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틀조선TV 유튜브 바로가기

김태용 감독이 말한다…알아두면 쓸모있는 '원더랜드'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4.06.12 00:01

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16년 어느 날, 영상통화를 끊고, 그 영상통화 속 사람이 갑자기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김태용 감독의 호기심은 영화 '원더랜드'의 시작이었다. '원더랜드'는 영화 속 등장하는 서비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 혹은 세상을 떠났거나 의식을 찾지 못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서비스를 의뢰할 수 있다. 삶 속에 남겨둔 다양한 그 사람의 모습이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서비스 '원더랜드'의 기반이 된다. 그의 정보를 모아 AI가 탄생하고, 그와 영상통화 형식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새롭게 나눈 대화들은 AI의 생명력을 더욱 단단하게 구축한다. 만질 수 없지만, 그리운 이를 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잘 지내?'라는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는 서비스, 당신이라면 신청할까?

영화 '원더랜드'는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질문을 이어간다. 특히, 영상통화를 자주 쓰는 요즘, '원더랜드' 서비스는 먼 우주에 두둥실 떠 있는 이야기가 아닌 손안에 쥔 핸드폰처럼 가까이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원더랜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약 8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김태용 감독은 AI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연구부터 시작했다. 김대식 교수, 홍성욱 박사 등 뇌과학 분야의 전문가와 AI와 그 구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영화 속에서는 짧게 지나가지만, 많은 이들과 함께한 '원더랜드' 서비스에 대한 인터뷰도 그 시간 속에 담겼다. 많은 정보가 모여 단단한 AI가 되는 것처럼 김태용 감독의 시간이 '원더랜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원더랜드'가 탄생한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영화가 더 재미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원더랜드'가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작업 기간이 오래 걸렸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시사 전까지 계속 작업했다. 그래서 지금도 작업이 완전히 끝난 느낌이 안 들고, 더 고치고 싶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명언 중 하나가 영화 작업은 'never finish, only stop(절대 끝나지 않는다, 오직 멈출 뿐)'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촬영도, 후반 작업도 더 하고 싶지만 끊어야 한다. 숙명 같은 거다. 누가 끊어주지 않으면, 끊지 못하는 게 연출자들이니까. 모두 그럴 거로 생각한다."

Q. 시나리오 등 준비 과정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뇌 과학 분야 전문가의 도움도 받았다고 들었다. 사실 요즘 AI가 그린 그림, 만든 영상 등이 화제가 되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작품에 넣고 싶었나.

"엄청난 과학기술을 다루는 이야기라기보다 그냥 관계가 조금씩 확장되는 이야기를 AI 기술로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과학에 대한 고민이 수능시험이 아닌, 일상이 되지 않았나. 그런 고민이 드라마에 쓱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부했다. AI 기술은 어쨌든 가짜를 진짜처럼 여기게 하는 기술 아닌가. '이게 진짜 사람이 그린 거야? AI가 그린 거야?'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게 가상인지, 기술의 발전으로 혼동하는 시기가 예전보다 훨씬 더 가까이 오고 있다. '원더랜드'를 만들 때, 그런 상황 속에서 '내 관계에도 변화가 올 거고, 그 변화에 따라 내 감정도 변화할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 '원더랜드' 현장 스틸컷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수많은 질문이 '원더랜드'를 완성한 느낌이 든다. 특히, 아내이자, 극 중 바이리 역을 연기한 탕웨이는 인터뷰에서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았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당시에는 '바이리' 역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전반적인 작품의 콘셉트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함께 작업을 하기로 한 이후에 질문을 많이 한 이유가 있다. 탕웨이가 워낙 궁금한 게 많은 배우다. 그러다 보니, '이건 왜 이런 거야?', '이 대사는 어떤 느낌이야?' 등의 질문을 많이 한다. 제가 모든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서, 거꾸로 질문을 많이 한다. (웃음) '이런 경우는 어떤 것 같아?', '바이리는 어떤 감정일까?' 등의 질문을 서로서로 하며 캐릭터를 준비했던 것 같다."

Q. 실제로 아내 탕웨이와 슬하에 한 명의 딸을 키우고 있지 않나. 딸을 향한 감정이 '바이리'에 담긴 지점도 있을까. 개인적으로 '홀로 남겨진 딸을 응원'하는 듯한 바이리의 묵묵한 엄마의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바이리는 남겨진 딸을 응원하는 마음과 먼저 가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모두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원더랜드'를 보며 엄마로 감정이입을 하는 분도, 딸로 감정이입을 하는 분도 계신 것 같다. '원더랜드' 속 바이리를 딸이 받아들이는 태도와 엄마가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를 수 있다는 지점에 주목했다. 사실 살아있는 딸을 위해 세상을 떠난 엄마 바이리가 남겨놓은 서비스 아닌가. 그게 진짜 도움인지, 아닌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본다는 것이 과연 좋은 걸까?',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잘' 헤어지는 것일까?' 등의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배우들과 많이 나눴다. 사실 '원더랜드' 속 캐릭터들은 감정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이리'의 딸이 크면 해리(정유미)처럼 되어서, 나중에 바이리 (모니터) 앞으로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태주(박보검)와 정인(수지)는 '원더랜드'의 또 다른 지점을 보여줬다. 과거 정인이 깊이 사랑한 태주, 의식불명이었다가 깨어난 태주, 그리고 '원더랜드' 속 AI로 탄생한 태주까지. 각기 다른 태주와 그런 태주를 받아들이는 정인에도 담고자 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사실 의식불명의 태주가 살아 돌아오면 바로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또 돌아온 태주를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그런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움을 수지가 잘 담아낸 것 같다. 박보검은 각기 다른 태주의 모습을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크게 다른 느낌으로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배우 자체가 모두를 품을 것 같은 느낌과 모두가 안아줘야 될 것 같은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나. 사실 태주와 정인의 과거 모습이 영상으로도 사진으로도 정말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박보검과 수지는 리허설 등 만남이 있을 때마다 계속 사진을 찍었다. 어떤 날은 옷을 준비해 와서 갈아입고 찍기도 했다. 소품 사진은 모두 본인들이 연출한 거다. 연출료 일부를 좀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웃음)"

Q. '원더랜드' 초반 서비스로 들어가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다양한 언어로 '원더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듯했다.

"'원더랜드'에 함께한 배우들의 목소리도 있고, 실제 준비 과정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담겨있다. ''원더랜드'라는 서비스가 있다면, 사용하겠냐, 또 누구를 만나고 싶냐' 등의 질문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인터뷰했었다. 부모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친구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실제로 들은 이야기를 그 자리에 담았다.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가 사람(AI)을 만든다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또 하나 독특했던 장면이 '원더랜드' 서비스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도 코딩 언어나 0과 1이 아닌 정육면체 그래픽을 통해 표현되는 지점이었다. AI를 암호 같은 언어가 아닌 유기적인 그래픽으로 표현한 이유와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숫자나 기호로 세상은 이루어져 있다’라는 콘셉트의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가상 세계를 만들어지는 과정을 형상화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자들과 많은 논의를 했다. ‘디지털을 표현하는 0과 1이라는 숫자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원더랜드’가 가진 디지털 세계에 대한 해석인데, 그 정육면체가 모두 ‘입자’들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입자가 모여 빨대도 되고, 핸드폰도 되고, 공항도 되고, 사람도 되는 거다. 사람이 만들 때는 프로그램 언어가 사용되지만, AI 방식으로 만들어질 때는 입자가 뭉쳐서 형상화한다. 그리고 그 입자는 인공신경망 시냅스와 연결돼 인간의 뇌를 모방하며 계속 발전해 간다. 입자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흩어지면서, 어떤 형태가 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마치 멀리 우주의 별을 바라보는 모양일 것 같았다. 과학자들과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며 비주얼로 형상화했다. 덕분에 생명의 나무나 공항이 만들어질 때의 형상화까지 작품의 한 축으로 이어진 것 같다."

Q.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지 속 한 픽셀처럼 세상을 구현한 것 같다.

“맞다. 모든 입자에는 중력이 있고, 그 힘으로 뭉쳤다 흩어졌다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세계가 구성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컴퓨터로 컵을 그린다면, 컴퓨터 언어나 수학적 언어로 ‘컵’을 표현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생성형 AI에는 그 과정이 빠져있다. 인간의 언어를 통하지 않고, 이미지가 이미지로 변하는 거다. 디지털을 입자로 표현하고, 인간의 언어 밖에 있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에 관객들의 보는 재미가 더해지면 좋겠다.”

영화 '원더랜드' 현장 스틸컷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Q. 방대한 고민 끝에 '원더랜드' 서비스를 만든 김태용 감독의 입장은 어느 쪽인가.

"작업하면서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서비스한다는 쪽과 안 한다는 쪽이 반반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조금씩 바뀐다고 하더라. 사실 SNS 등을 통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엄청나게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나. 그런 나의 데이터가 추후에 조금이라도 유용할 수 있다면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원더랜드' 속 중국집 할머니처럼 서비스에 너무 매몰되는 지점도 해리(정유미)처럼 어느 시기를 견뎌내는 힘이 되는 지점도 있을 수 있지 않나. '일상의 일원으로 AI를 얼마만큼 받아들일 거냐?'라는 질문이 곧 '우리가 살면서 관계를 얼마만큼 받아들일까'라는 질문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AI를 담은 영화의 99%는 부정적 아닌가. '원더랜드'에서는 그 두 가지 균형을 계속해서 고민했다. 우리를 공격할 AI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택인 것 같다."

Q. 가벼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탕웨이가 ‘김태용 감독님께서 ‘바이리(탕웨이)와 성준(공유), AI 간의 사랑’을 ‘원더랜드’ 시즌2’로 언급하셨다’는 전언에 굉장히 기뻐하며 “듣기만 해도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실현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웃음) 하고 싶다. 궁금하다. 둘의 케미스트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 둘의 이야기도 더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원더랜드'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최신기사


    최신 뉴스 더보기


        최신기사 더보기

          산업 최신 뉴스 더보기

            최신기사