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요즘 어떤 생각으로 활동하냐면, 정말 무대 하나하나가 감사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그런 점에서 올해는 정말 행복한 일들이 많다는 느낌이고, 앞으로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다. '뭘 하든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고객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더 관리하게 되는 것 같다."
가수 비이자 배우 정지훈으로 활동한지 햇수로 27년 차. 정지훈은 여전히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톱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한 번도 스스로에게 느슨해본 적 없다고 자찬한 정지훈과 지난 2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지훈은 최근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을 마쳤다. 작품은 대한민국 상위 1% 화인가를 둘러싼 상속 전쟁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우재단 이사장 '완수'(김하늘)와 그녀의 경호원 '도윤'(정지훈)이 화인가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치명적 스캔들 드라마. 정지훈은 경찰대 출신의 화인가 경호원 '서도윤'으로 분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캐기 위해 화인가로 들어간 도윤은 그곳에서 완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극 중 정지훈은 옛 감성이 느껴지는 보디가드 캐릭터를 맡아 엄근진(엄격 진지 근엄) 매력을 선보였다. 목숨을 바쳐 여자 주인공을 지키는 듬직한 경호원 설정, 그리고 그 둘의 사랑. 기시감이 느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익숙한 맛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화인가 스캔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대만에서 디즈니+ TV쇼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지훈은 소감을 묻는 말에 "직설적으로 얘기해도 되나. 1등 해서 되게 좋다"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제 생각보다 많이 사랑해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라며 "사실 한국 순위는 좀 기대를 했다. 워낙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클리셰와 화려한 액션이 있지 않았나. 그런데 해외 분들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올해 디즈니+ 최고 기대작이었던 '삼식이 삼촌' 이후 공개된 '화인가 스캔들'이기에, 정지훈은 주연으로서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 이전에 '삼식이 삼촌'이 있지 않았나. '다음 드라마가 우리인데 어쩌지'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개인적으로 '삼식이 삼촌'을 재밌게 봤고, 또 송강호 선배님을 좋아해서 우리 드라마도 (기세를 이어) 좋은 반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오랜만에 액션을 선보인 정지훈은 촬영 전부터 체중 감량에 임하며 캐릭터를 준비했다. 극 초반 형제 같은 친구를 잃고 피폐한 삶을 사는 모습부터 듬직한 경호원이 되기까지 입체적 비주얼을 소화한 그는 그간의 노력을 전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체중을 감량했다. 고아로 자란 도윤이가 입양되고, 아버님이 저를 아들처럼 생각해서 친아들과 함께 경찰대까지 보내줬다. 그런 친구를 잃고 나서 무조건 복수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수개월을 필리핀에서 (범인을) 찾아 헤맸다. 그래서 덥수룩한 수염을 해봤다. 이렇게 수염 기르는 게 거의 처음이었다. 멋스러움보다는 약간 더럽고 냄새날 것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1부 첫 등장 신 때문에 몇 달 동안 체중 감량을 했다. 쇠질에 미쳐서 몸이 너무 커져 있으니까 감독님이 '과하다'라고 해서 근육을 뺐다. 아예 운동을 안 하고 유산소를 하면서 근육만 2~3kg을 빼고 지방도 줄였다. 이후에 2부부터는 싹 깔끔하게 경호원답게 가자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했다."
정지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김하늘과 첫 호흡을 맞췄다. 연기 경력이 상당한 두 사람은 시상식이나 광고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고. 정지훈은 "저희 때는 김하늘 선배가 최고의 아이돌이었다"라며 운을 뗐다.
"지금도 물론 아름다우시지만, 그때의 그 김하늘 선배의 느낌은 되게 신선하면서도 또래 모든 남자들이 선망하는 분이었다. 분명 어느 작품에서도 접점이 있을 법한데 한 번도 없었다. ('화인가 스캔들'을 통해) 드디어 만나는구나 싶었다. 오히려 지금 만나니까 작품에 대해서나 건강 이야기를 하면서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극 중 갑을 관계이기도 하면서 애틋한 로맨스를 선보여야 했던 두 사람이다. 하지만 완수가 유부녀였던 바, 도윤과의 사랑이 자칫 불륜 미화로 보일 소지가 있었다. 이에 대해 정지훈은 "이런 부분은 꼬집어야 한다. 저도 그 부분이 좀 걸려서 제작진, 김하늘 씨와 상의를 많이 했다. 애초에 불륜이 아니고, 서로 끌어당기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도윤이 입장에서는 '왜 모두가 이 여자를 죽이려 하지? 일단 지켜주자'라는 거에서 시작한 일이 점점 애처로워지고 사랑이 된 것 같다"라며 "제 대사 중에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요'라는 게 결정적으로 도윤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키스신은 왜 있냐고 물으신다면(웃음) 동정심에 이끌린 한 번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저는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애틋한 주종 로맨스뿐만 아니라 화려한 액션도 '화인가 스캔들'의 관전 포인트였다. 평소 대역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정지훈은 이번 현장에서도 액션 대부분을 직접 소화했다. 불혹이 넘은 나이, 이젠 액션이 버거울 법도 한데 정지훈은 "오히려 컨디션은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라며 체력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저는 아직도 매일 한 시간 정도 쉼 없이 쇠질을 한다. 제가 왼쪽 무릎 연골이 닳아서 없다. 그래서 뚝뚝 소리가 나는데 인공 관절이나 의료적 도움을 받다가 한 번 이겨내보자 해서 근육을 키웠더니 편해졌다. 덕분에 오히려 어릴 때보다 지금 액션 할 때 더 편안한 것 같다. 물론 관절 유통기한이 있으니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상황으로 액션은 올해나 내년이면 다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근데 또 모른다. 좋은 작품 있으면 이를 악물고 할 것 같다.(웃음)"
"위험한 신은 대역이 있기는 했다. 폭탄 터지거나 유리창에서 뛰어내리거나 하는 건 스턴트 팀에서 해주셨다. 사실 이제는 많이 아프더라. 온몸이 쑤시는 와중에 왼쪽 무릎이 가장 아프다. 예전에는 액션을 롱테이크로 간 후 5분도 안 쉬었는데, 이제는 10분은 쉬어야 다시 한번 찍을 수 있더라."
연예계 자기관리 대장을 꼽으면 늘 빠지지 않는 이가 정지훈이다. 매일 지키는 루틴이 있다는 그는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정지훈은 "어릴 때부터 제가 가진 게 없다고 늘 생각해서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을 이었다.
"'남들보다 몸이라도 더 예뻐야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운동을 매일 하는 건 제가 당뇨 유전병이 있다. 외가 쪽이 다 당뇨로 돌아가셨는데, 저도 술도 마시고 나태해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나는 아이가 생기면 절대 먼저 잘못되는 일은 없게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이 정말 고생한다. 저도 어머니 간호를 하면서 내 아이들에게는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건강해지고 내 가족들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운동한다."
건강에 대한 남다른 소신이 있는 만큼, 연예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시청자분들, 관객분들을 고객님이라 생각하면서 활동하고 있다"라며 "그러면 제가 나태해질 수가 없더라. 진짜 유명한 맛집 사장님들 보면 새벽 3시에 출근해서 밤까지 하시지 않나. 그런 게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저도 제 일에 책임을 지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 정지훈이었다. "목표를 정하면 예전엔 이뤄졌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더라. 제 목표가 있는데 말씀드려봤자 두들겨 맞을 것 같아서 조용히 제 갈 길 가겠다. 2~3년 정도 조금 더 지켜봐 달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