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현의 경제사상 탐구<2>

“제조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와 국민이 필요한 곳에 돈을 쓰고, 그 돈이 빠진 빈 자리에 다시 돈을 채워 넣기 위함이다. (중략) 어떤 국가를 다른 국가보다 위대하고 부강하게 만드는 단순하고 유일한 힘은 나라 안에 돌고 있는 풍부한 돈이다.”

17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중상주의(重商主義)자였던 콜베르(J.Colbert, 1619~1683)의 글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각 나라가 국가의 곳간인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수출보조금·수입규제 등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되는 모든 정책을 동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기업들은 경쟁국 기업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갖춰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답하려면 서양 절대왕정 밑에서 벌어진 중상주의 정책과 그 효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유럽국가들은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절대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당시 경제정책은 상업적 거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상주의(mercantilism)라고 불린다. 중상주의의 첫 단계는 중금(重金)주의로 불린다. 이 단계에서는 부의 원천인 금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개별 상품의 거래차액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어떤 상품이 됐든 비싸게 많이 팔고 보자는 논리다. 또 애써 수출로 벌어들인 금이 외국으로 다시 유출(流出)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예를 들면 영국은 외국상인이 영국에 상품을 판매하여 얻은 수입을 모두 영국 상품을 사는 데 써야 한다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제조업은 커졌지만 정부 특혜 따른 비효율성 폐해로

둘째 단계는 개별 상품보다는 전체적인 무역차액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단계로서 무역차액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즉 개별 상품별로 일일이 무역에서 흑자를 보려 하기 보다는, 일부 상품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전체 상품의 수출액이 수입액을 초과하는 ‘무역수지 흑자’를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대표적 사상가인 토머스 먼(Thomas Mun, 1571~1641)은 인도에서 향료를 사서 유럽에 파는 중개무역을 통해 차액을 얻을 수 있으므로, 동인도회사가 수입 업무를 확대하는 것이 경제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셋째는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단계로서 자국산업보호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앞서 언급된 콜베르 시대의 프랑스는 국내 산업을 길드체제에 묶어 특정인만이 사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였다. 또 농산물의 수출을 규제함으로써 국내 물가를 낮추고 결과적으로 저임금 체제를 유지해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고 했다.

유럽 각국이 취한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어느 정도 제조업이 육성되고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되는 데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폐해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의 특혜에 의해 산업이 육성됨으로써 자원배분 면에서 비효율성이 나타났다. 특히 독점체제가 고착되면서 수익성이 사라진 사업도 계속 유지되는 병폐가 나타났다.

이 때문에 중상주의에 대해 많은 경제학자들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중상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즉 일부 생산자의 이익 때문에 “소비자의 이익이 희생되었을 뿐 아니라 기타 생산자들의 이익도 크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했다.

현대경제학에서 정부의 경제적 행동을 분석하는 공공선택론의 대가인 튤록(Tullock)은 “중상주의 사회전체가 ‘지대(地代)추구 사회’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인위적으로 규제를 만들어 독점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공공선택론에 따르면, 인위적인 독점은 기술혁신 등의 이유로 자연적으로 발생한 독점보다 폐해가 크다. 왜냐하면 독점권을 정부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 예상되는 독점 이윤의 상당 부분이 사전 로비활동으로 낭비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개발시대 중상주의 경제정책 明暗 고스란히 겪어

반면 중상주의의 긍정적 측면이 너무 소홀히 취급됐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1930년대 세계대공황을 이론적으로 해명한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는 무역흑자를 통해 금을 축적하려는 중상주의적 정책이 투자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즉 화폐량이 증가하고 이자율이 낮아져서 국내투자가 증가할 뿐 아니라, 국제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해외투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중상주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효과를 본다는 경제학자는 별로 없다. 수출을 많이 해서 외화가 들어오면 화폐량이 늘어나 결국 물가가 오르고 수출이 둔화되어 국제수지 흑자를 계속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중상주의 정책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결정적 정책 수단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표와 수단의 불일치 가능성을 ‘중상주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개발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대체로 중상주의 정책기조를 많이 받아들였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상태에서 불가피한 정책이었다고 보이지만, 정부 지원 속에서 자란 기업은 변화된 환경에서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외환위기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서 영원히 유효한 체제와 정책은 없으며, 변해야 산다는 진화적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