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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이 말하는 '청설'·첫사랑·설렘…내 20대의 장면들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4.11.10 00:01

영화 '청설'에서 용준 역을 연기한 배우 홍경 / 사진 : 매니지먼트 엠엠엠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청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청설'은 오랜만에 말 그대로 '백지' 같은 작품이다. 용준(홍경)이는 여름(노윤서)이를 한눈에 보고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쭉 밀고 나간다. 여름이는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가을이는 언니 여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쭉 향해간다. 그 세 사람의 마음에는 한 톨의 먼지도 없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후'하고 내던지는 한숨에는 안도감이 있다. 1.5배속으로 영화를 보고, 1분 이내의 영상을 즐기는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랑'이다. 그 순수함이 홍경을 통해 스크린에 담긴다. 20대 끝자락에 서 있는 홍경은 영화를 너무 사랑하고, 무언가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로 한껏 부풀어있다. 영화를 장면들로 기억하는 그에게 '청설' 속 장면들과 20대 홍경이 만들어가고 픈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영화 '청설'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Q. 영화 '청설'은 말 그대로 착한 영화다. 전작 '약한 영웅'이나 영화 '댓글부대' 등에서 보여준 것 같이 커다란 굴곡점이 적은 작품이다. 더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두고, 위기를 조성하는 게 필요하죠. 요즘에는 이야기 속에 자극적인 요소도 많고요. 그래서 더 잘 느끼기 어려운 것 같아요. '청설'은 커다란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에겐 더 극적이었고, 가슴 아픈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그걸 잘 보여준 건 제가 맡은 용준이보다 여름(노윤서)이와 가을(김민주), 자매였고요. 화재라는 큰 사건이 위기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피어나거든요.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덮어둔 마음이 터지고, 솔직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저에게 더 극적이고 크게 다가온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잖아요. 저는 단순했어요. 온 마음을 다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할까?', '얘가 이 순간 느끼는 건 뭘까'에만 집중했어요. 저는 처음 느끼는 순간의 반응을 계획하지 않는 걸 좋아해요. 사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로 살아가잖아요. 거기에 집중해요. 시나리오를 미리 읽고, 고민하지만, 머리로 하지 않으려고 해요. 반응에만 집중했어요. 이 작업이 소중하고, 각별하고, 더 어려웠던 건,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종일관 여름, 가을, 그리고 용준이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거짓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함은 가슴을 관통해 느껴지기 마련이니까요."

Q. 용준이가 여름이에게 늘 진심으로 임할 수 있었던 힘은 뭐였을까.

"저는 용준이가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것뿐이지, 자기의 주관이나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친구라고 느꼈어요. 은연중에 그 지점이 나오는데요. 철학과를 졸업했고, 용준이의 부모님을 통해서도 설명이 되는 것 같아요. 또 용준이의 방을 스케치할 때 놓여있는 책들 속에서도요. 개인적으로 '하루키 소설 전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어요. 인문학 책 몇 권과 좋아하는 한국 작가도 말씀드렸고요. 뭔가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마음이 크지 않을까 탐구해 나간 것 같아요. 한 캐릭터를 만드는 건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님을 통해서, 용준이의 공간을 통해서 용준이가 보여요. 저는 저 혼자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영화 '청설'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Q. 솔직하게 '용준이'로 임하면서 배우게 된 사랑의 형태도 있을 것 같다.

"맞아요. 용준이는 늘 용감하게 마주하잖아요. 내 마음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마주하고, 온전히 상대방에게 고백하고요.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순간이 많거든요. '내 마음은 이런데, 상대는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제 마음이 커져도 한발 물러섰어요. 한발 다가섰다가도 상대 몸짓에 움츠러져 세, 네 발짝씩 물러섰고요. 용준이를 통해 '그게 뭐다'라고 정의하는 건 어렵지만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하는 것, 마주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어요. '(용준이는) 참 대단하다, 처음임에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Q. 소속사 매니지먼트 엠엠엠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김태리 배우와 함께 나눈 대담식의 영상이 공개됐다. 거기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한 장면으로 기억하고 묘사하는 것이 굉장히 독특했다.

"제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감각인 것 같아요. 모든 편견, 시선을 제쳐두고, 다 열어두고 보는 거예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라는 자세인 거죠. '현실에선 이럴 수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접어요. 그걸 열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더 풍부해지거든요. 캐릭터를 탐구할 때도, '이런 애라면,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항상 룸을 열어놔요.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잖아요. 작품을 볼 때에도, 캐릭터에 다가설 때도 계속 룸을 열어두면서 오는 재미가 있어요."

영화 '청설'에서 용준 역을 연기한 배우 홍경 / 사진 : 매니지먼트 엠엠엠

Q. 그래서 '청설' 속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용준이 여름이의 집 아래에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를 마침내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장면이 선명하다.

"저도 그 장면 되게 좋아하는데요. 감독님께서 룸을 많이 열어주셨어요. 어떻게 표현할지 시나리오에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았어요. 간결한 글을 통해 상상할 범위를 넓혀주는 대본을 좋아하거든요. 그 순간에도 용준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요. 답답한 마음이 클 텐데도, 여름이를 보고 일단 먼저 웃어 보여요. 미소를 한 번 띄워요. 그리고 걱정을 먼저 하잖아요. 내 마음을 눌러 담고 여름이가 괜찮은지를 살펴요. 분명 용준이에게 두려운 일인데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줄 수 있냐?'라고 해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노)윤서와 주고받은 에너지 같아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엉엉' 울기도 하고, '엉' 울기도 하고, 눈물을 머금고만 있기도 하고요. 테이크도 많이 갔고요. 할 때마다 달랐어요. 그 장면이랑 엄마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랑요. 그 두 장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여러 이유에서 감독님이 그중 한 모습을 고르신 거고요."

Q. 용준이가 수영장에서 여름이의 뒷모습에 쏟아낸 말들도 궁금하다. 비로소 풍덩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특별했어요. 용준이가 '말로 고백을 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어요. 아마 용준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이미 찾아오지도, 연락하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잖아요. 시나리오 볼 때부터 그 장면은 온전한 진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감정적이어도 안되고, 내 심장이 울리는 대로 해야 한다고요. 그런 순간이 좋아요. 용준에게 다가와서 가만히 서로 오래 마주하는 장면들, 그때 피어나는 감정들이요. 그 여백이 시나리오에 적혀있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의 사이에 피어나는 공기들을 서로 집중해서 맛보려고 한 것 같아요."

영화 '청설'에서 용준 역을 연기한 배우 홍경 / 사진 : 매니지먼트 엠엠엠

Q. 기자간담회 당시 '청설'의 마지막 장면이 '연기가 아니고 진짜 떨렸다'라고 고백했다. 어떤 감정이었나.

"그 순간이 용준이에게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그건 걸 생각하니 정말 떨리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첫사랑, 첫 키스의 순간들이 있잖아요. 용준이로 마주한 순간이 너무 떨렸어요. 기자간담회에서도 계획하고 말한 게 아니라, 그 순간이 떠올랐어요. 진짜 떨렸어요. 떨림이 온전히 담겼다고 생각하거든요. 용준이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주춤주춤하는데, 저도 그 순간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Q. '청설'에서는 정말 스크린에 순수함을 옮겨놓았다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단편영화 '미쉘'에는 좀 더 어른 멜로의 느낌이 담겨있었다. 주연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제가 영화를 사랑했을 때부터 무조건 배우가 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 연기가 좋아졌지만, 제작에 대한 열망도 커요. 하지만, 제작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단편영화 작업을 하면서 크게 느꼈고요. 그럼에도 제작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분명해요. 뭔가 세상이 빨라지더라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거짓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에요. 제작을 하고 싶었던 건 영화의 탄생 때부터 마주하고 싶은 거예요. 비교적 배우는 영화의 준비 과정을 거친 후, 캐스팅이 된 후부터 영화에 합류하잖아요. 그런데 그 준비 과정부터 영화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여서 나오거든요. 더 광범위하고, 깊게 펼치고 싶고, 그러고 싶어요."

Q. 소속사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무언가를 계속 뱉어내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 실체를 발견했을까.

"제20대 끝자락에서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나 봐요. 아직 뭔지는 모르겠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만나면, 호기심이 동화돼요. 그걸 해보고 싶고요.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걸 다양한 경로로 쏟아내고 싶어요. 그래서 단편영화도 제작해 본 거고요. 그런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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