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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정글의 원리는 같다

  • 박용태·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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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06 13:23

박용태 교수의 테크노 경영 <1>

생물학이론에 ‘레드퀸효과(Red Queen Effect)’라는 것이 있다. 레드퀸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1832~1898)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여왕. 이 소설에서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잡고 숲속으로 뛰는데, 앨리스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낀다. 이유를 묻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온힘으로 달려야 하고, 더 앞으로 나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물학자들은 소설 속 여왕의 얘기를 생태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간의 경쟁적 진화과정에 적용했다. 포식자는 속도 경쟁에서 앞서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린 피식자를 잡아먹고 산다. 따라서 피식자는 생존을 위해 물려받은 선천적 형질에 후천적으로 끊임없는 학습과 노력을 배가시켜 더 빨리 달리게 된다. 하지만 절대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포식자도 피눈물나는 노력을 통해 그만큼 더 빨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두 생물체는 모두 과거보다 더 빨라졌지만 속도차는 좁혀지지 않고, 피식자의 위험도 줄어들지 않는다.

# 비슷할수록 가까울수록 오히려 싸움은 더 치열해져

레드퀸효과는 실물경제에도 적용된다. 한번 기술경쟁에서 뒤처진 기업은 다시 경쟁업체를 따라잡기 어렵다. 새로 기술경쟁에 뛰어든 신생기업이 선두 대열에 합류하기도 힘들다.

생태계이론이 실물경제로 확장된 사례는 많다. 경쟁전략 이론인 가우스 이론(Gauss’s theorem)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과학자인 가우스는 두 종류의 실험을 진행하였다. 먼저 같은 과(科)에 속하지만 종(種)은 다른 두 생물체를 같은 공간에 집어넣고 넉넉하지 않은 먹이를 주면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를 관찰하였다. 그랬더니 두 생물체는 가끔 티격태격 싸우기는 하지만 적당히 먹이를 나누어 먹으면서 그럭저럭 생존했다. 반면 과는 물론 종까지 같은 두 생물체를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한 결과, 두 생물체가 치열하게 싸우다 둘 다 죽고 말았다. 가우스는 이를 ‘차별화에 의한 생존 원리’로 설명했다. 비슷할수록, 가까울수록 오히려 싸움은 더 뜨거워지고 살아남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경쟁의 역설을 시사하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한 진화론적 게임이론은 생물학의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현상을 이론적 토대로 하고 있다. 공진화는 모든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즉 어느 구성원의 선택은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전략에 대한 최선의 대응에 의한 것이며, 생물학적 진화든 기술적 진화든 관계없이 진화는 공진화의 결과물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술 확산은 단일 기술이나 제품이 독자적으로 확산되기보다는 복수의 기술이나 제품이 서로 경쟁하면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공진화현상을 잘 반영하면서 동시에 수리적으로 쉽게 답을 제시하는 모형이 로트카-볼테라 경쟁(LVC·Lotka-Volterra Competition) 모형이다. LVC 모형은 1950년대 중반에 생태계에서 동일한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생물체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이론으로, 여러 기술들이 세대를 바꾸어 가면서 경쟁하는 ‘다세대 기술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용된다.

# 과학의 이론체계나 공학의 실험결과도 기술경영의 주제

먼저 같은 기술에 대해 1세대 기술과 2세대 기술이 하나의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2세대 기술이 1세대 기술보다 성능과 효용이 우수하면서도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경우, LVC 모형은 2세대 기술이 1세대 기술을 대신하는 패턴을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 세대간의 기술이 서로 달라서 1세대 기술의 시장과 2세대 기술의 시장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를 보자. 이때는 2세대 기술이 출현한 이후에도 1세대 기술이 제공하는 효용이나 비용 우위 때문에 2세대 기술로의 전환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아가 1세대 기술에서 2세대 기술로의 이동뿐 아니라 거꾸로 2세대 기술에서 1세대 기술로의 이동도 가능하다. 실제 데이터를 LVC 모형에 적용하여 모수(母數)값을 추정해보면 두 기술이 서로 상대기술을 견제하는 순수경쟁 관계로 갈지,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잡아먹는 포식자·피식자 관계로 갈지, 두 기술이 상호 공존하는 공생 관계로 갈지를 예측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적절한 경쟁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기술경영이라고 하면 기술을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하는 기법을 떠올리거나 기술을 통해 경영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 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경영원리나 경영전략같은 ‘큰’ 문제에 과학의 이론체계나 공학의 실험결과를 원용하는 일도 기술경영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생태계에서 적자생존의 진화를 통해 생물체가 살아남는 원리는 시장에서 기술혁신의 변화를 통해 기업이 살아남는 원리와 놀랍도록 닮았다. 시장이 정글로 느껴질 때 CEO는 과학자의 연구실에 찾아가고 공학자의 실험실에 들러 생존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박용태 교수(52)는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생산관리학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영학을 전공한 공대 교수로서 서울대에서 기술과 경영을 접목한 기술경영 대학원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