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은 세계 경제 중심지이자, 문화의 중심지다. 뮤지컬·오페라·전시회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만큼 문화비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비싸지 않을까.
◆뮤지컬 ‘시카고’, 뉴욕보다 3만원 비싸
김기훈 뉴욕특파원은 지난 주말 뉴욕을 방문한 친구와 함께 브로드웨이의 앰배서더극장에 뮤지컬 ‘시카고’를 보러 갔다. 5개 좌석 등급 중 제일 좋은 자리인 1층 ‘오케스트라석’ 티켓을 111.5달러(10만2201원)에 팔고 있었다. 지난달 말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한국판 ‘시카고’는 얼마일까. 6개 좌석 등급 중 가장 좋은 티켓(VIP석) 값이 13만원이었다. 옥주현·최정원 등 유명 출연진이 나온다고 하지만, 브로드웨이 배우도 아닌데 뉴욕보다 3만원 가량 비싼 것이다.
위에서 세 번째 등급 좌석도 세종문화회관은 9만원(S석)으로, 뉴욕 앰배서더극장(리어메자닌석 앞줄·89달러)보다 8000원 가량 비쌌다.
지난달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세계 3대 오페라 극단으로 꼽히는 빈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단)가 내한 공연을 했다. 가장 좋은 VIP석이 45만원.
역시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을 찾아 세계 정상의 프리마돈나인 소프라노 홍혜경이 출연하는 ‘투란도트’ 공연과 비교해봤다. 최고 좌석 값(오케스트라석)은 360달러(32만9976원). 서울 예술의전당보다 12만원 저렴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좌석 등급 역시 서울은 35만원(R석), 25만원(S석)으로, 뉴욕보다 약 10만원씩 비쌌다.
맨해튼 씨티그룹빌딩 1층에 있는 반즈&노블 서점에 들렀다. 영국 작가 존 톨킨(Tolkien)의 베스트셀러 소설 ‘반지의 제왕’ 마지막 완결편인 ‘왕의 귀환’(페이퍼백)이 7.99달러(7324원)에 팔리고 있었다. 반면 같은 책이 서울 교보문고에선 1만3690원(영문판 페이퍼백)으로,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격표가 붙어있다.
콘서트는 어떨까. 지난 8월 중순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세계적으로 유명한 힙합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Timberlake)’ 콘서트의 최고 좌석 가격은 155.5달러(14만2531원).
김기훈 특파원은 뉴욕에 체류한 지난 2년간 아이들을 데리고 맨해튼의 박물관과 전시관들을 자주 찾았다. 세계 3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사실상 공짜나 마찬가지다. 대신 ‘기부금을 20달러 내달라’는 권고문이 붙어있지만, 25센트(약 230원)짜리 동전 하나만 내도 상관없다.
맨해튼 남쪽 소호 지역의 유서 깊은 일부 전시관들도 자선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반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입장료 2000원을 받고 있다.
◆영화는 서울이 3000원 싸
미술 전시회는 뉴욕이 비쌌다.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지난달 열린 ‘빛의 화가 모네전(展)’은 1만원(어른 기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피카소 전’은 그보다 8000원 가량 비쌌다(20달러·1만8332원). 그러나 MoMA에서는 피카소전 외에도 다양한 세계 수준의 전시회를 함께 볼 수 있었다. 또 매주 금요일 오후 4~8시엔 기업(유통업체 ‘타겟’)의 후원으로 공짜다.
뉴욕 최고의 재즈클럽 ‘블루노트’는 입장료 30~45달러(2만7498~4만1247원)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6~7달러짜리 맥주 한잔씩 하거나 샌드위치 등 음식을 즐긴다.
한국 최고 재즈바로 꼽히는 서울 청담동 ‘원스인어블루문’은 입장료 없이 1만4000~1만5000원짜리 맥주나 칵테일 한잔만 시키면 된다. 서울의 승리. 다만 뉴욕 ‘블루노트’에선 세계적인 재즈 거장인 ‘찰리 헤이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연주자며 가수의 역동적인 음악을 코앞에서 들을 수 있다.
영화 관람료 역시 서울의 승리. 서울 CGV의 평일 관람료는 7000원이지만, 뉴욕의 영화체인 AMC는 11달러(1만83원)를 받는다.
● 뉴욕이 더 싼 이유… 문화·예술 시장 크고 공연단체에 기부 활발
한국은 고가 마케팅에 출혈 경쟁으로 가격 거품
뉴욕 맨해튼의 문화·예술 물가가 서울보다 전반적으로 싼 이유는 뭘까.
시장 규모가 크니까? 물론 그렇다. 관객 저변층이 넓어 낮은 가격을 설정해도 수지를 맞출 수 있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문화·예술인 덕에 풍부한 인적자원을 활용한 문화 상품 제작이 쉽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기업·개인의 기부 문화나 사업모델 개발력 같은 ‘문화 인프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필하모닉,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은 뉴욕시·뉴욕주 정부뿐 아니라 기업·개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대거 끌어들인다. 1년에 한 번씩 기금모금 만찬행사도 열고 부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받아내기도 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경우 2005년 수입(2억1000만달러) 중 38.2%(8000만달러)를 기업·개인 후원금으로 유치했다. 반면 서울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자체 기획한 공연사업 수입(49억원) 중 기업 후원·협찬금액이 17.3%(8억5000만원)에 그친다.
예컨대 예술의전당의 빈 슈타츠오퍼 내한 공연의 경우, 총 제작비 11억원(항공료·대관료 등 포함)을 기업 후원금 한푼 없이 모두 티켓 수입으로 감당하다 보니 가격이 비싸졌다고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는 설명한다.
뉴욕의 문화사업단체들은 자체 사업모델을 적극적으로 개발, 수입원을 확충함으로써 입장료 부담을 줄여주기도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지난해 총수입(1억3000만달러) 중 입장료 수입은 2059만달러(16%)인 반면, ▲음식·기념품 판매(4717만달러) ▲미술관 회원비 수입(1374만달러) ▲각종 투자수익(1745만달러) 등이 60%를 차지한다.
반면 한국에선 ‘비싸야 잘 팔린다’는 기형적인 고가(高價) 마케팅과 업계의 출혈 경쟁 등으로 가격거품을 만들고 있다.
올 6월 미국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내한 공연 티켓 최고가가 일본 도쿄 부도칸 공연(약 7만4000원)의 두 배인 17만6000원까지 급등한 것도 국내 기획사 간 출혈경쟁 때문이었다. 당초 공연 한 회당 50만달러이던 아길레라의 개런티가 국내 기획사 간 경쟁이 붙으며 1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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