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지틀조선 TV
-

- 임윤서 디지틀조선TV 기자
1982년의 프랑스에는 이미 '온라인'이라는 일상이 존재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기 훨씬 전의 일이다. 정부 산하 통신사 프랑스 텔레콤(France Télécom)이 전화 가입자들에게 무료로 보급한 작은 단말기 '미니텔(Minitel)' 덕분이었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전국 온라인망을 구축했고, 가입자는 1980년대 말 수백만 명으로 늘었다. 1990년대 초에는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미니텔을 사용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집에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은행 업무를 보고, 쇼핑을 하고, 낯선 사람과 채팅까지 즐겼다.
세상이 ‘언젠가 올 미래’를 꿈꾸던 시절, 프랑스는 누구보다 먼저 온라인 시대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등장으로 온라인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프랑스는 역설적으로 가장 앞서 누린 성공에 발목이 잡혔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혁명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텔레콤은 미니텔을 계속 고도화했고 이용자들도 익숙한 서비스를 굳이 떠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1997년 OECD 기준 인터넷 보급률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렀고, 미니텔은 웹이 등장한 지 20여 년이 지난 2012년 6월 30일에야 서비스를 종료했다.
실패한 제품과 서비스의 사례를 모아 그 원인을 소개하는 스웨덴의 ‘실패 박물관(Museum of Failure)’은 미니텔의 실패를 이렇게 설명한다. “미니텔의 실패 이유는 너무 잘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성공과 인기가 프랑스의 인터넷 전환을 10년 늦췄다.”
성공은 기업에 자신감을 심어준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방식이 옳았다’는 확신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 실패한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들의 선택을 돌아보고 바꾸려 한다. 반면 성공한 기업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시장이 오랫동안 그들의 방식에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장의 기준이 바뀌는 순간 시작된다. 그래서 산업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묘한 역설이 반복된다. 변화에 가장 늦게 올라타는 기업은 가장 뒤처진 기업이 아니다. 한때 누구보다 앞서 있었고, 오랫동안 성공을 누렸던 기업일 때가 많다.
최근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오래전 프랑스의 미니텔이 준 교훈이 떠오른다. 삼성은 오랫동안 스마트폰 시장의 기준이었다. 2011년 3분기 갤럭시 S2와 갤럭시 노트를 앞세워 글로벌 1위에 오른 이후 10년 넘게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이끌었다. 삼성의 경쟁력은 분명했다.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는 더 좋아졌고, 프로세서는 더 빨라졌으며, 제조 역량도 경쟁사보다 앞섰다. 경쟁사들의 거센 추격에도 삼성은 10년 넘게 시장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큰 변화 없이 이어져온 스마트폰 시장에 최근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는 올해 2분기 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 관련 실적을 집계한 이후 처음 발생한 분기 적자다. 삼성 모바일 사업이 사실상 처음 적자로 돌아선 셈이다.
물론 적자를 설명할 이유는 있다. AI 메모리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핵심 부품 가격이 뛰었고, 스마트폰 하드웨어는 이미 상향 평준화돼 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이,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삼성전자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번 적자를 부품 가격 상승이나 경쟁 심화만으로 설명하고 넘어가도 될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적자의 배경뿐만이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시장의 변화다. 스마트폰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경쟁은 단순했다. 더 좋은 카메라, 더 빠른 성능, 더 큰 화면이 곧 차별화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가격과 디자인은 물론 제품이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어떤 생태계와 연결되는지까지 따진다. 이제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 더 좋은가’에서 ‘무엇이 나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가’로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적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에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수익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지금의 시장에서도 여전히 통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미니텔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미래를 먼저 만든 기업이라고 해서 새로운 미래까지 계속 주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냉혹하다. 삐끗하면 벼랑길이다. 무엇으로 다음 시대를 선도할 것인가에 대한 삼성전자의 확고한 비전과 실행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