를 놓치고, 물가를 잡지 못한 조선 정부는 세금만 가혹하게 거둔 뒤 외세에 대항할 힘조차 잃어버린 채 식민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전 교수는 "한미 FTA를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항상 개방이 우리에겐 이득이었다"고 말했다.
심원권은 누구
조선시대 후기에 태어난 심원권(沈遠權·1850~1933)은 21세 때부터 사망할 때(84세)까지 64년 동안 부모상을 당한 단 3일을 빼고 일기를 쓴 기록광이었다. 울산에 사는 농부였던 그는 보름 간격으로 시장에 나가 땅, 쌀, 보리 등의 가격을 조사했고, 날씨까지 기록했다. 심원권 일기는 조선 경제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일기는 경기도 분당의 토지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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