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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에 난 돌기 접착력 강해…
연잎과 달리 왁스 성질은 없어
칭화大 연구팀, 인공물질로 재현

장미 꽃잎에 맺힌 아침이슬.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는 미스터리 그 자체다. 꽃잎이 거꾸로 돼도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연구진이 장미 꽃잎의 비밀을 밝혀내, 인공물질로 똑같은 현상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꽃잎에 난 돌기가 물방울 붙잡아

꽃이나 잎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은 자연에서 흔한 일이다. 하지만 장미와 달리 대부분의 꽃이나 잎에서는 작은 떨림에도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꽃이나 잎 표면에 묻은 먼지나 벌레가 물방울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이른바 자연의 '자기 정화(self cleaning)' 기능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자기정화 기능을 갖춘 방수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연꽃이다. 더러운 진흙에서 살지만 잎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 1997년 독일 본 대학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트로(Barthlott) 교수는 연잎에 나 있는 미세한 돌기 때문에 물방울이 스며들지 못하고 그냥 굴러 떨어지며, 이 과정에서 표면의 먼지까지 말끔하게 씻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이를 '연잎 효과(Lotus effect)'라고 부른다.
연잎에 나있는 돌기는 물을 밀어내는 왁스(wax)로 덮여 있다. 물 분자는 돌기 때문에 잎 표면의 아주 작은 부분에만 접촉하며, 그나마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갖고 있는 곳이라 물이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고 물방울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중국 칭화대 린 펑(Feng) 교수는 장미 꽃잎에도 연잎과 마찬가지로 돌기가 나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돌기는 연잎과 달리 경사가 완만하고 물을 밀어내는 왁스로 덮여있지 않았다. 덕분에 꽃잎과 맞닿은 부분의 물방울은 곧 돌기 사이로 스며 들어간다. 결국 물방울이 쐐기에 박힌 상태로 꽃잎에 매달리게 된다.

장미 꽃잎이 물방울을 붙잡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화학회가 발행하는 '랭뮤어(Langmuir)'지 최신호에 발표됐다.
◆이슬 맺히는 플라스틱, 바이오칩으로 활용

연구진은 장미 꽃잎의 물방울 접착력을 플라스틱으로 재현했다. 액체상태의 플라스틱을 장미 꽃잎에 붓고 굳게 한 다음 벗겨냈다. 이렇게 하면 플라스틱 표면에도 장미 꽃잎처럼 돌기가 생겨난다. 이 필름에 물을 떨어뜨리자 장미에서처럼 물방울이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았다. 장미 꽃잎과 플라스틱은 구성성분이 전혀 다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로널드 피어링(Fearing) 교수는 '네이처(Nature)'지와의 인터뷰에서 "재질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장미 꽃잎 표면과 같은 구조로 물방울을 붙잡게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밝혔다. 즉 물방울을 붙잡는 접착력은 재질의 화학적 성질보다 표면의 물리적 형태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이 화학 접착제 없이도 미세한 돌기를 이용해 천장에 달라붙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구진은 플라스틱을 거꾸로 했을 때 3~5㎕(마이크로리터, 1㎕는 100만분의 1ℓ)의 물방울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장미에 달라붙은 물방울은 햇빛을 반사시켜 꽃잎을 반짝이게 한다. 덕분에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들을 유인할 수 있다. 인공 장미 꽃잎 역시 혈액을 분석하는 바이오 칩으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바이오 칩은 미량의 혈액을 분석하기 때문에 혈액이 주변으로 새거나 다른 물질과 접촉돼 오염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장미 꽃잎처럼 아주 작은 혈액 방울을 붙잡고 있을 수 있다면 이런 문제가 없게 된다.

◆연잎 자기정화 효과도 응용연구 활발

장미 꽃잎과 정반대 기능을 가진 연잎 돌기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미국 쉘러(Schoeller)사는 연잎 효과를 모방한 '나노스피어(NanoSphere)'란 직물을 개발했다. 음료수가 흘러도 스며들지 않고 그냥 방울방울 미끄러진다. 때가 묻어도 물만 뿌리면 연잎처럼 씻겨 내려간다.

미 조지아 공대에서는 2006년 같은 원리로 자기정화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실리콘으로 전지 표면에 미세한 돌기 구조를 만들었다. 비가 내리면 물방울이 태양전지 표면에 붙은 먼지와 함께 굴러 떨어진다.

기름방울도 같은 원리를 이용해 굴러 떨어지게 할 수 있다. MIT의 로버트 코헨(Cohen) 교수는 지난해 12월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특수 플라스틱으로 연잎과 같은 미세 돌기를 만들어 기름방울이 물체에 스며들지 않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항공기나 우주선에서는 부품이 기름에 노출돼 손상되는 일이 많다. 이런 부품의 표면에 미세돌기를 만들어주면 기름이 스며들지 않고 방울로 떨어져 피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