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최인혁(35)씨는 최근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려다 ‘카드 유효기간이 지나’ 결제가 안 되는 낭패를 봤다. 결국 망신만 당하고 더치 페이를 하고 말했다.

신용카드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카드 앞면 카드 번호 아래에 ‘GOOD THRU (또는 VALID THRU) 05/12’하고 나와 있는 숫자다. ‘05/12’는 2012년 5월까지만 쓸 수 있다는 뜻. 그런데 이 유효기간도 카드마다 차이가 있다. 최근 발급되는 카드의 유효기간은 대개 5년. 하지만 가끔 3~4년짜리도 보인다. 신용카드에는 왜 유효기간이 있고, 기간도 다양한 것일까?

A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가입자의 소득이나 경제적 조건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통상 3~5년마다 카드를 갱신하면서 신용을 재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신용평가가 가능해진 요즘은 굳이 이럴 필요는 없지만, 금융기관끼리 개인 신용정보 공유가 힘들고, 그래서 신용카드 발급도 무척 까다로웠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요한 이유였다.

기술적인 이유도 있다. 카드를 오래 쓰다 보면 카드 뒷면의 마그네틱 띠가 마모되어 제대로 읽히지 않게 된다. 이 마그네틱선의 내구 한계가 기껏해야 5년이기 때문에, 카드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했다는 것. B카드사 카드 발행업무 담당자는 “카드 위에 결제용지를 놓고 기계로 밀어서 찍어내던 과거엔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온 문자 부분이 쉽게 닳아 (카드의 유효기간이) 기껏해야 3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사가 카드 교체 발급 비용(장당 3000~1만원)을 줄이려고 유효기간을 늘였다는 얘기도 있다.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유효기간은 기존 고객들이 새 카드 상품으로 갈아타게 하는 수단이 된다. 카드사가 한 가지 카드 상품을 5~6년씩 길게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존 고객들을 새 카드로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영에 품이 많이 드는 고급 카드일수록 유효기간이 짧은 경향이 있다. C카드사 임원은 “일반 카드는 대체로 유효기간 5년이지만 골드는 4년, 플래티늄 카드는 3년짜리도 많다”고 말했다.

보안성을 강화한다는 이유도 있다. 카드번호 외에도 유효기간을 추가로 확인해 도용 가능성을 줄인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카드 복제가 불가능한 IC(집적회로)카드 등이 도입되면서 유효기간 7년, 10년짜리 카드도 일부 발급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