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디지틀조선일보DB,사진 : 서보형 사진기자, geenie44@gmail.com
"너무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멋진 친구이자 좋은 작품을 함께한 동료였다", "무심한 듯 디테일한 형"이었고, "용기를 주고, 생일도 챙겨주는 따뜻한 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배우"였다. 영화 '행복의 나라' 현장에서 故 이선균을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22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영화 '행복의 나라' 제작보고회가 진행돼 추창민 감독을 비롯해 조정석, 유재명, 전배수, 송영규, 최원영이 참석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추창민 감독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행복의 나라'를 연출했다.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당시 재판은 여러 차례 법정에 은밀하게 쪽지가 전달돼 '쪽지 재판'으로도 불렸다. 그리고 당시 유일한 군인 신분이었던 박흥주 대령에게 첫 공판 이후 단 16일 만에 최종 선고가 내려져 '졸속 재판'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추창민 감독은 "10.26과 12.12 사건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그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많은 분이 잊고 있는 것 같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찾아보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그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영화화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선균은 실존 인물인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 비서관 ‘박태주’로 분한다. 추창민 감독은 "이선균이 '행복의 나라'에 합류한 이유가 조정석"이라며 "조정석이 되게 좋은 배우 같다. 이 배우와 같이하며 배우고 싶다고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그는 "박흥주라는 인물을 여러 지점에서 조사해 봤을 때, 좌우 진영을 나누지 않고, 이분에 대한 군인적인 칭찬이 자자한 분이라고 들었다. 이런 분이 역사 속에 휘말렸을 때, '어떤 행동을 취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며 표현해 보자고 이선균과 대화하며 작업했다"라고 설명했다.
조정석은 그런 '박태주'(이선균)를 살리기 위해 재판에 뛰어든 '정인후' 역을 맡았다. 유일하게 픽션으로 만들어진 인물이기도 하다. 조정석은 "정인후라는 변호사는 법정 개싸움에 능한 친구다. 박태주를 변호하는 변호사를 맡게 되고, 조금씩 잘못되어가는 재판에 분노해서 자신의 심리가 조금씩 변화한다"라고 인물에 중점을 둔 지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제일 어렵고 힘들었던 건 제 마음, 제 심리에 변화를 잘 다스리는 지점이었다.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도 적절한 기준은 없었지만, 감독님과 대화하며 균형을 맞춰갔다"라고 캐릭터에 깊숙하게 자신의 감정을 실었음을 전했다.
유재명은 권력을 위해 재판을 움직이는 전상두 역을 맡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유재명은 전상두에 대해 "시민들의 욕망을 짓누르고, 편법을 쓰고, 상식적이지 않은 술수로 진실을 은폐해 개인과 억누르고, 집단의 욕망을 가진 사람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외적인 부분에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유재명은 "실제 머리를 면도해서 저 상태로 약 4~5개월 살았다. 집에 있는 사람도 많이 놀랐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고, 일상생활에서 머리를 숨기고 다녔다. 동료 배우들도 현장에 응원차 왔다가 깜짝 놀랐다"라고 전해 현장을 웃음 짓게 했다.
전배수와 송영규는 '박태주'(이선균)를 위한 변호인단으로 합류했다. 우현, 전배수, 송영규, 그리고 조정석으로 이어지는 변호인단은 완벽한 앙상블로 '행복의 나라'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전배수는 "앙상블은 정말 좋았다. 촬영장에 가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고, 조정석 역시 "형님들과 송영규까지 변호인단은 모이는 것 자체가 에피소드"라고 당시를 회상해 작품에 기대감을 더했다.
최원영은 10.26 대통령 암살 사건 재판을 담당한 검찰관 백승기 역을 맡았다. '박태주'(이선균)를 비롯한 변호인단과 대치점에 있는 인물. 이에 최원영은 "맡은 역할 때문에 고립되려 했다. 군사재판을 재현한다기보다, 영화 시나리오 안에 충실하기 위해 역할에 임했다. 즐겁고 뭉클한 현장으로 기억이 남아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각기 다른 캐릭터로 작품에 깊숙하게 몰입해 있던 현장이었지만, 故 이선균을 향한 같은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제작기를 담은 영상 속에서 故 이선균의 생전 인터뷰와 목소리에 깊은 여운이 남기도 했다. 조정석은 "너무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촬영하면서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제가 장난기도 많지 않나. 그래서 형에게 장난도 치면, 다 받아주는 형이었다. 너무너무 좋은 형이었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집념이 대단하셨다. 그래서 연기하는 순간에는 굉장히 뜨거웠고, 연기가 종료되는 순간에는 굉장히 따뜻했던 형님으로 기억하고, 지금도 보고 싶다"라고 그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추창민 감독은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한 '행복의 나라'에 철저하게 10.26 당시 법정 상황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변호인단의 수, 인물들의 수, 방청객의 수까지 같은 숫자로 맞추려고 노력했다. "영화는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라는 추창민 감독의 말이 오래 귓가에 머무는 이유다. 그는 실존 인물인 박흥주 대령을 세상 밖으로 꺼내며 "그는 국립묘지가 아닌 개인 묘지에 묻혀있다. 그러면서도 묘비명에 '육군 대령 박흥주'라고 적혀있다. 강력하게 복권을 원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분이 세상에 소개되고, 그분이 받은 부당한 대우가 희석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라고 진심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유재명은 개봉을 앞두고 " 우리 영화 제목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나라, 행복한 나라,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신념, 진실을 은폐하는 폭력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여러 사람의 모습을 보며 과연 행복이란 무엇이고 조국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자신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수많은 질문을 관객에게 던져줄 영화 '행복의 나라'는 오는 8월 14일 개봉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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