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뇌에만 있지 않다 — 식탁에서 시작되는 정신건강
등록 2026.09.01 16:18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태혜진 교수(정신건강의학과)

  •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태혜진 교수(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태혜진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우울증 환자를 만나면 소화기 증상을 함께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입맛이 없다", "속이 더부룩하다", "배변 습관이 달라졌다” 등등. 오랫동안 우리는 이를 우울증에 따른 부수적인 증상으로 여겨 왔다. 뇌가 지치면 몸도 함께 힘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는 이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장은 단순히 뇌의 상태를 반영하는 기관이 아니라, 뇌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감정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관이다. 다시 말해 장은 뇌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뇌에 신호를 보내는 또 하나의 '발신자'인 셈이다.

    장과 뇌는 어떻게 대화하는가

    장과 뇌는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까?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장-뇌 축(gut-brain axis)’이다. 두 기관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한다.

    첫째는 신경이다. 미주신경은 장에서 뇌로 올라가는 감각 섬유가 훨씬 많은, 사실상 장의 상태를 뇌에 전달하는 '정보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동물실험에서 일부 유산균을 먹인 쥐의 불안 행동이 줄었는데, 미주신경을 절단하자 그 효과가 사라졌다. 장내 세균의 신호가 실제로 이 신경을 타고 올라간다는 뜻이다.

    둘째는 대사물질이다. 장내 세균은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섬유를 발효시켜 뷰티르산 같은 단쇄지방산을 만든다. 이 물질들은 장 점막의 방어벽을 튼튼하게 하고, 혈액을 타고 이동해 뇌의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 또한 장내 세균 구성은 트립토판이 세로토닌 쪽으로 쓰일지, 아니면 신경독성을 띨 수 있는 키뉴레닌 경로로 흘러갈지에도 관여한다.

    셋째는 면역과 염증이다. 장 점막의 투과성이 높아지면 세균에서 나온 물질이 혈류로 새어 들어가 전신에 낮은 수준의 만성 염증을 일으킨다. 우울증 환자 일부에서 CRP 같은 염증 지표가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염증은 다시 기분과 동기,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한 가지 흔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세로토닌의 90% 이상이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 세로토닌이 뇌로 올라가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세로토닌은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장의 영향은 훨씬 간접적이고 정교하며, 바로 그 점이 그 점이 장-뇌 축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근거는 어디까지 왔나

    최근까지 발표된 여러 연구들은 비슷한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장에 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뷰티르산'을 만드는 유익한 장내세균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확인되었다. 최근에는 유전 정보를 활용해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려는 연구에서도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우울증과 불안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식습관이나 장내 미생물을 바꾸면 우울증도 좋아질까? 이를 직접 확인한 연구들도 있다. 2017년 호주에서 시행된 ‘SMILES 연구’에서는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환자에게 12주 동안 지중해식 식단을 따르도록한 결과, 우울증이 호전되어 관해에 이른 비율이 대조군의 8%에 비해 32%로 높았다. 이후 프로바이오틱스나 프리바이오틱스처럼 장내 미생물 환경에 영향을 주는 방법을 시험한 연구들도 이어졌다. 2025년 34편의 무작위 대조시험을 종합한 분석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전반적으로 우울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연구마다 결과의 차이가 적지 않았다. 2026년에는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캡슐 형태로 이식하는 치료를 항우울제와 함께 사용한 임상시험 결과도 발표되었다. 치료 8주 후 우울증이 관해된 환자의 비율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지만, 우울 증상 자체는 이식 치료를 받은 환자에서 더 많이 감소했다. 종합하면 장내 미생물과 식이를 조절하는 방법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점차 확인되고 있지만, 아직 기존 치료를 대신하는 표준 치료법으로 권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일상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무엇을 먹느냐’에 관한 연구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36명을 대상으로 발효식품을 늘린 식단과 식이 섬유를 늘린 식단을 비교했다. 그 결과 발효식품을 섭취한 사람들은 장내 미생물의 종류가 더욱 다양 해졌고, 혈액에서 측정한 여러 염증 관련 지표도 감소했다. 특히 발효식품을 많이 섭취할수록 이러한 변화가 더 뚜렷했다. 반면 식이 섬유를 늘린 사람들에게서는 연구 기간 동안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뚜렷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이 식이 섬유의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장내 미생물이 새로운 식습관에 적응하는 데에는 개인에 따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식생활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2014~2022년 자료를 분석한 2026년 연구에서는 김치·된장·청국장과 같은 전통 발효식품을 많이 섭취한 여성과 발효 유제품을 많이 섭취한 남성에서 우울 증상이 나타나는 비율이 낮았다. 물론 이러한 연구만으로 발효식품이 우울증을 예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특히 다양한 발효식품이 장내 미생물 환경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권하는 원칙은 다섯 가지다.

    1. 종류를 늘려라. 최근 연구들이 시사하는 것은 특정 ‘슈퍼푸드’의 양보다 다양성이다. 같은 요거트를 매일 한 통 먹는 것보다, 김치·요거트·된장국·낫토·치즈처럼 서로 다른 발효식품을 조금씩 돌려 먹는 편이 낫다.

    2. 매일, 조금씩. 발효식품의 효과는 몇 주에 걸쳐 서서히 나타난다. 주말에 몰아 먹는 방식으로는 재현되지 않는다.

    3. 식이섬유를 함께. 발효식품이 손님이라면 식이섬유는 그 손님이 머물 집이다. 통곡물·콩류·나물·과일이 있어야 유익균이 정착하고 단쇄지방산을 만든다. 둘은 대체재가 아니라 짝이다.

    4. 나트륨을 계산에 넣어라. 한국식 발효식품의 최대 약점이다. 저염 김치를 고르고, 국물은 남기고, 된장찌개의 간을 조금 낮추는 것만으로도 이득과 손실의 균형이 달라진다.

    5. 초가공식품을 줄이는 것이 보충제를 사는 것보다 먼저다. 유화제와 인공감미료가 많은 초가공식품은 장 점막과 미생물 균형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근거가 쌓이고 있다. 캡슐 하나를 추가하기 전에 빼야 할 것을 먼저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남은 질문, 그리고 경계

    앞으로 이 분야의 중요한 과제는 '모두에게 좋은 식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식단이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같은 발효식품을 먹어도 기저 염증 수준이나 장내 세균 구성에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가설이 최근 활발히 검증되고 있다. 유전 정보와 염증 상태, 장내 미생물 정보를 함께 고려해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식이와 치료를 찾으려는, 이른바 '정밀 영양정신의학'의 시대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식사는 항우울제나 정신치료를 대체하지 않는다. 우울증은 의지나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며,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다만 잘 차린 한 끼는 치료가 딛고 설 바닥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감, 흥미의 상실, 수면과 식욕의 변화가 있다면 식단을 고치기 전에 먼저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 저녁 식탁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다. 반찬 한 가지를 더 놓는 것, 국물을 조금 덜 마시는 것, 그리고 그 식탁에 누군가와 함께 앉는 것. 마음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 참고 문헌

    1. Jacka FN, et al. A randomised controlled trial of dietary improvement for adults with major depression (the ‘SMILES’ trial). BMC Med. 2017;15:23.

    2. Wastyk HC, et al. Gut-microbiota-targeted diets modulate human immune status. Cell. 2021;184(16):4137–4153.

    3. Valles-Colomer M, et al. The neuroactive potential of the human gut microbiota in quality of life and depression. Nat Microbiol. 2019;4:623–632.

    4. Pan B, et al. Efficacy and safety of gut microbiome-targeted treatment in patients with depression: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MC Psychiatry. 2025;25:64.

    5. Li J, et al. Adjunctive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or major depressive disorder: a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Cell Host Microbe. 2026;34(7):1367–1382.

    6. Kim T, Park Y. Association of fermented food intake with the prevalence of depressive symptoms and suicidal ideation in men and women stratified by age: KNHANES 2014–2022. Front Nutr. 2026;13:1707954.

    7. Bravo JA, et al. Ingestion of Lactobacillus strain regulates emotional behavior and central GABA receptor expression in a mouse via the vagus nerve. Proc Natl Acad Sci USA. 2011;108(38):16050–16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