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익산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성폭력은 AI처럼 전염성이 있어 초기에 단호히 대응했어야"
시민단체에선 학교의 대응이 늦어 사건이 커졌다고 주장

지난 4월 말 전북 익산에서 고교생 16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2005년부터 올 1월까지 3년 동안 여학생 한 명을 집단 성폭행(性暴行)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북 익산은 2004년에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한 지역이다. 이번 성폭행 용의자 16명 가운데 2명은 2004년 사건이 발생한 중학교 출신이다.

며칠 뒤인 28일 이번에는 대구에서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추행 사건이 드러났다. 경찰은 초등학교 여학생 8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초등학생 12명과 중학생 3명을 붙잡았다. 중학생 3명은 초등학생들의 학교 선배였다.

대구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 "그 초등학교 내에 성폭력을 경험한 학생만 100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익산과 대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주일 동안 Why?가 총력 취재했다.

◆2004년 익산에서 벌어진 일

지난 7일 익산역에서 만난 40대 택시 기사의 얼굴이 성폭행 사건을 묻자 침울해졌다. "아예 익산에서 남녀공학 학교를 싹 없애버리든지 해야지,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익산 경찰서 근처의 식당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은 "아이가 6살인데 우리 동네 초등학교 보내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4년 전에 이어 또다시 일어난 중학생 집단 성폭력에 사람들은 말을 잊은 듯했다.

4년 전 사건의 피해자는 기자를 피했다. 그는 사건 이후 4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시내에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도 기자를 만나기를 꺼렸다. 상담소를 걸쳐 사흘 동안 답신을 기다려 두 모녀의 소식을 들었다.

이 여학생이 성폭행당한 장소는 자기 집이었다. 가해자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녀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왔다. 처음 강간한 6명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봉변을 당한 후에도 이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못했다. 가해 중학생들은 피해자에게 '말을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피해자의 뇌리에는 '소문이 나면 동네에서 매장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해 중학생들은 집요했다. 2004년 5월 처음 시작된 범죄가 8월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항상 무리를 지어 김양의 집으로 몰려왔다. 소문나는 것이 두려웠던 피해자는 그때마다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는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들은 5~6명씩 패를 지어 상습적으로 피해자를 성폭행했다. 가해자 중 한 명만이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러나 그 학생도 곧 범행에 가담했다. 경찰은 여럿이 함께 하면 죄책감이 그만큼 옅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는 도망쳤다. 더 이상 학교에서 버틸 수 없었던 그는 9월 친구와 함께 가출했다. 향한 곳은 친구의 대학생 남자친구의 방이었다. 그곳에서 피해자는 다시 대학생에게 성폭행당했다. 친구가 방을 비운 틈에 일어난 일이다. 피해자는 도망친 곳에서 다시 도망쳐야 했다.

도피처는 없었다. 피해자는 결국 20일 후 집으로 돌아왔다. 피해자는 용기를 내 학교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학생부장 손모(45) 교사에게 가출한 곳에서 당한 사실을 말했다. 상담교사 김모(44)씨에게는 학생 8명으로부터 성폭행당한 이야기를 했다. 피해자는 이 사실을 진술서로 적었다.

학교는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았다.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확인한 교장 정모(65)씨는 이 사건을 숨기기로 했다. 가해자를 고발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학생부장 손 교사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가출해서 남자 대학생과 성관계를 가지는 등 탈선을 했으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전학 갈 때 어머니는 자기 딸이 전에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진실은 이듬해 4월에야 밝혀졌다. 2005년 경찰은 '학교 폭력 일제 단속'에 나섰다. 학교 폭력을 수사하던 경찰은 '성폭행을 당한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를 성폭행한 가해자들이 속한 폭력 조직 '끝없는 질주'의 일당을 붙잡았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이때 처음 경찰로부터 자기 딸이 4번에 걸쳐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들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학부모에게 숨기고,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을 만들어 전학시킬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학교는 끝까지 사실을 숨기려 했다. 교육청 감사가 나오자 학교는 '문제 학생들이 피해자의 집에 놀러 간 사실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반년 넘게 학교 서류철에 보관돼 있었던 피해자의 성폭행 사실 진술서를 찢어버렸다.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자가 문제가 있는 학생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오히려 책임을 떠넘겼다. 어머니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소송에 나섰다. 학교 안에서는 '피해자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학교 밖에서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한몫 잡으려고 일을 키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인맥이 얽히고설킨 소(小)도시에서 피해자 모녀를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겨우 시민단체들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나섰지만 힘이 달렸다. 2005년 피해자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어머니는 3차례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올 3월 말 피해자에게 다시 우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성폭행 가해자들과 피해 사실을 숨기려 한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민사 소송의 최종 결과였다. 대법원은 가해자 8명에게 모두 합쳐 3500만원을, 학교와 교사 4명은 모두 합쳐 350만원을 피해자와 그 어머니에게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대로라면 4차례에 걸쳐 어린 소녀를 짓밟은 가해자들이 물어내야 할 죗값은 1인당 500만원도 안 된다.

피해 사실을 어머니에게조차 숨기고, '아이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니 전학을 가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피해 진술서마저 찢어버린 학교와 교사들의 책임은 1인당 70만원꼴이다. 가해자 대부분이 가난해 가해자 몫인 3500만원은 아직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가해자들은 물론, 교육청, 교장, 교사 그 누구로부터도 단 한마디 사과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모녀가 정신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이, 가해자 중 일부는 전학을 갔다가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와서 졸업장을 받았다. 가해자 중 소수만이 상담을 받으며 자기가 저지른 일을 진심으로 후회했다고 한다.

나머지는 상담사에게 '재수 없어 걸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교장은 정년을 채우고 퇴임했다. 손 교사와 김 교사는 다른 학교로 옮겨 아직도 교직에 머물러 있다. 어머니는 "소송을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꼭 네게 몹쓸 짓을 한 가해자들과 너를 나쁜 애로 몰아붙인 선생님들이 사과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빈말이 됐다"고 했다.

피해자는 2년 전 겨우 용기를 내 시내에 나갔다. 거리에서 같은 중학교 출신의 여학생들을 만나 '너 때문에 우리가 쪽팔리게 됐다'며 욕을 들었다. 뺨을 맞았고 돈도 빼앗겼다. 그 후로 피해자는 집과 학교만을 시계추처럼 오가고 있다.

◆2005년 익산에서 벌어진 일

그 사건으로 학교가 떠들썩하던 2005년, 같은 학교 1학년에 다니던 여중생(16)이 동급생 3명에게 집단 성폭행당했다. 피해자는 그 후 3년간 13차례에 걸쳐 16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피해자도 '선배 피해자'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당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부모님이 헤어져 버릴 것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학교의 각종 교육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성폭력 예방 교육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2005년 김양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로 이 중학교는 성폭력 예방에 온 힘을 쏟았다. 성교육을 정규 수업 시간으로 배정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외부 강연도 했다.

학년별로 성장 단계에 맞게 정교한 계획에 따라 성 교육을 진행했다. 성 상담 교사가 학교에 상주했다. 학생들에 대한 여러 종류의 심리 치료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에게는 피임기구의 정확한 사용법도 가르쳤다. 지금도 이 학교의 2학년은 한 학기에 17시간 이상 성교육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성폭행은 일어났다. 2008년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등교를 거부할 때까지, 학교 교사 중 누구도 자기 학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교장 이모(64)씨는 "참담한 심정"이라며 "부임 전에 사건이 있어서 성교육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도 사건이 일어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피해자의 담임교사는 사건이 알려진 후 동료 교사들에게 "늘 밝았고, 결석 한 번 하지 않았고, 성적도 늘 일정했던 아이가 그런 일을 겪고 있을 줄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학교 측의 집중적인 성교육이 있었음에도 왜 집단 성폭력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았을까. 1차 성폭행 사건 때 대책위원장을 맡은 YMCA 김윤근 간사는 "첫 사건 때 학교에서 가해자들을 옹호하고, 피해자를 숨긴 것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 학교에서 가해자들을 엄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했다면, 학생들이 성범죄가 얼마나 나쁜 일인지 배워 범죄를 못 저질렀을 것"이라며 "눈앞에서 선배 성폭행 피해자가 매도당하는 것을 본 후배 성폭행 피해자가 성폭행당한 사실을 말하기도 어려웠을 듯하다"고 말했다.

2차 성폭행 사건을 수사 중인 전북 경찰청 여경기동수사대 김정배 팀장은 "두 사건에 관련된 가해자 대부분이 어른들의 보호 없이 혼자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요일인 지난 11일 오후 2시, 대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어른들의 동네 야구가 한창이었다. 기자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몸을 피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 4학년 남학생은 "선생님이 경찰이나 기자가 오면 아무 얘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며 등을 돌렸다. 자기들끼리 즐겁게 놀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지난달 21일 이 학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중학교에서 이 학교 여학생 8명이 12명의 초·중학생으로부터 집단 성폭행당했다. 12명의 가해자는 기자가 찾았던 초등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었다.

지난달 30일 대구 지역 시민단체들이 공동대책위를 만들어 그 초등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빈번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들은 3~4년 전부터 학교 안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성폭력이 만연해 왔으며, 지난달 21일에 일어난 사건은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학교 주변 지역은 발칵 뒤집혔다. 초등학교 인근 주민 이모(42)씨는 "밀양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밀양이 받던 비난을 우리 초등학교 혼자 받고 있는 꼴이다. 어디 가서 동네 이름 말하기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초등학교와 인근 중학교의 사건을 별개 사건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중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은 서부 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주모자 격인 중학생 3명은 지난 2일 긴급 체포됐다. 나머지 가해 초등학생들은 가정에서 보호 중이다. 경찰은 가해 학생 전원이 아동 성폭력 전문센터에서 상담 및 심리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피해자 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자로 지목한 8명 중 6명은 "피해 사실이 없다"며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남학생 간 성폭력 사건은 성서 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현재까지 경찰이 밝혀낸 성폭력 피해·가해 학생은 모두 16명이다. 이는 시민단체에서 처음에 주장한 최소 인원 40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성서 경찰서 우병옥 형사과장은 "시민단체에서는 피해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두 사건이 연결됐다는 말도 하지만 증거가 없다"며 "정작 피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을 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아이들의 입을 열지 못하는 사이, 지난 13일에는 또 다른 피해 사례가 경찰에 접수됐다.

대구 초등학교도 익산의 중학교처럼 초기 대응이 느렸다. 초등학교 교사(여)는 지난해 11월 20일쯤 교실에서 아이들이 성적인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을 발견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을 상담하고, 교실 안에서 동성 간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교사는 11월 말 김모 교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교장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교장이 실시한 성폭력 관련 교육은 일반적인 방송 성교육이 전부다. 교사들로부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은 교장은 2월 말 시내의 다른 학교로 전근했다.

대구 지역 시민단체는 학교의 대응이 늦어 사건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대구 여성의 전화, 대구 여성회, 전교조 대구지부 등이 주축이 돼 만든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는 "사건이 일어난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담해보니, 몸 일부를 '고추 빠는 일을 해요'라고 지칭하고 성교육 중에 성기를 노출하려 하는 등 성폭력에 노출된 모습을 보인 학생들이 다수였다"고 밝혔다.

전교조 대구지부 임성무 교사는 "성폭력 범죄는 AI처럼 전염성이 있다"며 "학교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사건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을 방학 때 방치하면서 전교로 퍼졌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방학 이전에 처리됐다면 인근 중학교의 성폭행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사건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그네에서 놀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은 "학교에서 성교육은 받았지만, 성폭력 예방 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며 "성폭력이 뭔지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