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붐' 이라크 아르빌을 가다 <下>폭발하는 부동산 시장
5년전 500달러짜리 아파트 최근 1만5천달러까지 치솟아
쿠르드족 독립 움직임 등 중동 정치불안은 위험요소

“돈을 벌고 싶다면 부동산 투자를 하세요.”

이라크 아르빌 취재 중 통역을 맡은 고란(Goran·26)씨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방 3개짜리 아파트가 2002년엔 500달러였는데, 요즘엔 1만5000달러예요”라고 했다. 쿠르드 자치지역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아르빌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산골 마을까지 집을 새로 짓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사담 후세인의 쿠르드족 탄압으로 30여 년간 억제됐던 개발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물가도 폭등하고 있다. 2002년 10센트 정도했던 토마토 1㎏이 요즘에는 80센트에 달한다. 지난 91년까지만 해도 쿠르드 지역의 백만장자 수는 단 5명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뜨거운 부동산 시장=아르빌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아메리칸 빌리지’. 미국계 건설사 ‘시그마’가 ‘아메리칸 스타일’임을 선전하면서 집 장사를 곳이다. 짐(Jim) 현장소장은 “398채의 주택을 지어 분양 중”이라며 “이라크 남부 나시리아 사람들도 안전한 곳을 찾아 여기까지 와서 집을 계약한다”고 말했다.

허허벌판에 지어지는 집의 가격은 놀라울 정도다. 600㎡(약 181평) 넓이의 2층 집이 우리 돈으로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집을 사는 사람은 주로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라고 했다. 벌써 75채가 팔려나갔다. 아르빌 곳곳에 ‘영국 빌리지’며, ‘이탈리아 빌리지’가 세워지고 있다. 터키 업체가 160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공사를 따냈고, 아랍에미리트(UAE) 투자자들도 드림시티라는 대규모 주택개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 아르빌의 일반 주택 월 임대료는 100만~200만원에 이르고, 차량 한 달 렌트비도 50만~7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다 경호비용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돈이 들 정도다.

◆바그다드의 혼란은 아르빌의 이익=아르빌의 부동산 시장이 폭발하는 것은 이라크 안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쿠르드 자치정부 지역에서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인정된다.

약삭빠른 두바이는 3800억원을 들여 아르빌 인근에 ‘미디어 시티’를 짓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몰려 있는 세계 언론들을 아르빌로 불러들여 임대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호텔·카지노까지 엮어 종합레저타운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르빌 신공항 건설현장. 공사 책임자 사르왓 카림(Karim)씨는 “당초 연간 이용자 150만명 규모로 설계했던 것을 250만명으로 변경했다”며 “이라크의 허브(거점) 공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오스트리아 항공이 아르빌에 취항한 데 이어 요르단·두바이로 향하는 국제선도 늘어나고 있다.

바그다드가 혼란에 빠지면서 이라크 지역의 국제 전시회도 이젠 아르빌에서 열린다. 2005년 처음 열린 전시회엔 35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가 2006년엔 800개 회사로 늘어났을 정도다. 올해도 오는 10월 말에 개최될 예정이다.

◆위험은 크다=물론 기회가 큰 만큼 위험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부족이다. 쿠르드 정부가 땅 밑에 깔고 앉아 있는 유전(油田)이나 광물자원은 엄청나다. 그러나 이를 개발해 현금화하기까지는 최소 3~5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정부에 돈이 없으니, 민간기업이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얼마인지, 경제성장률이 얼마인지 등 기초적인 통계조차 없다.

쿠르드족을 둘러싼 중동의 정치구도도 발목을 잡고 있다. 쿠르드 족은 이라크뿐 아니라, 인근 이란과 터키에 흩어져 약 3000만명이 살고 있다. 터키 내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이 거세지자, 터키 정부는 지난 6월 쿠르드 자치정부 때문이라며 접경지역에 병력을 전진 배치하기까지 했다.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실의 비서관 신디(Cindy)씨는 “쿠르드의 미래를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