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양수

경제기사야 놀~자

적대적 M&A 방어 '포이즌 필' 도입키로

정부가 검토해온 여러 적대적 M&A(인수·합병) 방어 수단들 가운데 포이즌필(poison pill·독약처방) 제도의 도입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주(黃金株·주식 한 주만으로 주요 경영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제도)나 차등 의결권제(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등은 도입을 하지 않는 쪽으로 정부 내 의견이 모아졌다. (기사 중 일부 발췌)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첩보영화 좋아하시죠? 영화 속 스파이들은 종종 독약을 가지고 다닙니다. 만일 적에게 붙잡힐 경우 자신이 독약을 먹고 죽더라도 적을 이롭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죠. 이와 유사하게 적대적 인수합병(Merger & Acquisition·M&A)이나 기업경영권 방어 문제와 관련해서도 '포이즌 필(Poison pill·독약처방)'이라고 불리는 제도가 일부 외국에 도입되어 있습니다.

포이즌 필이란

적대적 M&A는 대상 기업의 동의 없이 주식을 대량 매수해 그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00만주로 구성된 A회사를 예로 들어 볼까요. 누군가가 적대적 M&A를 통해 A회사의 현재 경영진을 교체하고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A사의 주식 30%를 가지고 있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측은 300만주를 시장에서 매수하려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영권 공격을 대비해서 A회사의 경영진은 회사의 주식에 어떤 권리를 미리 부여해 놓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존 주식에 A회사가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매우 싼 값에 사들일 수 있는 권리를 미리 부여해 놓고 경영권 공격이 생기면 공격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들이 이를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이 경우 공격을 시도하는 입장에서는 처음에 300만주만 확보하면 됐을 텐데, 기존 주주들이 회사가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싼값에 계속 사들일 경우, 확보해야 하는 주식이 400만~500만주 식으로 늘어나게 될 겁니다. 기존 주주들이 손쉽게 주식 지분을 늘릴 수 있도록 해 주고 반대로 공격자가 충분한 주식 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것, 이게 포이즌 필입니다.

적대적 M&A의 역할

스파이가 먹는 독약의 해(害)는 스파이가 입게 됩니다. 포이즌 필에서는 어떨까요? A회사가 새로운 주식을 시세보다 매우 싼값에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회사가 독약의 해를 입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독약의 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적대적 M&A의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식회사 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경제에서 적대적 M&A는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기존의 경영진이 비효율적이고 무능하게 회사를 경영하고 있을 경우, 다수의 주식확보를 통해 경영진을 교체하여 회사의 경영을 개선하고 나아가 기업의 가치와 주주의 이익을 높일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적대적 M&A의 역할은 '주주 평등의 원칙'이라는 주식회사제도의 기본 원칙 때문에 가능하게 됩니다. 그런데 포이즌 필은 주주들 중 경영권 공격자를 제외한 기존의 주주들만 신주(新株)를 싼값으로 사들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주주 평등의 원칙에 예외를 만들어 현재 경영진이 손쉽게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지요.

원칙과 예외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찬성하는 쪽은 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에 너무 돈을 많이 쓰느라 생산적 투자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지요.

생각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어떤 원칙에 예외가 되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① 제도 도입을 통해 치유해야 하는 상황이 있어야 하고 ② 그 제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그 상황을 치유할 수 없어야 하며 ③ 제도 도입으로 그 상황을 치유하여 얻는 편익이 그 제도가 발생시키는 직·간접 비용보다 커야 합니다.

포이즌 필과 같은 문제에서도 위 세 가지 조건을 확인해 봐야겠죠. 우선 생산적 투자 부진의 직접 원인이 경영권 방어이고 주주 평등의 원칙에 예외를 고려할 만큼 심각한 상황인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이 두 가지가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세 번째 조건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결부시켜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경영진이 일반 주주들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포이즌 필을 남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이에 따라 비효율적 기업 경영이 만연하게 된다면 독약의 해는 주주들뿐 아니라 경제 전체가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배우는 경제 tip] 경영권 방어장치

적대적 M&A에 대비한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 장치로는 '포이즌 필' 외에도 '차등의결권 제도(Dual class stock)'와 '황금주(黃金株·Golden share)' 등이 있습니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일부 주식에 대해 다른 주식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금주는 말 그대로 주식 1주만 가지고도,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주식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상법은 1주 1의결권을 규정해, 위 방법들로 경영권을 지키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