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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현이 '노상현'답게 살아가기…"살며 부딪히며 성장하며"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4.09.28 00:01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흥수 역을 맡은 배우 노상현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제가 아닌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면, 언젠가는 들통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걸 잘 못하기도 하고요. 분명히 시행착오가 있을 거고, 실수도 할 수 있고, 넘어지고 다칠 수 있지만,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겪을 일이면, 빨리빨리 겪으며 성장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노상현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힘에 대해 말했다. 사실 그의 프로필을 보면 특별한 지점이 있다.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돌아온 대도시 ‘서울’에서 모델이 됐다. 그리고 2015년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가 됐다. 지금의 노상현을 만든 건 그 시간 동안에 했던 그의 고민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있었기에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속 그가 맡은 흥수와 그를 성장하게 하는 재희가 모두 마음 깊이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특별한 친구 사이를 보여준다. 성소수자인 자신을 알비노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사랑과 세상에서 고립을 선택한 흥수(노상현)와, 어디서나 눈에 띄는 사랑에 자신을 내던지는 재희(김고은)는 서로의 100퍼센트를 나누는 친구 사이다. 그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흥수 역을 두고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노상현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 깊은 고민과 준비 덕분에 전형적인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은’ 흥수 그 자체의 모습이 완성됐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성소수자인 '흥수' 역 캐스팅까지 약 1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쉽지 않은 소재였고, 도전이었을 것 같다.

"신경이 안 쓰인 건 아닌데, 흥수라는 인물이 가진 하나의 특성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인물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했고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직관적으로 알 것 같았고요.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Q. '대도시의 사랑법'에서는 스무 살에 만난 흥수와 재희의 서른셋까지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재희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두드러지게 표현되며 사람들의 다른 시선이나, 소문의 중심이 되기도 하잖아요. 반면 흥수는 자기의 특징에 대해 두려움이 많고, 어릴 때부터 억압된 감정이 많았을 거로 생각했어요.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자아의 코어 특징이잖아요. 답답함, 억울함, 고독함, 수치스러움 등 여러 감정이 응축되어 있어 흥수를 고립되게 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걸 처음으로 어루만져준 인물이 재희였던 거죠. 클럽에서 한바탕 놀고 소주 한잔하면서 재희가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겠어'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때 흥수가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가까이 다가서며, 일종의 동질감이나, 결핍으로 인한 유대감이 형성됐을 거로 생각했고요. 재희와의 13년의 관계가 서른셋의 흥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사실 예고편이 공개된 후,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의 모습이 연인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본 후에는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우정으로 보였다. 두 사람이 찍은 커플 화보 역시 영화를 본 후에는 우정의 티키타카로 보이더라. 김고은과 만들어간 장면이 많을 것 같다.

"정말 되게 많아요. 시도도 많이 했고, 이언희 감독님께서도 좋아해 주셨어요. 딱 떠오르는 건, 추워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일어난 후에 재희가 흥수에게 업히는 장면이 있잖아요. 흥수가 '아침부터 XX이야'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살쪘냐?'라고 문을 열고 우유를 가지러 가기까지 말을 이어가요. 그런데 원래 그 장면에 대사가 없었거든요. 애드리브로 했었어요. 그냥, 말없이 조용히 업고 가서 우유를 가져오면 좀 그럴 것 같아서요. 또, 우유와 화장실의 연결 고리도 있는 것 같고요. (웃음) 저 혼자만의 계산이 있었죠. 그리고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라고 여쭤보고, 그 장면이 탄생한 것 같아요."

Q. 그런 '친구' 케미는 실제로 친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한 살 오빠인데, 호칭은 어떻게 정리했나. 재희가 아닌 '김고은'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오빠라고 잘 안 부르더라고요. '흥수, 흥' 이렇게 불렀어요. (웃음) 배우로서 굉장히 프로페셔널 하시죠. 현장에서도 리더처럼 되게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기도 하고요. 연기야 원래 워낙 잘하시니까요. 인간적으로는 되게 털털하기도 하고, 쿨하기도 하고, 여린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다양하게 재미있으세요. 장난도 많이 치고, 유쾌하십니다. (웃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흥수를 둘러싼 관계에 재희도 있지만, 동성의 연인도 있다. 어떤 고민으로 완성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흥수가 굉장히 감정 표현을 두려워하고, 사랑을 질색하는 것처럼 비쳤지만, 제 눈에는 오히려 흥수가 굉장히 사랑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호는 흥수가 겪은 일종의 시행착오 같은 느낌 같아요. 본인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수호를 통해 깨달은 면도 많죠. 나쁘게 대하기도 하잖아요. 그만의 방어기제였던 거죠. '나에게 들어오지 마!'라고 마음을 닫고 사는 게 편하고 익숙했으니까요. 결국 재희와의 교류를 통해 성장하며 자기에게 솔직해지고, 표현하자고 용기를 내는 그 기반이 된 것 같아요."

Q. '구찌를요?'부터 '범인보다야 형사가 낫지' 등 흥수의 말맛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비결이 있을까.

"흥수의 대사에 중요한 메시지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쓰여있죠. 힘을 줘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 툭툭 던지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오히려 그런 대사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흥수식으로 툭툭 친 것이 웃음으로 터진 것 같아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흥수 역을 맡은 배우 노상현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결혼식장에서 선보인 '배드걸 굿걸' 무대가 너무 강렬해서 잊히지 않는다. 준비 기간과 촬영 당시 이야기가 궁금하다.

"개인지도를 다섯 번 정도 받은 것 같아요. 그 수위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가 '흥수'를 결심하면서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성소수자의 특정 제스처나 말투 등 전형적으로 묘사되어 온 지점을 흉내 내지 말자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배드걸 굿걸' 노래 자체가 신나기도 하고, 여성스러운 면이 부각된 안무가 있기도 했어요. 제가 의견을 내서 '헬로, 헬로' 하는 부분에서 살랑살랑하는 손짓을 누군가를 포인팅하는 안무로 교체하기도 했어요. 과잉적인 부분은 빼려고 했습니다. 최대한 담백하게, 열심히, 정직하게. 재희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임하면, 그 마음이 전달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틀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배드걸 굿걸' 뿐만 아니라 결혼식 장면을 하루에 다 찍어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하자'를 목표로 연습했습니다. 각기 다른 각도에서 촬영했지만, 같은 각도에서 반복해서 촬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구간별로 촬영한 부분도 있어서, 정확하게 몇 번 촬영했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지만, 자신 있게, 많이 가지 않았습니다."

Q. 원곡자인 그룹 미쓰에이 출신 수지가 그 무대를 봤다고 알려졌다. 어떤 피드백을 해줬나.

"'재밌었다, 많이 웃었다'라고 이야기해 줘서, 민망했습니다. '하필 원곡자를 다음 작품에서 만날 줄이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웃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흥수 역을 맡은 배우 노상현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원작 소설을 쓴 박상영 작가의 반응도 궁금하다.

"저희 영화를 보시고,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칭찬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고요. 또 신기한 점을 발견했어요. 제 대학교 후배의 친누나 친구분이 실제로 '재희' 역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박상영 작가님이랑 같이 사셨대요. 그런 분이 두 다리 걸쳐서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그 후배는 심지어 미국에서 만난 친구거든요. 토론토 영화제 때 그 후배가 와서 이야기하다 보니 그 말을 해주더라고요. 마음에 남는 경험이었어요."

Q. 대학도 외국에서 다녔고, 졸업도 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모델 일을 하게 됐고, 지금은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약간은 '재희'를 떠오르게 하는 그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같은 이유로 부모님 반응도 궁금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 때쯤, '내가 앞으로 뭘 할까?', '뭘 하고 싶을까?'라는 것을 고민했어요. 그때 찾지 못해도 사실 괜찮지만, 대학을 정하면서 그런 고민을 깊게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원래 공대를 진학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경영학을 전공하기로 했어요. 제가 원래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입대 문제로 한국에 왔는데, 그때 '지금 경험해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대외적으로, 모델로 먼저 보였지만, 사실 연기가 먼저였죠.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으려는 시기였어요. 집에서는 '하고 싶은 거면 어릴 때 해봐라'라는 마음이셨대요. 제가 계속할 줄은 모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미국에서 졸업한 후, 모델과 배우 업을 이어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정도의 갈등은 있었지만, 결국에는 많이 인정해 주시고, 지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셨습니다. 마음에 끌림이 있었고요. 큰 결정에 있어서는 저 자신을 믿고, 직관에 따르는 것 같아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흥수 역을 맡은 배우 노상현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대도시의 사랑법' 속에서 마지막에 흥수와 재희가 찾은 것처럼 '나답게 살고 있나'.

"저도 흥수처럼 계속 용기를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배우의 길이 예전에는 어떤 패턴이 있고, 정형화된 길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서 '나는 뭘까?'라는 포지션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제가 개척하는 길이 맞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어요. 누군가를 모방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롤모델로 정해서 그 길을 따라가고 싶지도 않아요.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저만의 방식으로 믿고 해나가려고 합니다."

Q. 이 작품을 통해 배운 지점이 있을까.

"성소수자 역할을 하는 것이 저에게도 도전이었고, 배움이었어요. 1년 동안 캐스팅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해석이 있었겠지만, 피하는 이유도 있었겠죠. 저도 그런 지점에서 부담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이 작품을 하면서 용기를 내어야 하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마다 결심과 도전을 했죠. 사실 한 작품, 한 작품 하면서 끝나고 난 당시에는 객관화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어떤 부분이 성장했는지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분명 성장한 부분이 제 안에 있죠. 그런 믿음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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