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업무 없애야 실행력 커진다"
대면보고시 '돌발질문' 금지 등..독특한 지침

"배터리는 수시로 충전을 해야 한다. 항상 완충(完充)상태로 유지해야 필요할 때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직원들도 빨리빨리 퇴근해서 충전해라"


LG화학(051910) 김반석 사장의 경영철학을 잘 표현한 '배터리론(battery論)'이다.


핵심은 '효율'이다. 불필요한 보고를 줄이고 형식에 쏟는 에너지를 아껴서 실행력을 높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장 자신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보고를 받지 않는다. 사장에게 보고를 한 건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동원'되는 지 체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년간 몸에 배어온 형식 중시의 문화는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 법. 김반석 사장은 최근 보고와 회의, 퇴근문화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바꾸기로 하고 각 사업부별로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실행력 강한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게 먼저라고 보고 업무단순화를 위한 여러가지 지침을 만들었다"며 "각 사업부별로 실정에 맞게 바꿨지만 형식을 깨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LG화학의 고무·특수수지사업부 벽에 붙어있는 지침 가운데는 '퇴근 1시간 전에 당일 피드백을 요하는 업무협조를 구하지 말 것'이라는 항목이 있다. 퇴근 직전에 일을 지시하면 야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업사원들은 주 1회 이상 현장에서 퇴근하는 것도 들어있다. 어짜피 회사에 들어와서 얼굴만 비추고 퇴근할 거라면 굳이 형식을 갖추기 위해 들어올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LG화학 여수공장은 공장에 '회의는 격렬히, 보고는 간략히, 퇴근은 칼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서 컴퓨터 화면의 스크린 세이버로 배포했다(아래 사진).


회의때는 불필요한 배석자를 되도록 줄이고 보고서는 3장 이내로 만들되 유첨자료는 넣지 말도록 했다. 또 회의시간도 퇴근 직전에 잡는 것을 피하도록 했다.


본사의 경영지원부문의 실행파일에는 '회의시 공개적 질책 하지 말기' '회의 불참자·지각자 기다리지 말기' 등이 들어 있다. 회의시간이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의주제 이외의 안건 논의 금지'와 '워밍업은 5분 이내에 끝내기'도 넣었다.


회사 관계자는 "너무 세부적이고 시시콜콜한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하나하나가 형식문화를 깨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이라고 했다. 회의 때 음료수를 막내사원 1명이 준비하던 관행도 문제라고 하고 '개인 음료는 개별 준비'도 넣었다.


▲ LG화학 ABS/EP 사업부에서 추진중인 보고문화 개선 캠페인. ▲가급적 대면보고를 피하고 ▲보고서 포맷을 따지지 않고 ▲ 보고와 관계없는 질문 하지 않기 ▲데이터 가공하지 말고 엑셀 등 raw 데이터로 보고하기 등이 적혀있다.


ABS/EP본부는 각종 보고를 전화나 쪽지로 대체하고 대면보고는 가능하면 피한다는 지침을 정했다. 꼭 의문사항이 있을때만 대면보고를 하고 그 때도 보고내용과 관계없는 질문은 하지 말기로 했다.


상급자의 '돌발질문'에 대비하기 위해 보고내용과 관계 없는 각종 자료를 챙기느라 정작 보고현안 준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부서에 자료를 요구할 때도 자료를 가공하고 다듬어서 줄 것을 요구하지 말고 엑셀 등에 담긴 수치만 받아서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가공하도록 한 것도 불필요한 업무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보고서에 컬러나 그림, 슬라이드는 가급적 넣지 말도록 한 것도 자료 준비에 시간을 쏟지 말라는 의미다.


갑작스럽게 회의를 소집하는 것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회의는 꼭 필요한 회의만 하되 7일전에 일정을 공지하고 이틀전에 회의자료를 배포해야 한다. 갑작스런 회의가 잡혀 회의자료를 만드는 일이 생긴 것이 야근을 하는 이유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경험칙이 반영된 조치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런 지침들이 늘 예외없이 지켜지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며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빨리 퇴근하는 게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LG화학에서 사용중인 컴퓨터 화면보호기 ""퇴근은 칼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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